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때에 이이첨(李爾瞻) 등과 결탁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다. 1618년(광해군 10) 해상을 방어하고자, 삼남(三南) 및 황해도의 전함을 모아 주사도감(舟師都監)이 새로이 설치되자 중군(中軍)에 발탁되었다.
이듬해 제주목사에 임명되었다. 탐학이 극도로 심하여 여러 차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나 그 때마다 국왕의 비호로 무마되었다. 양호의 탐학상은 제주부가 설치된 이래 가장 심하여 백성들은 호랑이를 대하듯 두려워할 정도였다. 특히 당시 제주에 귀양가있던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어머니를 혹독하게 다루었다. 1623년 반정이 일어나 인조가 즉위하자 곧 바로 효수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