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마립간(재위: 497~500)의 왕비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이 다르다. 『삼국사기』에서는 이벌찬(伊伐飡) 내숙(乃宿)의 딸인 선혜부인으로, 『삼국유사』에서는 기보갈문왕(期寶葛文王)의 딸이라고 되어 있다.
내숙은 소지마립간 8년(486)에 이벌찬에 등용된 인물이고, 기보갈문왕은 제19대 눌지마립간(재위: 417~458)의 동생이다. 기보갈문왕은 지증왕의 아버지인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숙은 『삼국사기』의 거칠부(居柒夫) 기록에 나오는 거칠부의 할아버지 각간 잉숙(仍宿)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보면 소지마립간에게는 적어도 두 명의 부인, 내숙의 딸인 선혜부인과 기보갈문왕의 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정에서 소지마립간 대에 일어난 분수승(焚修僧)과 궁주(宮主)의 내통 관련 내용을 다룬 『삼국유사』의 사금갑(射琴匣) 설화는 궁주를 선혜부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 설화에 나오는 궁주는 왕비 혹은 왕비에 버금가는 높은 신분의 인물을 가리킨다.
궁주를 선혜부인으로 본다면 사금갑 사건을 역모로 확대시킨 배경에는 선혜부인을 제거하여 이득을 얻을 세력, 즉 또 다른 부인으로 보이는 지증왕의 누이동생을 비롯한 지증왕의 옹립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반면 궁주를 기보갈문왕의 딸이라고 한다면, 지증왕을 비롯한 세력의 견제를 위한 소지마립간의 방책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소지마립간과 선혜부인의 혼인 시기는 내숙이 이벌찬에 등용된 소지마립간 8년(486)을 기준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내숙에 대한 관련 기록이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 소지마립간 15년(493)에 백제 동성왕(재위: 479~501)이 신라로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했을 때 이벌찬 비지(比智)의 딸을 보냈다는 기록을 통해 소지마립간 15년 이전에 이벌찬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사금갑 사건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