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통일신라 시대, 수태가 승가대사상을 조성하며 창건한 서울 종로구 북한산에 있는 사찰.
건립경위
변천
1099년(숙종 4)에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국왕과 왕비를 모시고 참배하면서 불상을 개금하고 법당을 중수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치병을 위한 약사신앙(藥師信仰) 도량으로 유명했다. 함허(涵虛) 기화(己和)가 출가 전에 승가사의 승려와 대화를 나누다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세종 대인 1424년(세종 6)에 기존의 7종을 선교양종(禪敎兩宗)을 통합할 때는 선종 18사에 속했는데, 당시 원래 가지고 있던 전지 60결에 추가로 90결을 더해 총 150결의 보유 전지가 인정되었고 승려 70명이 머물렀다. 18세기에는 북한산성 의승군 제도가 확립되었고 승가사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쳤고 19세기 말 고종 때 민비와 엄상궁의 시주를 얻어 중창했다.
1941년에 도공(道空)이 다시 중수했다가 6·25전쟁 때 소실되었으며, 1957년에 비구니 도명(道明)이 중창하여 대웅전(大雄殿)과 영산전(靈山殿) · 약사전(藥師殿) 등의 전각을 갖추었다. 이와 함께 산신각(山神閣) · 향로각(香爐閣) · 동정각(動靜閣) · 범종각(梵鐘閣) 등도 세워져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동문선(東文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 (동국대 출판부, 1979)
- 『문화유적총람』 (문화재관리국, 1977)
논문
- 남동신, 「북한산 승가대사상과 승가신앙」 (『서울학연구』 14,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2000)
- 최성은, 「삼각산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 소고」 (『보조사상』 49, 보조사상연구원, 201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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