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포 ()

장생포항
장생포항
자연지리
지명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동에 있는 포구(浦口).
정의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동에 있는 포구(浦口).
개설

장생포는 행정상으로 울산군에 속하여왔으며 현남면(峴南面)의 관할하에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에 속하였으나 1962년울산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장생포도 장생포동으로 바뀌었고, 1997년울산광역시가 출범함에 따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장생포는 울산만의 서쪽 해안가에 위치한다. 울산만의 수심이 깊어 배의 드나듦이 편리하므로 연안 항로의 기항지이며, 또한 주변이 고래잡이의 좋은 어장이므로 포경업(捕鯨業)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울산만 내로 태화강·동천·외황강 등이 흘러들며 태화강과 동천이 만나는 하구에는 넓은 충적평야와 갯벌이 발달한다.

형성 및 변천

울산은 신라시대부터 정치·경제·교통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국방상 중요한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대륙침략의 전진기지로서 장생포항에 유류 비축을 위한 축항계획이 시도되어 장생포 일대에 안벽이 축조되었고, 울산·장생포간에 철도지선을 부설하여 군수물자를 수송하기도 하였다.

장생포는 중요 거점지역이기 때문에 도로와 철도가 이곳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울산의 도로는 1904년∼1920년에 걸쳐 울산·부산, 경주 등 간선도로와 장생포, 방어진, 언양, 남창을 경유하여 해운대에 이르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발달하였다. 철도는 한국전쟁 이후 산업선이 진행되면서 ‘장생포선’이 개통하였다. 1960년부터 화물운송에 있어서 장생포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황

장생포는 단순한 어항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공업 발달과 교통의 요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울산 지역의 효과적인 개발을 위해서 도로·항만·용지·용수·통신·하천 등의 대규모 개발이 필요했다. 울산지구종합공업지대조성추진위원회가 발족하여 공업단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울산만 일대에 있는 장생포는 공업단지를 조성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기에 정부주도 하에 최초로 울산·미포 국가산업단지가 건설되었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정부는 1962년울산지구를 특정공업지구로 결정하고 장생포동납도(현 (주)동양나이론 공장부지 안)에서 국민의 관심 속에 울산센터기공식을 거행했다. 차례로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온산국가산업단지 등이 들어섰다.

그러면서 장생포도 공업이 발달하는 등 농촌적 성격에서 벗어나 도시적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장생포는 울산공업단지의 일부로 대규모공장들이 입지하여 공업이 발달하여 있으며 산업도로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공장수와 종업원수가 늘게 되었고, 1962년에서 1980년까지 18년 사이에 공업에 종사하는 종업원수는 약 60배, 공장수는 약 3.4배가 증가하였다.

참고문헌

『울산광역시사(蔚山廣域市史), 1·6』(울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2)
『신한국지리(新韓國地理)』(강석오, 대학교재출판사, 1984)
『한국지명요람(韓國地名要覽)』(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울산광역시(http://www.ul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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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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