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년(광해군 4) 임진년 병란과 역적의 변이 잇달아 일어나고 조정이 당으로 갈리고 사방의 산이 붉게 물듦은 한양의 지기가 쇠해진 것이라 상소하고, 도읍을 교하로 천도하기를 청하여 왕의 동의를 얻었으나, 예조판서 이정구(李廷龜)와 이항복(李恒福) 등 제신의 강력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614년 합계(合啓)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왕의 거절로 무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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