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도 ()

양식장 / 조약도
양식장 / 조약도
자연지리
지명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에 있는 섬.
이칭
이칭
약산도(藥山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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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에 있는 섬.
개설

동경 126°57′, 북위 34°24′에 위치하며, 완도에서 동북쪽으로 15.2㎞ 지점에 있다. 면적은 23.84㎢이고, 해안선 길이는 45.0㎞이다. 남서쪽에 신지도, 동쪽에 평일도, 서쪽에 고금도가 있다. 약산면의 유일한 유인도로서, 약산면의 주도이며, 고금도와는 연도교로 연결된다.

명칭 유래

삼지구엽초 등 산약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하여 약산면이라 불렸다. 옛날부터 이 섬의 산에는 약재가 많이 있어서 어느 산이든지 ‘藥山(약의 산)이다’라는 말이 있었기에 조약(助藥)과 뜻이 비슷하고 어감과 부르기 좋은 ‘약산’이란 말이 많이 쓰이기 시작하여 개칭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조약도라는 명칭과 함께 약산도라는 명칭도 자주 사용된다.

자연환경

섬의 중앙에 삼문산(三門山, 399m)이 솟아 있으며, 이 곳에서 발원한 계류천들이 해안에 유입하면서 북서쪽과 북동쪽 일대에 평지를 형성하여, 득암리․장용리 등의 마을을 이룬다. 해안선의 굴곡이 심한 편이다. 섬의 서남쪽에는 넓은 간척지가 조성되어 주로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동쪽에 공고지산(336m)이 있으며 북쪽해안에 포구가 발달하였다. 연안의 간석지에는 양식업이 성하다. 1월 평균기온 1.9℃, 8월 평균기온 25.1℃, 연강수량 1,282㎜이다.

형성 및 변천

조약도는 백제의 새금현(塞琴縣)에, 통일신라시대에는 탐진현(眈津縣)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영암군의 탐진현에, 1124년에는 장흥부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강진현 조약도로 480년간 속해오다가 1896년완도군이 만들어지면서 완도군 조약면(助藥面)이 되었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금면(古今面)으로 통합되었다. 1916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 때 조약면이 고금면으로 통합된 이후 '고금면 조약도‘라고 불리어 왔다. 1949년에 고금면에서 분리되면서 약산면(藥山面)에 속하게 되었고, 약산면의 주도가 되었다.

현황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2,533명(남 1,247명, 여 1,28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1,287세대이다. 삼문산 산사면의 해안가에 취락이 입지해 있다. 바다신을 숭상하는 마을공동의 제향이 정월대보름에 행하여지고 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2.72㎢, 밭 3.44㎢, 임야 16.33㎢이다. 주민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마늘·고추․무․배추․참깨 등이 생산된다. 삼지구엽초를 비롯한 약초를 먹고 자란 흑염소가 유명하다. 근해에서 멸치·농어․장어․낙지․문어 등이 어획되며, 김과 미역양식업이 활발하다.

완도와 강진군 사량 사이에 정기여객선이 운항하며, 고금도와는 약산연도교로 연결되어 강진군 마량면으로 연육이 가능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약산초등학교와 약산중고등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완도통계연보』(완도군, 2010)
『한국지명유래집-전라/제주편』(국토지리정보원, 2010)
『한국도서백서』(전라남도, 1996)
『도서지』(내무부, 1985)
『도정백서-도서현황 및 개발계획편-』(전라남도, 1981)
완도군(www.wand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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