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은 돈이나 재물을 걸고 주사위·골패·마작·화투·카드 등을 사용해 서로 따먹기를 하는 내기 행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노름은 투전이었다. 투전은 조선 시대 영조 초기부터 널리 퍼져 크게 유행하였다. 당시 국가에서는 투전의 해악 때문에 이를 법으로 엄금하기도 했다. 노름은 사용 기구에 따라 쌍륙 등 주사위를 쓰는 것, 골패·마작 등 패를 쓰는 것이 있다. 또 슬롯머신처럼 기계를 작동하는 것, 경마처럼 어떤 경기의 승패에 돈을 거는 방법도 있다. 노름의 오락적 요소는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적 욕구이지만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내기’ 또는 ‘도박(賭博)’이라고도 한다. 통념상 내기는 일반인이 심심풀이로 음식이나 술 따위를 걸고 하는 소규모적인 것임에 반하여, 도박은 주로 돈을 걸고 전문가에 가까운 노름꾼이 벌이는 행위를 일컫는다. 노름은 어느 사회에서나 비도덕적인 일로 생각되었으며, 심심풀이로 하는 일시적이고 소규모적인 것을 제외한 조직적이고 계속적인 행위에 대하여서는 법률로 금지하여왔다.
노름의 역사는 매우 오래여서 유사 이전부터 행하여져 왔다. 미국 콜로라도(Colorado) 계곡의 원시유적이나 아리조나주(Arizona州)의 동굴벽화에는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로마 바실리카(Basilica)유적 대리석에 새겨진 선(線)들도 노름을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집트에는 기원전 1600년 타우(tau) 세나트(senat)라는 도박이 있었다. 이 밖에 성서에도 제비뽑기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동양의 경우, 노름에 쓰는 카드는 인도에서 생겨났으며 중국에서는 역사 초기부터 노름이 성행하였다는 기록이 『사기(史記)』에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노름이라고 할 수 있는 투전은 조선시대 숙종 때 중국에 자주 드나들던 장현(張炫)이 시작한 것으로 전한다. 이것은 영조 초기부터 널리 퍼져서 서울은 물론, 전국 산간벽지에서도 크게 유행하였다. 당시 국가에서는 투전이 도둑질보다 더 큰 해를 끼친다고 하여 이를 법으로 엄금하였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초상집에서는 공공연하게 노름판을 벌였으며 관에서도 이를 눈감아주었기 때문에, 이를 기회로 많은 투전꾼들이 생판 모르는 남의 집 초상에 문상객으로 가장, 노름을 즐겼다고 한다.
조선 말기에는 각 아문(衙門)의 청방에서 관원들이 공공연하게 노름을 즐겼으며, 특히 왕의 행차가 벌어지기 전날 밤에는 종로바닥에 밤새 노름판이 벌어졌는데, 판이 크면 클수록 왕의 거동에 축하의 뜻이 더하여진다고 여겨서 공금을 노름판에 꾸어주는 등 노름을 오히려 장려한 일까지 있었다.
노름꾼 뒤에는 돈을 꾸어주는 분전노(分錢奴)가 있었으며, 빚을 얻은 이가 계약서대로 이행하지 못할 때에는 수령에게 고소하여 법률의 힘을 빌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농촌사람들은 현금이 없게 마련이므로 중간착취인인 설주(卨主)가 끼어들어서 노름을 조장하였다.
노름꾼들은 이 설주에게 가축이나 농산물 따위를 시가의 반값으로 잡혔으며, 설주는 자기의 도장을 찍은 사전(私錢)을 발행하였다. 노름이 끝나면 설주는 그 돈을 현금으로 바꾸어주고 가축이나 작물을 자기의 것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노름을 ‘셈노름’이라고 불렀다.
노름꾼들은 자기의 노름운을 위하여 산신에게 비는 일도 있었다. 깊은 밤중에 산 속에 들어가서 골패 가운데 수패(首牌) 하나를 땅에 묻고 신령에게 백일기도를 올리면 산신이 그의 담력을 시험한 뒤, 노름수를 가르쳐준다고 믿었다.
산신의 이러한 가르침을 육임(六壬)이라 하였으며, 노름판을 계속해서 휩쓰는 사람을 ‘육임한 놈’이라고 불렀다. 또 노름꾼들은 몇 가지 금기를 지켰다.
노름 도중에 자기 돈이 남의 자리 쪽으로 굴러가면 그 돈은 동전(動錢)이라 하여 따로 두고 절대로 쓰지 않았다. 이 돈이 남의 손으로 들어가면 자기 돈이 계속 흘러나갈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또 까치집 가운데 가장 굵은 나뭇가지를 뽑아서 흐르는 물속에 넣고 거꾸로 밀어올리면 노름판에서 돈을 따게 되리라고 여겼다. 이 때문에 노름이 성한 마을에는 까치집이 남아나지 않았으며, 까치집이 없는 마을은 도박촌으로 여기기까지 하였다.
노름은 사용하는 기구와 주체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기구에 따라서는 첫째, 주사위를 쓰는 것으로 쌍륙이나 다이스(dice)가 이에 속한다. 둘째, 패를 쓰는 것으로 투전 · 골패 · 화투 · 마작 · 트럼프를 들 수 있다.
셋째, 기계류를 작동시켜 즐기는 것으로 룰렛(roulette) · 슬롯머신(slot machine) · 빙고(bingo) · 빠찡꼬를 비롯하여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한 전자오락 따위가 그것이다.
넷째, 어떤 경기의 승패에 돈을 거는 방법으로 예전에는 닭싸움이나 소싸움을 위주로 하였으나 근대에는 서양식 경마를 많이 즐긴다. 다섯째, 아무 기구를 쓰지 않고 단지 우연히 일어나는 어떤 일에 돈을 거는 방법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지나치는 자동차의 번호를 화투처럼 셈하거나 전화를 걸어서 처음 나오는 상대가 여자인가 남자인가를 알아맞혀서 돈을 따는 방법이다.
주체자에 따른 분류로는 노름을 본인이 직접하는 경우와 주택복권이나 올림픽복권, 그리고 야바위처럼 상대방이나 제3자의 행위의 결과에 따르는 것이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야바위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나, 물주의 행위를 돈을 대는 이가 알아맞히면 여러 곱을 물어준다는 약속이 전제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술이나 운에 좌우되는 노름이 아니라 단순히 재물을 따먹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노름의 사기행위를 ‘야바위’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노름은 1에서 6까지의 숫자를 써놓은 종이바닥에 야바위꾼들이 각기 돈을 댄다. 물주는 역시 1에서 6까지 표시한 골패를 뒤섞어 그 숫자 아래 하나씩 늘어놓고 젖혀본다. 숫자가 맞으면 돈을 댄 사람에게 댄 돈의 곱을 물어주어야 하고 맞지 않은 돈은 야바위꾼의 소유가 되는데, 알아맞힐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다.
십인계(十人稧)도 야바위의 한 가지이다. 열 사람이 1에서 10까지 써놓은 숫자에 일정한 돈을 댄다. 그리고 바가지 쪽을 돈처럼 둥글게 잘라낸 안쪽에 역시 1에서 10까지의 숫자를 쓰고 나서 이것을 대통[竹筒]에 넣고 흔든 다음 하나씩 차례로 꺼내어 그 바가지 숫자와 차례수를 맞춘다. 맞은 사람은 판돈을 모두 자기 것으로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앞의 것보다 적중률이 더욱 희박하다. 흔히 물건을 비싸게 사거나 잘못하여 필요 이상의 지출을 하게 되었을 때 ‘바가지 썼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십인계의 바가지돈에서 나온 말이다.
복권은 사행심(射倖心)을 키운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지만, 그 이익금을 공익사업에 쓰고 이를 국가나 공공단체에서 시행한다는 데에서 명분을 찾는다. 한편 제비뽑기는 각국에서 19세기 중기에서 말기 사이에 이의 발행을 중지하였으나 제2차세계대전 뒤 다시 성행되었다.
노름에는 원시적 충동이라고 할 사행심이 깔려 있어서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쳐온 것이 사실이나, 여기에는 오락적인 요소도 있으며 또 이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욕구이기도 하다.
특히 일상적 권태감이나 정서적 불안감에 빠져들기 쉬운 현대인은 노름을 통해서 팽팽한 긴장감을 맛보게 되어 생활의 활력을 얻게 되는 면도 없지 않다.
공산국가나 식민지정책 때문에 노름이 조장되어 큰 피해를 입었던 일부 동남아시아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마나 축구와 같은 운동경기에 돈을 거는 행위를 공인하고, 이의 건전화를 꾀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모나코(Monaco)나 미국 네바다주(Nevada州)에서는 노름 자체를 법으로 인정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입을 큰 재원으로 삼기까지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관광호텔 가운데에는 외국인 전용의 카지노(casino)장을 개설한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