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식도 ()

자연지리
지명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오식도동에 있었던 섬.
이칭
이칭
오죽도(筽竹島), 오죽도(梧竹島), 요죽도(樂竹島), 오시도(烏屍島)
지명/자연지명
면적
1.76㎢
둘레
6.3㎞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오식도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오식도는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오식도동에 있었던 섬이다. 간척사업의 결과 오식도와 그 주변으로는 군산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현재는 그 원형을 찾아 보기 어렵다. 현재 섬의 일부만이 오식도 공원으로 조성되어 남아 있다. 매립되기 전 오식도의 해안에는 해안사구가 크게 형성되어 있었으며, 주변으로는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였었다.

정의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오식도동에 있었던 섬.
개설

오식도(筽篒島)는 군산에서 남서쪽으로 18㎞ 지점에 있고, 남쪽에는 가도가 있다. 동경 126°34′, 북위 35°58′에 위치하며, 면적 1.76㎢은 해안선의 길이는 6.3㎞이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지금은 육지화되었으며, 현재는 오식도 공원을 중심으로만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지질은 주1 주2의 화강암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명칭 유래

오식도는 조선시대에 전라도주3를 한양으로 실어 나르는 배들이 쉬어가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선단이 침몰하여 선원의 시체가 가득하고 시체 위에 까마귀 떼가 앉아 있었다 하여 까마귀 ‘오(烏)’자, 주검 ‘시(屍)’자를 따 오시도(烏屍島)라 불렀다. 그 뒤 일제강점기 때 이름이 불길하다 하여 오 씨가 많이 살며 대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대바구니 ‘오(筽)’자, 대바구니 ‘식(篒)’자를 따 오식도라 하였다.

자연환경

매립되기 전 오식도 해안과 그 주변에는 해안사구와 넓은 간석지가 분포하였는데, 이는 금강의 토사가 남쪽으로 흐르는 연안 해류에 의하여 이동되고 퇴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1919년 이래 간석지들을 간척하여 내초도(內草島)를 지나 비응도까지 육지에 연결되었고, 이후 오식도까지 전부 매립되어 연결되었다.

오식도의 1월 평균 기온은 -1℃, 8월 평균 기온은 27℃, 연 강수량은 1,094㎜, 연 강설량은 197㎜이다. 육지화되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어업을 겸하고 있었으며, 경지 면적은 논 36㏊, 밭 37㏊로 경지율은 38.8%이었다.

현황

오식도는 1989년 옥구군(현, 군산시)에서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로 편입되었으며, 군산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완전히 육지화되었다. 육지화된 이후에는 오식도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인근의 비응도동, 소룡동을 합쳐 행정동으로는 소룡동으로 구분된다. 통계 자료상 소룡동의 인구는 2020년 기준 8,378 세대수에 18,241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군산시 전체 인구의 약 6.7% 정도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소룡동 일원에는 총면적 6,828㎢의 군산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중 오식도동 북동쪽에 현대기아차 부두(구, 군산항5부두)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대우자동차 전용 부두가 건설되어 있다. 오식도동의 남단으로는 21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는 한편 남서쪽으로는 비응도가 있는데 이곳은 세계 최장의 방조제인 주4 방조제의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신시도를 거쳐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2013년에는 「새만금특별법」을 통해 새만금개발청(새만금청)이 설립되었는데, 현재 오식도동에 새만금개발공사와 함께 있으며, 해양경찰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군산광역항해상교통관제센터도 오식도동에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새만금초등학교가 있는데, 군산국가산업단지 개발 이후 입주 기업 근로자들의 거주지로 택지 개발 사업이 이루어지며 인구가 증가하자, 2013년도 신설된 오식도초등학교가 2016년 현재의 교명으로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과거 오식도 주변에서는 · 보리 · · 고구마 · · 등이 생산되는 한편, 연안에서는 갈치 · 민어 · 꽃게 등이 주로 어획되었다고 한다. 또한 섬 남쪽에는 소규모 염전도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매립되어 산업단지로 조성되면서 농업 및 어업 활동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옛 지형으로서 간석지와 염전도 지금은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참고문헌

단행본

『도서요람(島嶼要覽)』 (내무부, 1983)
『도서지(島嶼誌)』 (내무부, 1985)

인터넷 자료

군산시청(http://www.gunsan.go.kr/)
디지털군산문화대전(www.grandculture.net)
새만금초등학교(http://school.jbedu.kr)
주석
주1

지질 시대의 구분에서 고생대와 신생대 사이의 시기. 지금부터 약 2억 4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이다. 겉씨식물이 번성하였고,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를 비롯하여 양서류ㆍ암모나이트 따위가 번성하였다.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다시 나뉜다. 우리말샘

주2

중생대를 3기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 지질 시대. 약 1억 4,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우리말샘

주3

조선 후기에, 공물(貢物) 대신 바치던 쌀. 우리말샘

주4

전라북도 군산시부터 김제시를 거쳐 부안군까지의 섬들을 연결하는 방조제. 또는 그 방조제가 건설된 지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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