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 ()

조선시대사
유적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 달성서씨의 능.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건립 시기
조선 후기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정성왕후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내용 요약

홍릉(弘陵)은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 달성서씨의 능이다. 홍릉 조성 시 영조는 자신의 수릉으로 오른쪽을 비워 두었으나 이곳에 합장되지 못해 현재도 왕후릉 오른쪽은 빈터로 남아 있다. 홍릉은 18세기 조선왕릉 석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사적 '고양 서오릉(高陽 西五陵)'에 있다.

정의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 달성서씨의 능.
건립 경위

정성왕후는 1757년 승하하였으며, 능지는 창릉(昌陵) 왼쪽 언덕 주1으로 이곳은 숙종 명릉(明陵) 주산(主山)과 함께 창릉의 주맥(主脈)이 떨어지는 곳이었다. 영조는 다른 곳보다 부왕인 숙종의 곁에 자신과 왕후의 능을 조성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숭릉(崇陵)과 명릉의 허우지지(虛右之誌: 오른쪽을 비워 두고 지석을 묻음)를 따랐다. 홍릉 주2경종 의릉(懿陵)의 예를 따르게 하였는데, 이에 의릉을 주3하여 석물의 크기 등을 반영하였다.

형태와 특징

정성왕후 홍릉은 주4 안에 영조의 자리가 비어 있으며, 정성왕후의 봉분만 있다. 이 앞에 혼유석장명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5, 주6, 망주석, 주7, 주8, 주9는 쌍릉의 형식에 맞추어 건립되어 있다. 홍릉 능강 아래에는 정자각주10이 있으며, 비각에는 표석이 건립되어 있다.

금석문

홍릉 표석은 1757년에 처음 건립되었는데 이때 앞면에 ‘조선국 정성왕후 홍릉(朝鮮國 貞聖王后 弘陵)’이라고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이 썼으며, 음기는 새기지 않았다. 홍릉 표석의 음기는 1786년 정조가 써서 새기게 하였다.

의의 및 평가

정성왕후 홍릉의 석물은 조선 후기 왕릉 석물 중 손에 꼽히는 수작으로 장명등은 넓은 뚜껑돌과 안정적인 비례로 제작되었다. 문석인과 무석인은 전체적 비례와 얼굴, 복식 등의 표현이 매우 현실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홍릉 무석인의 주11 형태는 고려 공민왕릉에서 유래한 것으로, 1752년 최천약(崔天若)이 공민왕릉 무석인을 모방해 조현명(趙顯命) 묘 무석인을 제작하였다. 이후 이 도상은 1756년 박문수(朴文秀) 묘 무석인으로 계승되고, 1757년 정성왕후 홍릉과 인원왕후 명릉 무석인으로 전래되었다.

이 능묘 무석인의 갑주가 14~15세기 갑주 형태로 제작된 것은 최천약과 함께 활동하였던 주12인 김하정(金夏鼎), 변이진(卞爾珍) 등이 홍릉과 명릉 별간역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정성왕후〕국장도감의궤』(1757)
『〔정성왕후〕홍릉산릉도감의궤』(1757)

단행본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Ⅶ』(국립문화재연구소, 2014)

논문

김민규, 「조선 18세기 조각가 최천약 연구」(『문화재』 46권 1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13)
주석
주1

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을방(乙方)을 등지고 신방(辛方)을 바라보는 방향. 또는 그렇게 앉은 자리. 동남쪽을 등지고 서북쪽을 향하여 앉은 자리이다.    우리말샘

주2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3

임금의 명(命)으로 능이나 묘를 보살피던 일.    우리말샘

주4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주5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주6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주7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주8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주9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주10

비를 세우고 비바람 따위를 막기 위하여 그 위를 덮어 지은 집.    우리말샘

주11

갑옷과 투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2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그것을 감독하던 임시 벼슬.    우리말샘

집필자
김민규(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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