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 출신. 본명은 성춘(成春).
1940년 충청북도 도청에 근무하는 한편, 1944년 극단을 조직하여 희곡을 쓰다가 만주에 가서 외숙의 농장에서 지냈다. 광복 후 귀국하여 독립신문·평화신문·연합신문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 대전의 호서신문(湖西新聞)과 중도일보(中都日報)의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내기도 하였다. 1953년 상경하여 동양통신 취재부장을 거쳤으며, 1959년 연합신문 문화부장을 역임하였다. 그 뒤 1962년 귀향하여 작품 창작에 전념하였다.
1955년 『현대문학(現代文學)』 6월호에 단편소설 「부랑아(浮浪兒)」와 1956년 2월호에 「모든 나는 오라」가 추천되어 작가로 인정받았다. 이어 단편 「비인격적(非人格的)」이 1956년 『현대문학』 7월호에, 「곰 선생」이 12월호에, 그리고 「인간제대(人間除隊)」가 1957년 7월호에 각각 발표되었다.
「인간제대」로 같은 해에 한국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1950년대의 사회적 풍조를 주로 묘사하였으며, 특히 소외층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어서 「기적궁(奇蹟宮)」(『문학예술』, 1957.11)·「죄(罪)」(『문학예술』, 1958.5)·「다락속의 서노인」(『현대문학』, 1965.1) 등 역작을 계속 발표하였다.
1958년에 작품집 『인간제대』(일신사), 1962년에는 연작소설 「가시네 선생」(을유문화사)이 간행되었다. 장편으로 「25번풍(二五番風)」(『연합신문』, 1958)·「바다는 마르지 않는다」(『서울일일신문』, 1959)·「봄 눈이 녹듯이」(『민주신보』, 1962)·「58청춘(五八靑春)」(『경향신문』, 1964) 등을 신문에 연재하였다.
그밖에 단편으로 「황색시인(黃色詩人)」(『신태양』, 1957)·「대류(對流)」(『자유문학』, 1958.5)·「도관장선생(都觀長先生)」(『현대문학』, 1959.1) ·「통로(通路)」(『자유문학』, 1960.2)·「왜가리」(『현대문학』, 1960.9)·「염병(染病)」(『사상계』, 1960.11)·「꽃제비」(『지성』, 1960)·「온선생(溫先生)」(『현대문학』, 1964.6) 등이 있다.
시나리오는 「인생유전(人生流轉)」(1960)·「바위고개」(1960)·「견우직녀(牽牛織女)」(1961)·「대춘(待春)」(1965)·「합의서(合意書)」(1966) 등이 있다. 방송극으로는 「동백아가씨」(1963)·「단골 지각생」(1963)·「김순경(金巡警)」(1963)·「사랑의 배달부(配達夫)」(1964)·「마포(麻浦) 사는 황부자」(1964)·「날개부인」·「보경아가씨」 등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