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집』은 조선 시대 때의 문신, 정철(1536(중종31)~1593(선조26))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894년(고종 31)에 후손 운학(雲鶴)이 창평군수로 있으면서 간행된 원집·연보를 보완하고 빠진 내용을 합하여 11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 『송강집』은 원집 2권 1책, 속집 2권 1책, 별집 7권 5책으로 되어 있다. 『송강집』에는 230여 수가 넘는 한시를 비롯해 「사미인곡」, 「훈민가」를 비롯한 국문 작품들이 실려 있다. 이외에 정여립 모반 사건, 광해군의 책봉 건의 등 당대의 정치 정세를 조감할 수 있는 자료들을 수록하고 있다.
11권 7책. 목판본. 1894년(고종 31)에 후손 정운학(鄭雲鶴)이 창평군수로 있을 때에 정철의 유고 중에서 그때까지 간행되지 않은 속집 · 별집 · 별집부록과 이미 간행된 원집 · 연보를 보완하고 개각(改刻)하여 간행한 것이다. 구각본(舊刻本)에 대하여 이 문집을 지곡장판본(芝谷藏板本)이라 부른다.
『송강집』의 총목을 보면 원집 2권 1책, 속집 2권 1책, 별집 7권 5책(연보 2책 포함)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이미 간행되었던 『송강유고(松江遺稿)』에 해당하는 것이다.
정철의 아들 정홍명(鄭弘溟)이 김제군수로 있었던 1633년(인조 11)부터 1635년 사이에 간행한 것이다. 1674년(현종 15)에 현손 정흡(鄭洽)이 중간하였는데 한장석(韓章錫)이 「송강집중간서문(松江集重刊序)」를 썼다.
『송강집』의 속집 1권은 1677년(숙종 3)에 이선(李選)이 수집하고 보충하였는데 후손 정재경(鄭在褧)이 또 빠트린 것을 철습(掇拾)하여 3권으로 늘렸다. 별집 1권 1책은 정철의 수묵필첩(手墨筆帖)에서 분명한 것만 골라 간행한 것이다. 별집 2·3권은 연보이다.
이 연보는 송시열(宋時烈)이 여러 문헌을 대조하고 교정하여 편찬한 것이다. 1674년(현종 15)에 인각(印刻)한 것과 후손인 정실(鄭宲)이 편찬하여 인각한 것을 비교하고 참작하여 다시 고친 것이다.
『송강집』의 첫머리에는 1622년(광해군 14) 겨울에 신흠(申欽)이 쓴 서(序)와 1633년 여름에 이정귀(李廷龜)가 쓴 서가 붙어 있다. 이 문집의 편찬태도를 밝히는 범례(凡例)가 9개 조항에 걸쳐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송강집』의 원집 권1은 시 234수, 권2는 잡저 6편, 소차(疏箚) 5편, 화곡유고(華谷遺稿)로 되어 있다. 그리고 1632년 봄에 장유(張維)가 쓴 후서(後序)와 이듬해에 김상헌(金尙憲)이 쓴 발문과 1674년 재각(再刻)할 때에 송시열이 쓴 중간발(重刊跋) 및 『화곡유고』에 붙인 정홍명과 장유의 발문이 있다.
『송강집』의 속집은 권1에 시 315수, 권2에 잡저 2편, 소(疏) 4편, 계(啓) 10편, 제문 9편, 서(書) 33편이 수록되어 있다. 부록으로 「동은여우계서(峒隱與牛溪書)」 2편이 있으며, 1677년에 송시열이 쓴 속집발(續集跋)이 있다.
『송강집』의 별집 권1은 시 33수, 부(賦) 4편, 묘갈 · 제문 1편, 서(書) 각 2편, 가간서(家間書) 3편, 잡저 5편, 권2는 송시열의 송강연보 서와 세계도에 이어 연보 상, 권3은 연보 하, 권4는 사제문(賜祭文) · 제문 · 만장에 이어 김장생(金長生)이 편찬한 행록, 권5는 김집(金集)이 쓴 행장과 김수항(金壽恒)이 쓴 시장(諡狀), 권6은 송시열이 쓴 신도비명 및 묘표와 신흠이 편찬한 전(傳), 권7은 변무소(卞誣疏) · 서(書)와 기술잡록(記述雜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철이 쓴 한시는 절구(絶句) 417수와 율시(律詩) 131수, 배율(排律) 12수와 고시(古詩) 23수가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임금을 사모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충절시(忠節詩)와 매죽(梅竹)을 사랑하는 영물시(詠物詩)와 술을 즐기는 취락시(醉樂詩), 그리고 이이(李珥) · 성혼(成渾) · 임억령(林億齡) · 고경명(高敬命) · 최경창(崔慶昌) · 백광훈(白光勳) · 송익필(宋翼弼) 등과 주고받은 교우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정귀는 서문에서 송강의 시를 “말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구절마다 맑고 빼어나서 진실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희귀한 소리로다.”라고 평하여 극찬하고 있다. 정철의 문장에는 서간문이 가장 많고, 소와 계에 해당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송강집』의 서간문에는 성혼과 주고받은 것이 가장 많다. 주로 사리를 따져 상대방으로 하여금 진실을 이해하도록 설득하는 내용의 것이 많다. 특히 자식들에게 보낸 글에는 아버지로서의 정이 간곡하게 드러나 있다. 또한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학문에 힘쓰라는 당부가 담겨 있다.
『송강집』의 「진일도폐막소(陳一道弊瘼疏)」와 「강원감사시계(江原監司時啓)」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소와 계는 목민관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송강의 충성심과 책임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송강가사(松江歌辭)』와 짝을 이루는 『송강집』은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의 가사와 「훈민가(訓民歌)」를 비롯한 시조가 창작되기까지의 배경을 알 수 있게 하고, 또한 이들 국문시가와 견주어볼 수 있는 한시를 다수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과 광해군의 책봉 건의 등의 당대의 중요한 정치정세를 조감할 수 있는 자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송강집』과 『송강가사』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책은 1964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하고 간행한 『송강전집』이 있다.
이 전집에는 『송강집』과 『송강가사』와 미처 간행하지 못하였던 『송강집습유(松江集拾遺)』와 『습유부록(拾遺附錄)』 및 『송강집부록(松江集附錄)』까지 추가하여 수록하고 있다.
『송강집』은 1974년에는 송강집 번간위원회(飜刊委員會)의 노력으로 시는 신호열(辛鎬烈)이 번역하고, 문(文)은 후손인 정운한(鄭雲翰)이 번역한 『국역송강집(國譯松江集)』 상하권 2책이 삼안출판사(三安出版社)에서 발행되었다.
『국역송강집』에는 책머리에 정운한이 쓴 번간사(飜刊辭)가 실려 있고, 본문은 매권 번역문 다음에 원문을 실었다. 그리고 하권 끝에는 황주본(이선본) · 성주본 · 관서본 『송강가사』와 『송강별집추록(松江別集追錄)』 1·2권 및 정철의 친필 수적(手迹)으로 사선정운(四仙亭韻)과 정철의 어머니 안씨(安氏)의 한글 간찰(簡札) 3점을 영인하여 수록하고 있다. 규장각도서와 서울대학교 · 연세대학교 · 충남대학교 도서관 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