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방위와 날을 따라다니며 인간 생활에 해를 준다고 믿는 귀신이다. 손에는 공경은 하지만 멀리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옛날부터 손이 있었는지 아니면 풍수지리설과 음양복서설의 전래와 동시에 중국의 태백살(太白煞)이 들어와서 손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그 구분은 확실하지 않다. 손이 있는 방위에는 출행, 승선, 행군, 공격, 수조, 장례, 동토, 이사, 구의, 혼인, 입택, 개정, 재식, 수렵, 벌목, 부임 등의 행위를 피하도록 하였다. 시골에서는 손이 있는 날 수선하거나 못을 박거나 출행을 하여 병이 나고 손해를 본다는 말을 듣는다.
손은 존경한다는 뜻이 포함된 우리말이며 일면으로는 두렵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지난날 우리들의 생활이 지극히 궁핍한 시절에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지 않을 수 없는 도덕관념에서 접대는 해야 되고 접대할 물품은 없고 해서 곤란을 겪었다. 손님이 오면 반가운 생각보다 접대하기 어려운 점을 생각해서 두렵게 여겼다.
따라서 손이란 말은 두렵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공경은 하지만 멀리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난치병으로 알려진 천연두의 역신(疫神)을 손님 또는 마마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날을 따라다니며 인간생활에 영향을 주는 귀신을 손이라 한 것이다. 이 손은 중국의 술서에 나타난 태백살(太白煞)과 같다.
옛날부터 손이 있었는지 아니면 태백살이 풍수지리설과 음양복서설의 전래와 동시에 들어와서 두려운 존재로 드러나 손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그 구분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같은 방법으로 순회하고 작용하는 것으로 보아 같은 것이 분명하다. 태백이란 말은 행성의 하나인 금성을 가리키는 말이며, 음양오행설의 원리에 의하면 서방의 금기를 받아 우주의 숙살(肅煞)을 주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살은 죽이는 기운이나 신을 뜻하는 것으로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급살(急煞)을 맞았다고 하고 싸우다가 급소를 맞아서 죽으면 살신이 끼어서 죽은 것으로 생각할 만큼 주민의 일상생활에 있어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살은 많은 종류가 있는데 모두 일정한 방위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태세(太歲)와 월건(月建)에 따라 각 방위를 다니면서 그 방위의 흉사를 맡고 있다.
그러나 손은 해와 달에 관계없이 날에 따라 방위를 옮겨가며 작용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방위는 사람이 태어난 연명(年命)에 따라 일생 동안 길방과 흉방이 있고 태세의 운행에 따라 길방과 흉방이 돌아가면서 작용을 하지만, 손은 해와 달에 관계가 없다.
문헌에 의하면 태백살에 대한 기원은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의 일파인 밀교에서 지은 『숙요경(宿曜經)』에서 시작되었다. 숙요라는 말은 인도의 천문법에서 28수(宿) 12궁(宮) 7요(曜)를 말하는 것으로 해와 달이 운행하는 위치와 모든 성수(星宿)의 관계에 의해 역일(曆日)을 정하고 일생의 화와 복을 점치는 데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때 불교가 전래되면서 함께 유입되었고 불교의 흥망과 더불어 민간신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기복과 양재(禳災)로 보다 나은 생활을 희구하였다.
손이 순환하는 방법은 매달 초하루와 초이틀, 열하루와 열이틀, 스무하루와 스무이틀은 동쪽에 있고, 초사흘과 초나흘, 열사흘과 열나흘, 스무사흘과 스무나흘은 남쪽에 있다. 초닷새와 초엿새, 열닷새와 열엿새, 스무닷새와 스무엿새는 서쪽에 있고, 초이레와 초여드레, 열이레와 열여드레, 스무이레와 스무여드레는 북쪽에 있으며, 초아흐레 · 열아흐레 · 스무 아흐레는 하늘에 있고, 초열흘 · 스무날 · 그믐날은 땅에 있다.
손이 있는 방위에는 출행 · 승선 · 행군 · 공격 · 수조(修造) · 장례 · 동토(動土) · 이사 · 구의(求醫) · 혼인 · 입택 · 개정(開井) · 재식(栽植) · 수렵 · 벌목 · 부임 등의 일체의 행위를 피하도록 하였다.
예로부터 왕궁이 있는 도성에서는 모든 살이 작용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사후의 세계를 다스리는 귀신의 영이 아무리 영악하다고 하더라도 음계의 영혼으로 어둡고 음침한 곳에서 작용하는 것이지 양명한 세계에 양기로 된 인간을 다스리는 왕의 권력을 당하지 못하며 도시에서는 귀신이 작폐를 부리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티[動土]가 났을 때는 붉은 글씨로 ‘王’ 자 셋을 써서 이 세상과는 반대인 저승의 귀신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동티가 난 곳에 거꾸로 붙여서 액막이를 한다.
손의 의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설이 있으나 『협기변방서(協紀辨方書)』에 의하면 주민들이 태백살의 공포에 떨고 있는 데 대하여 사실 태백살이란 근거가 없는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태백살의 근원이 인도의 일시에서 나왔으므로 인도의 역서는 중국의 역서와 달라서 그 작용이 중국의 날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인도의 역서는 여러 가지로 우리의 초사흘이 인도의 초하루가 되는 것도 있고 상현달이 인도의 초하루가 되는 것도 있다. 따라서 매월 16일이 초하루가 되는 것도 있어 초하루와 보름을 산정하는 방법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태백살을 좌행시키는 것도 중국의 일진법과 맞지 아니하므로 태백살에 대한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 중기에 천문 · 지리 · 숙요에 정통한 승려 영관(靈觀)의 저서인 『잡록(雜錄)』에 의하면 사람의 몸은 하나이지만 정령은 천계에 있어 길흉이 생길 때마다 성수의 변화를 통해서 상반되게 나타난다고 지적하였다. 또 성수의 운행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예정된다고 설명한 뒤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살이 태백살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실례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신라 때 박찬(朴燦)이라는 관리가 자기 아버지의 제사에 참례하러 가다가 도중에 도적을 만나 의복과 돈을 모두 탈취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불교를 신봉하던 때라 이튿날 묘법스님을 만나서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묘법이 “어제가 3월 초이틀인데 동쪽으로 갔으니 이는 반드시 손의 제재를 받은 것이다.”라고 해명하였다.
고려 때 정운(丁雲)은 부인이 손이 있는 방위이므로 출행(出行)을 연기할 것을 권했으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고 고집하면서 나가서 배를 탔다가 강 가운데에서 배가 뒤집혀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아 돌아왔다.
진씨부인(秦氏夫人)은 까닭 없이 눈이 아파서 실명의 지경에 이르렀는데 복술가를 찾아가서 그 까닭을 물어보니 손이 있는 방위에 못을 박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돌아와서 채를 걸기 위해서 부엌에 못을 박은 사실을 생각해내고 못을 뽑아낸 뒤 쑥으로 뜨고 액막이를 해서 눈병이 나았다고 했다.
또 춘추전국시대의 명장 백기(白起)는 지모를 겸비한 장수로 백 번 싸워서 백 번을 이기는 싸움 실력을 가졌는데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공격하는 날을 손이 있는 날로 정하자, 참모가 말렸으나 살은 남을 죽이는 일에 응한다고 고집하고 진격하다 적장의 계책에 빠져 참패를 당하였다. 그 일로 정승인 범수에게 미움을 사서 군졸로 강등되는 쓰라림을 당하였다.
백제의 명장 계백(階伯)이 황산벌싸움에서 신라군을 맞아 공격하는 방향에 손이 있으니 후면으로 우회하여 역습을 하자는 부장의 말에 이왕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기로 각오한 몸, 전쟁의 승패는 자명한 일이니 한 사람이라도 신라군을 더 죽여서 백제군의 용감한 모습을 적에게 보이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진군하여 참패를 당하였다.
목천(木川)에 사는 마용(馬用)이 집을 고친 뒤 3개월을 병으로 신음하여 빈사지경에 이르렀다. 그 부인이 이웃에 사는 판수에게 점을 쳐서 손이 있는 방위에 집을 고친 것이 빌미가 되었음을 알고 집을 헐어버리고 도액(度厄)한 결과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들이 지적되어 손의 두려움을 표기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실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이사를 하는 날은 반드시 손이 없는 9일 · 10일 · 19일 · 20일 · 29일 · 30일 등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손이 있는 날 수조하거나 못을 박거나 출행을 하여 병이 나고 손해를 본다는 말을 듣는다.
손에 대한 관념이 수천 년 동안 민족의 가슴속에 뿌리를 내려 주민 의식 속에 깊이 파고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일상생활에 있어서 가려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손의 두려움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체험을 통해보지 아니하고는 증명할 수 없으며, 『숙요경』에 기록된 사실도 오늘날의 발달된 과학의 힘을 빌려도 증명할 길이 없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구가 증가하고 인간생활이 복잡해지며, 생활을 위해서 빈번하게 이동을 해야 하는 도시인들의 생활 속에서는 손에 대한 가치도 두려움도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