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이다. 안정복이 작성한 목민서로 지방관이 수행할 지방 행정과 민폐에 대한 시정책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안정복은 1738년(영조 14) 27세 되던 해에 『치현보(治縣譜)』란 제목으로 저술한 후 수정 작업을 거쳐 46세 때인 1757년(영조 33)에 『임관정요』라는 제목으로 완성하였다.
임관정요는 서문과 본문인 정어(政語) · 정적(政蹟) · 시조(時措)의 3편 및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천덕(天德)과 왕도(王道),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일체로 보고, 일찍이 배우지 않고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었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후세에는 학문과 다스리는 일을 다른 것으로 인식해 유리(儒吏)와 속리(俗吏)로 구별하는 실태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서적이 도움 되기를 기대하였다.
본편은 정어 · 정적 · 시조의 3편으로 분류되어 있다. 안정복은 임관정요 서문에서 정어는 성현의 가르침을, 정적은 이미 시행된 효과를, 시조는 시세를 참작하여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정어는 정적과 시조의 강(綱)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선진 유학의 통치 이념과 방식을 다루고 있으며, 정적은 지방관으로서 역사상 치적을 남겼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시조에서는 안정복의 사상을 담은 정치의 요체를 담고 있어 이 책의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조에서는 위정(爲政) · 지신(持身) · 처사(處事) · 풍속(風俗) · 임민(臨民) · 임인(任人) · 접물(接物) · 어리(御吏) · 용재(用財) · 농상(農桑) · 호구(戶口) · 교화(敎化) · 군정(軍政) · 부역(賦役) · 전정(田政) · 조적(糶糴) · 진휼(賑恤) · 형법(刑法) · 사송(詞訟) · 거간(去奸) · 치도(治盜) 등 21개 항목으로 나누고, 지방관의 자세와 역할을 중점적으로 논하고 있다.
위정에서는 『고려사』와 『경국대전』을 인용하며 수령칠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지방관이 지방 행정을 담당하면서 갖추어야 할 도덕적 덕목과 위정의 방침을 다루었다. 지신 · 처사 · 풍속 · 임민 · 임인 · 접물 · 어리에서는 지방관의 자세와 대인 관계 및 백성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지침들을 서술하였다. 용재 · 농상 · 호구 · 교화 · 군정 · 부역 · 전정 · 조적 · 진휼 · 형법 · 사송 · 거간 · 치도에서는 지방관이 지방 통치를 할 때 구체적인 방안들이 정리되었다.
예를 들어 용재에서는 자기 것 아끼듯 절약하고, 농사는 절기와 수리를 원활히 하는 것을 다뤘다. 농상에서는 권농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정리하면서 수리 분야에서는 서양 과학 기술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호구에서는 민수와 가산 파악을 잘하고 적임의 면임(面任)을 선임하여 민적을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화에서는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교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교화를 실현할 기구로 향약과 학교를 중시하였다.
군정에서는 사망 · 노제자(老除者)의 대역(代役)에는 언제나 궐원(闕員)에 따라 충정(充定)하라고 일렀다. 일반 한정(閑丁)은 농한기인 연말에 찾아 내 본인의 다짐을 받아 장부를 작성해 두었다가 봄철이 지난 후 궐원에 따라 충정하라고 했다. 부역에서는 법전(法典)에 의해 시행하며 부세 징수를 균평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전지(田地)의 농사 실태를 조사하여 연분등제(年分等第)를 살펴 과세하고, 잡다한 부세(賦稅)는 없애야 하며,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해 민역(民役) 징수를 통일하라고 일렀다.
전정에 대해서는 양안(量案)을 파악하고 면임을 단속하며 전결과 재실(災實)을 조사한 다음, 수령 자신이 현지를 답사하여 공죄(功罪)를 논하라고 말했다. 조적에 대해서는 환곡의 분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폐단을 서술하고 그 대책을 다루었다. 진휼은 기민(飢民)을 3등으로 구분해 맥곡(麥穀)이 나기 전까지 10일 간격으로 나눠 지급하되, 환(鰥) · 과(寡) · 고(孤) · 독(獨)을 중점 구호한다.
형법은 정과 법의 경중을 가려 『대명률(大明律)』, 『결송유취(決訟類聚)』를 기본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송에서는 사송의 처리 순서와 방법을 정리하였고 자주 발생하는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다루었다. 치도에서는 도적을 다스리는 방안들을 정리하였다.
다음 부록에서 향사법(鄕社法)은 향수제(鄕遂制)의 유의(遺意)라고 하면서, 명나라에도 남아 있다고 밝혔다. 향사법이 시행되어야 제대로 다스려질 것이라 하면서 우리나라의 향리 제도는 한계를 지닌다고 하였다. 사족(士族) · 품관(品官) · 공장(工匠) · 상고(商賈) · 군사(軍士) 등을 통(統) · 갑(甲) · 사(社) · 향(鄕)으로 편성했다. 그리고 향사의 적(籍)을 꾸미고, 향사의 정(政) · 교(敎) · 예(禮) · 양(養) · 비(備) · 금(禁) · 패식(牌式)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사창(社倉)은 흉년을 구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항통법(缿筒法)은 투서함을 마을에 설치하는 제도로서 권장하고 있다. 금송작계절목(禁松作契節目)에서는 촌민이 계를 결성해 촌민 자치제로 금송(禁松)하게 하여 백성을 구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끝으로 치군요법(治郡要法)은 시조의 내용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요 사항을 기술한 논문이다.
임관정요는 안정복의 향정론이 집약된 서적이자 조선 후기 여러 목민서에 일부 재수록되거나 후에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영향을 주었다. 표제 서명이 『임관정요』로 된 책은 편차나 부록들이 각기 다른 여러 종류가 전하고 있다. 규장각 도서 · 장서각 도서 ·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이 외에도 『백리경(百里鏡)』이라는 서명으로 된 서적도 자리한다.
임관정요는 정어, 정적, 시조 등으로 구성하여 지방 통치에 필요한 이념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지방관으로서 수행해야 할 역할들이 정리된 서적이다. 안정복의 지방 통치 이념을 확인할 수 있으며 후에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주어 조선 후기 목민서 편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