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126°53′, 북위 34°25′에 위치하며, 완도에서 동쪽으로 5㎞, 고금도에서 남쪽으로 1㎞ 지점에 있다. 면적은 30.99㎢이고, 해안선 길이는 48.0㎞이다. 신지면에는 신지도와 모항도 2개의 유인도가 있는데, 모항도의 인구는 3명에 불과하다. 신지도는 신지면의 주도로, 섬들이 연결되어 형성된 도서이며, 완도와는 2005년 12월에 완공된 신지대교를 통해 연결된다.
원래 지도(智島)라 칭하였으나 나주목에 지도(현 신안군 지도읍)라는 지명이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하여 나무가 많은 섬이라 하여 신(薪)자를 붙여 신지도라 부르게 되었다. 청산도 만호진이 옮겨오면서 새로운 군주둔지가 되어 ‘신둔지(新屯地)’가 되어 이후 ‘신지’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지질은 중성 및 염기성화산암류, 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상산(象山, 325m)·노학봉(老鶴峰, 225m)·범산(虎山, 151m)·기선봉(141m) 등이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서남쪽에 소규모의 평지가 있다. 상산의 북쪽 말단부에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노학봉 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천들이 흐르며, 하천 변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범산과 기선봉 사이에도 취락과 농경지가 있다. 섬의 남쪽은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해안에는 길이 3.8㎞. 폭 150m의 백사장을 가진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있는데 이 곳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섬의 동쪽에는 동고리해수욕장이 있다. 섬의 서북쪽에는 넓은 간석지가 형성되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1월 평균기온 1.9℃, 8월 평균기온 25.1℃, 연강수량 1,282㎜이다. 동백나무·후박나무·곰솔·팽나무 등의 아열대성 식물이 자란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통일신라 말기에는 청해부에,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장흥부에 속하였다가 이후 강진현에 이속되었다. 1596년에는 송곡리에 수군방어진을 설치하여 수비케 하였으나 1865년 동학난으로 폐진되었다. 1896년에 완도군이 신설되면서 완도군에 편입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신지면 소속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조선시대에 좋은 말을 길러 조정에 올려 보낸 곳으로 지금도 마장터의 흔적이 있다. 매년 7월에는 조상의 묘소에 나가 벌초를 하고 묘사(墓祀)를 지내며 근친간의 결속과 우의를 다지는 풍습이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3,820명(남 1,905명, 여 1,918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1,844세대이다. 신지면 인구가 3,823명이므로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신지도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면사무소가 있는 대곡리가 섬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3.50㎢, 밭 4.80㎢, 임야 17.60㎢, 대지 0.60㎢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마늘·무․배추․참깨 등이 생산된다. 근해에서 멸치류가 가장 많이 잡히고, 조기․가자미․돔․정어리․밴댕이 등도 많이 잡힌다. 섬 주변의 해안에서는 김양식업이 아주 활발하다.
신지대교를 통해 완도읍 가용리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해졌다. 교육기관으로는 신지초등학교와 신지동초등학교, 완도신지중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