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1년(문종 1) 문과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사간원(司諫院) 우정언(右正言)을 시작으로 좌정언(左正言)을 거쳤다. 단종 대에는 집현전(集賢殿) 부교리(副校理)에 임명되었다. 세조 즉위 후에는 집현전 교리와 좌필선(左弼善)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이후 승정원(承政院) 승지(承旨)를 거쳐 1462년(세조 8) 도승지(都承旨)에 제수되었다. 이조참판과 형조판서,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를 거치면서 세조 재위기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권람(權擥)의 추천 등으로 세조에게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조정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468년 예종이 즉위하면서 남이(南怡)의 옥사 등에 관한 공적으로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 익성군(益城君)으로 봉록되었다. 이후 이조판서와 우참찬(右參贊)에 임명되었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오르게 되었고, 1479년 우의정(右議政)에 제수되었다. 이후 좌의정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