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축식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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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우덕린(禹德麟)이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행할 때 필요한 축문 서식을 모은 책.
문헌/고서
편찬 시기
19세기
간행 시기
1877년
저자
우덕린
편자
우덕린
편저자
우덕린
권책수
불분권 1책
권수제
이례축식찬요
판본
목활자본
표제
이례축식찬요
소장처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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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례축식찬요』는 풍계(楓溪) 우덕린(禹德鱗, 1799∼1875)이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의식을 진행하는 과정에 필요한 축문 서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우덕린의 사촌 형제의 손자인 수석(壽石) 우상빈(禹相斌)이 친구인 조석희(趙奭熙)가 1877년에 지은 서문을 받아서 불분권(不分卷) 1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정의
우덕린(禹德麟)이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행할 때 필요한 축문 서식을 모은 책.
저자 및 편자

우덕린(禹德鱗)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명수(明叟), 호는 풍계(楓溪)이고, 거주지는 개성(開城)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으나, 본서의 서문과 그의 또 다른 예서인 『이례연집(二禮演輯)』의 서문 및 발문을 종합하여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우덕린은 시호가 충정공(忠靖公)인 양호당(養浩堂) 조현보(趙玄寶, 1333∼1400)의 후손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아래에서 성장하면서 예학의 중요성을 깨달아 오랫동안 연구하였다. 7∼8세 무렵에 개성 출신의 학자인 나산(蘿山) 조유선(趙有善, 1731∼1809, 본관 稷山)에게 잠시 학문을 배웠고, 이때 조유선은 그가 큰 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고 한다. 조유선 외에는 특별한 스승 없이 독학하였다. 아들 3형제 중 막내가 송암(松菴) 우동연(禹東淵)이고, 우동연의 아들이 우상면(禹相冕)이며, 우상면의 아들이 『이례연집』의 ‘주간 겸 발행자’인 우보형(禹普亨)이다.

서지사항

이 책은 1877년 무렵에 간행된 목활자본이다. 주쌍행(註雙行)에 불분권(不分卷) 1책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99면에 10행 20자이며, 상이엽화문어미(上二葉花紋魚尾)이다. 우덕린의 사촌 형제의 손자인 우상빈(禹相斌)이 의뢰하여 조석희(趙奭熙, 본관 稷山)가 1877년에 지은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우상빈은 『이례연집』 발문을 지은 우석형(禹奭亨)의 아버지이다. 권수제(卷首題)는 ‘이례축식찬요’이다. 판심제(版心題)도 거의 ‘이례축식찬요’인데, 본서 말미에 부록한 ‘부혼서급서소식(附婚書及書䟽式)’ 부분의 판심제는 ‘부혼서식(附婚書式)’과 ‘부서소식(附書䟽式)’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우덕린은 일찍부터 예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예학에 대해 연구했다. 우리나라에서 『상례비요(喪禮備要)』『예의유집(禮疑類輯)』 등이 나왔지만 규모가 방대하여 요점을 잡아 시행하는 데 불편함이 있었다. 우덕린은 상례(喪禮)제례(祭禮)에 한정하여 당대에 적절한 의식을 4책으로 편찬했고, 이것이 『이례연집』이다. 그런데 이 책을 간행하려니 비용이 많이 들어 축문 서식만 따로 모아 1책으로 요약한 것이 『이례축식찬요』이다. 끝부분에는 혼례(婚禮) · 입후(立后) 등도 추가하였다. 이 책은 우덕린 당대에는 간행되지 못하였고, 그의 사촌 형제의 손자인 우상빈이 조석희의 서문을 받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서의 원형인 『이례연집』은 이보다 50년 가량 늦게 간행되었다. 우덕린의 아들 3형제 중 막내인 송암(松菴) 우동연(禹東淵)이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에게 의뢰하여 1891년 『이례연집』을 수정하고 서문을 받았으며, 우동연의 아들 우상면(禹相冕)은 우덕린의 손자뻘인 우상훈(禹相勛)에게 1924년 『이례연집』의 발문을 받았다. 우상면의 아들 우보형(禹普亨)은 우덕린의 재종증손 우석형(禹奭亨)에게 『이례연집』 교감(校勘)을 맡기고 1925년에 발문을 받아 이듬해인 1926년에 ‘주간 겸 발행자’를 ‘우보형’으로 하여 이 책을 간행하였다.

구성과 내용

『이례축식찬요』의 ‘이례’는 상례와 제례인데, 권말에 관례(冠禮)와 혼례 등의 고사도 기록하였다. 구성은 상례, 장례(葬禮), 우제(虞祭) 이후부터 천봉개제(遷奉改題)까지의 상제례(喪祭禮), 시제(時祭)부터 외손봉사(外孫奉祀)까지의 상사(常祀) 등 4개 항목을 설정하고 그와 관련한 축문 서식을 수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생진과환(生進科宦), 생자고유(生子告由), 입후고사(立后告辭) 등의 조목도 수록하고 있는데, 실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예식과 관련한 축문을 포괄적으로 담으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우덕린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지촌(芝村) 이희조(李喜朝)→도암(陶菴) 이재(李縡)→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나산(蘿山) 조유선(趙有善)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계승했고, 조유선이 동문인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과 친분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본서에서 예학에 뛰어났던 박윤원의 예설이 많이 인용된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제외하고 영남 예학자의 학설을 인용한 곳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의의 및 평가

예를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문(文)’과 ‘질(質)’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서는 이 가운데서 ‘문’에 해당하는 축문 서식에 방점을 두고 편집하되, 상례와 제례를 중심으로 예식에 중요한 축문을 정리하면서 예식 시행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축문이나 홀기(笏記)만 별도의 예서로 편찬하던 19세기 중후반 조선 예학사의 흐름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라 김장생(金長生) 이후로 서인 노론 계열의 박윤원의 예설이 우덕린에 의해서 상당 부분 계승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이례축식찬요(二禮祝式簒要)』
『이례연집(二禮演輯)』(필사본)
『이례연집(二禮演輯)』(연활자본)
『한국예학총서』 83(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1)

논문

남재주, 「조선후기 예학의 지역적 전개 양상 연구」(경성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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