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구자탕은 신선로에 여러 어육과 채소를 색스럽게 넣어 끓인 음식이다. 궁중에서는 맛이 좋은 탕이라는 뜻에서 열구자탕이라 하였다. 『규합총서』·『동국세시기』 등에서는 그릇 이름 그대로 신선로라 하였다. 궁중의 잔치기록인 『진연의궤』에 의하면 열구자탕에는 25종류의 식품이 들어간다. 열구자탕의 모든 재료는 신선로의 너비에 맞게 골패형으로 썰어 색을 맞춰 담는다. 가장 위에 호두·은행·잣 등을 둘러 담고 손잡이가 달린 높이까지 육수를 넣어 끓인다. 열구자탕은 호화로운 음식이어서 교자상이나 주안상에 올리면 가장 좋은 대접으로 쳤다.
궁중에서는 맛이 좋은 탕이라는 뜻에서 열구자탕(悅口資湯)이라 하였다. 『소문사설(謏聞事說)』에서는 열구자탕(熱口子湯),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는 열구지(悅口旨), 『규합총서(閨閤叢書)』 · 『시의전서(是議全書)』 · 『해동죽지(海東竹枝)』 · 『동국세시기』 등에서는 그릇 이름 그대로 신선로라 하였다.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 기록된 신선로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연산군 때에 시문에 능하고 음양학에 밝은 정희량(鄭希良)이 있었다. 그는 점을 쳐서 자신의 운명과 수명을 알고 일찍이 둔세(遁世)할 뜻을 가졌다.
정희량은 무오사화 때에 의주로 귀양갔다가 몇 년 뒤에 돌아와서는 앞으로 이번 사화보다 더 심한 사화가 있을 것이니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중이 되겠다 하면서 집을 나갔다. 그리고 산수간(山水間)에 방랑하면서 이름을 이천년(李千年)이라 하였다. 그는 선인(仙人)의 생활을 하였다.
정희량은 수화기제(水火旣濟; 주역의 쾌 이름)의 이치로써 화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서 거기에다 여러 가지 채소를 한데 넣어 익혀 먹었다. 그가 신선이 되어 속세를 떠나간 뒤에 세상 사람들이 그 화로를 신선로라 부르게 되었다.
민간이나 궁중에서 만든 열구자탕은 채소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고기와 생선이 들어간 상당히 호화로운 음식이다. 궁중의 잔치기록인 『진연의궤(進宴儀軌)』에 나온 찬품단자(饌品單子)는 소 안심고기 · 곤자소니(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가 많은 부분.) · 간 · 천엽 · 돼지고기 · 돼지새끼 · 꿩 · 묵은 닭 · 전복 · 해삼 · 숭어 · 달걀 · 표고 · 미나리 · 무 · 녹말 · 밀가루 · 파 · 참기름 · 간장 · 후추 · 잣 · 은행 · 호두 등 25종류의 식품이 들어간다.
『옹희잡지(甕―雜志)』에서는 쇠갈비고기 · 양 · 천엽을 데쳐서 채 썬 것, 닭고기 · 꿩고기를 기름에 데쳐 내어서 채 썬 것, 붕어 · 숭어의 전유어(얇게 저민 고기나 생선 따위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입혀 기름에 지진 음식)를 잘게 썬 것, 마른 전복 · 해삼 · 파 · 부추 · 미나리 · 순무뿌리 · 무뿌리 · 생강 · 고추 · 천초 · 잣 · 대추 · 달걀흰자위 등을 쓴다고 하였다.
열구자탕을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쇠고기와 무를 넣어 육수를 만든다. 고기는 익은 것을 썰어서 신선로 밑에 깐다. 그런 다음에 날고기는 각각 양념하여 그 위에 담고, 숭어 · 민어는 전유어로 만들어 담고, 전복 · 해삼 · 표고는 알맞게 썰어 사이사이에 끼워 담는다. 미나리는 꼬치에 나란히 꿰어서 초대로 지지고, 달걀은 노른자와 흰자를 갈라서 지단(고명의 하나.)을 부친다.
모든 재료는 신선로의 너비에 맞게 골패형으로 썰어 색을 맞추어 담는다. 손잡이가 달린 높이까지 담아야 육수가 많이 들어가고 끓어서 넘지 않는다. 가장 위에 호두 · 은행 · 잣 · 고기완자 등을 둘러 담는다.
교자상 또는 주안상에 올릴 때에는 더운 육수를 삼삼하게 간을 맞추어 붓고 백탄을 피운다. 백탄을 화통에 넣어 살살 끓어오르면 물이 담긴 사기접시를 상에 놓고 그 위에 신선로를 올려놓는다. 양이 줄어들면 귀대접(국물을 따르기 좋게 한쪽에 입이 달린 형상의 대접)에 육수를 가지고 나가서 국물을 보충하여놓는다. 불을 끌 때에는 작은 접시에 물을 담아 화통 입에 올려놓는다.
열구자탕은 재료가 호화롭고 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어서 교자상이나 주안상에 올리면 가장 좋은 대접으로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