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오위장본』은 6책의 필사본으로 가람 이병기(18911968)가 수집하여 필사한 최초의 신재효(18121884) 문학 전집이다. 『신오위장본』은 신재효 작품 총 24개를 가람 이병기가 1932년부터 1957년까지 필사하고 보완한 것이다.
『신오위장본집』에 수록된 작품은 가람 이병기가 1932년부터 1957년까지 고창을 오가며 빌려온 자료들을 필사한 것이다. 필사는 1949년 완료되었으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다른 본들과 대비, 주석, 보완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책에는 「동창춘향가」와 「남창춘향가」가 수록되어 있다. 제2책에는 「심청가」, 「적벽가」가 수록되어 있다. 제3책에는 「횡부가」, 「치산가」, 「오섬가」가 수록되어 있다. 제1책에서 제3책까지 실린 작품들의 저본은 모두 청계본이다. 제4책에는 「허두가」, 「성조가」, 「호남가」, 「갈처사십보가」, 「추풍감별곡」, 「도리화가」, 「어부사」, 「광대가」, 「단잡가」, 「방ᄋᆡ打鈴」/박성열: 아래아 폰트가 깨져서 이상하게 보이는데 바로 뒤에 있는 「방ᄋᆡ타령」과 같은 것 같습니다. 배은혜: 우측 [집필원고]에서는 아래아 실현됩니다./, 「방ᄋᆡ타령」, 「권유가」, 「명당축원」, 「구구가」가 있으며, 그 저본은 미상이다. 제5책에는 「퇴별가」와 「토끼타령」이 수록되어 있는데, 「퇴별가」는 보성전문학교 소장 정한규본이 저본이며, 「토끼타령」은 1889년 창본인 김종길본이 저본이다. 제6책에는 「박타령」이 수록되어 있으며 저본은 읍내본이다. 이 중 「단잡가」와 「구구가」는 『신오위장본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신재효의 작품 중, 「춘향가」는 '남창'과 '동창'을 분리하여 실었는데, 『신오위장본』에서 가람은 "동창은 여창이라고도 한다. 여창과 동창은 사설이 같되 혹 넘나들기도 한다."라고 써 놓았다. 「수궁가」는 「퇴별가」와 「토끼타령」이라는 두 개의 이본을 실어놓았는데 이 중 「토끼타령」은 '동리선생 소작, 옥천거사 장단'이라 쓰여 있고 사설에 장단을 붙여놓은 창본이다. 「변강쇠가」는 신재효가 남긴 작품이 유일한데, 『신오위장본』에서는 제목이 「횡부가」로 되어있고, 첫 장에 '변강전(횡부가, 가루지기)'이라 적혀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 외에 「광대가」는 판소리의 원리 또는 본질과 역대 광대들의 장기를 다루고 있고, 「치산가」는 돈에 대한 가치관과 재산을 늘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으며, 창작 판소리로 알려진 「오섬가」는 까마귀 남편과 두꺼비 아내의 애절한 사랑과 이별의 쓰라린 심정을 대화체로 엮어 놓은 것이다. 「도리화가」는 59세의 신재효가 24세의 제자인 진채선(陳彩仙)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재효는 최초의 여성 명창 진채선을 제자로 길렀는데,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서 진채선에게 부르도록 했다는 「명당가」, 「방아타령」, 「성조가」 등이 남아 있다.
신재효의 작품은 조선 후기의 변화하는 시대상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아전으로서의 중층적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가 소리꾼들의 후원자이자 판소리 이론가, 교육자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가치를 지닌다. 신재효의 사설은 상층과 하층의 시각을 동시에 반영하면서도 특유의 냉소적인 비판과 터무니없는 웃음 등을 통해 판소리의 문학성을 살리고 있다고 평가된다. 『신오위장본』은 이러한 신재효의 사설을 집대성하여 판소리 사설뿐아니라 그의 창작 가사나 단가, 개작된 민요 등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신오위장본(가람본)』 전 6책은 긴 시간 동안 가람 이병기의 노력으로 편찬된 것으로 동리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과 문학을 집대성한 최초의 전집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가람본은 읍내본, 성두본, 신씨가장본, 와촌본 등 다른 이본에 비해 가장 먼저 편찬되어 알려지고, 이후 1969년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영인됨으로써 신재효 연구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후 동리 신재효 사설의 필사본 수집과 연구는 제자인 강한영, 김삼불 등에게로 이어져 심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