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기중(期仲), 호는 수심당(水心堂). 윤수천(尹壽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임형(尹任衡)이다. 아버지는 생원 윤언성(尹彦誠)이며, 어머니는 조우신(趙又新)의 딸이다.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595년(선조 28) 사과로 있을 때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공조좌랑이 되었으나 행동이 단정하지 못하고 공식회의에도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삼도수군통제사의 종사관에 다시 기용되었으나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탄핵을 받았고, 1604년 울산판관 재직 때 백성들을 심히 탄압하다 처벌되었다. 1629년(인조 7) 80세로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파흥군(坡興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