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유는 고려 초기에 고승들과 관련된 의례를 담당하던 승직(僧職)이다. 불교와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였다. 태조 대에 고승이 입적하자 왕명을 받고 조문하는 글과 부의를 가져갔고, 광종 대에는 국사가 하산하는 것을 돕는 등, 고승을 위한 의전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고려 초기에 좌승유의 소속 관서의 명칭은 확실하지 않으며, 후대의 승록사와 연계되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고려 초기에 고승들과 관련된 의례를 담당하도록 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좌승유는 고려 초기에 불교와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는 승관이다. 고려 태조 대에 불교계와 승려를 관리하기 위하여 승계(僧階)를 두었으며 불교 행사와 의식을 담당하는 관서도 설치되었다. 실제로 938년(태조 21)에 본래 마갈타국(摩竭陁國) 대법륜보리사(大法輪菩提寺)의 승려였던 서천축국(西天竺國)의 홍범대사(弘梵大師) 질리부일라(㗌哩嚩日羅)가 오자 왕이 양가(兩街)의 위의(威儀)와 법가(法駕)를 성대히 갖추어 그를 맞이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좌승유와 관련해서는 965년(광종 16)에 정진대사가 「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聞慶鳳巖寺靜眞大師塔碑)」에 입적하자 승관 좌승유(左僧維), 대덕(大德) 담유(淡猷)가 왕명을 받고 조문하는 글과 부의를 가져갔고, 우승유(右僧維) 대덕 종예(宗乂) 등은 다른 관원과 더불어 진영을 가져가고 재를 지내는 의식을 수행하였다.
또한 「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碑)」에는 975년(광종 26)에 승유(僧維) 석 혜윤(惠允)이 법인국사를 호위하여 하산하는 일을 도왔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보건대, 광종 대에 승유가 좌우로 나뉜 것은 태조 대 양가와 부합하는 점이 있으며, 왕사의 상례에 파견되고, 국사를 배행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등 주로 왕명을 받고 왕사와 국사 같은 최고위 승려의 의례를 맡았다고 여겨진다.
다만, 좌우승유가 불교의 제반 사무를 맡아보기 위하여 중앙에 설치되었던 승록사(僧錄司)와 연계되는지는 광종 대의 두 사례 밖에 없어서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고려 초기에는 승총(僧摠) · 좌우승유 등의 승직이 있지만, 그들의 소속 기구의 명칭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후대의 승록사와 연계시킬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좌승유의 활동은 고려시대 불교 행정과 의례를 담당하는 기관이 태조 대부터 있었으며, 업무도 좌우로 나눌 만큼 꽤 많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다만, 좌승유 소속 관서가 후대에 불교계와 관련된 제반 사무를 담당하는 승록사와 연계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