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규복(圭復). 유균(柳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인습(柳仁濕)이다. 아버지는 판서 유빈(柳濱)이며, 어머니는 이인행(李仁行)의 딸이다.
1507년(중종 2) 생원이 되고, 1516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의 정자·전한(典翰), 승정원 승지를 역임했다. 상모가 엄중위대하며 지략에 능하고 과단성이 있었고, 활쏘기와 말타기에도 능하였다.
1519년 북방에서 사람과 가축들이 납치되어가자, 적의 변란을 우려하여 승지로 있던 유용근을 함경도병마절도사에 특임하였다. 그러나 조광조(趙光祖) 일파로 지목되어 기묘사화 때 진원(珍原)에 유배되었다.
그 뒤 함부로 배소를 이탈하여 광주의 이자정(李自楨)의 집에서 술을 마신 죄로 1522년 연일(延日)에 옮겨졌다가, 1528년 풀려나 돌아오던 도중 죽었다. 1538년 복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