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량 영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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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정우량(鄭羽良, 1692~1754)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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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정우량(鄭羽良, 1692~1754)의 초상화.
내용

비단바탕에 채색. 1986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우량은 1723년(경종 3) 문과에 급제하고 1748년(영조 24) 숙종 어진(御眞) 모사도감(模寫都監)에 참여했으며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다.

이 영정은 17세기의 평면적이고 주경(遒勁 : 붓의 힘이 힘차고 굳셈.)한 초상화와 18세기 후반의 시각적 사실성이 강조된 초상화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18세기 중반경의 관복본(官服本) 초상화양식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도상은 쌍학흉배(雙鶴胸背)와 서대(犀帶)를 갖춘 관복으로 정장하고, 표피(豹皮)를 걸친 교의자(交椅子)에 반우향으로 앉은 전신교의좌상이다. 오사모(烏紗帽)는 높고 사모 날개는 다소 좁고 길면서 좌우의 길이를 다르게 묘사하여 반우향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녹포(綠袍)의 단령(團領 :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은 다소 직선적인 필선으로 명쾌하게 선묘(線描)하면서도 신체 구조를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전해주고 있으며, 옷주름 옆에 명암 표현을 넣어 이런 구조성과 입체감을 더욱 시각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이런 구조나 공간 표현은 특히 하단의 발받침대과 교의자 받침대 및 바닥의 돗자리 부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발받침대과 교의자 받침대는 거의 통일된 평행사선 투시법으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포착되어, 바닥의 돗자리 위에 놓여 있는 듯한 시각적 인상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만 발받침대 측면의 안상(眼象)처럼 파인 부분을 단축법적으로 정확히 처리하지 못해 다소 기형적으로 묘사되었고, 발받침대 위의 화문석(花紋席) 돗자리 문양도 측면 사선관에 따른 복잡한 단축 표현을 정확하게 구사하지 못한 채 다소 불합리하게 묘사되고 있다.

표피의 머리와 다리 및 꼬리를 발받침대 주변에 크게 드러내어 묘사한 것은 18세기 전반경의 취향이 다소 강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에 소장되어 있다.

집필자
강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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