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진보읍지(眞寶邑誌)』는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여 내부(內部)에 보고한 읍지이다.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지금의 [청송군 진보면 · 파천면, 영양군 입암면 일대]에서 고을의 역사와 지리, 인물, 시문 정보와 통계 및 조사 자료 등을 수록하여 중앙정부 기관에 보고하였다. 1책 20장의 필사본으로, 표제는 ‘경상북도진보군읍지(慶尙北道眞寶郡邑誌)’이고, 권수제는 ‘진보읍지’이다.
수록 항목은 진보군 지도, 진보읍지 강역,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풍속(風俗), 군액(軍額), 성곽(城郭), 임수(林藪), 창고(倉庫), 군기고(軍器庫), 관방(關防), 진보(鎭堡), 포구(浦口), 봉수(烽燧), 학교, 단묘(壇廟), 총묘(塚墓), 사찰, 공해(公廨), 누대,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 우거(寓居), 절부(節婦), 열부(烈婦), 효부(孝婦), 효자, 제영(題詠), 비판(碑板), 결총(結摠), 호총(戶摠) 순으로 구성하였다. 진보군에 해당하지 않는 성곽과 관방, 진보, 포구, 도서, 목장 항목 뒤에는 ‘무(無)’라고 적었다. 환적 항목에는 1894년(고종 31)부터 1897년(광무 1)까지 재직한 임백순(任百淳)까지 기재하였다.
경상북도 관찰부에 보고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의 『진보군읍지(眞寶郡邑誌)』도 『진보읍지』와 같은 내용을 싣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진보군지(眞寶郡誌)』도 같은 내용을 싣고 있으며, 환적은 1897년부터 1899년까지 재직한 유정헌(兪正憲) 뒤에 ‘오(吳)’까지 기재하였다. 이는 1899년 6월 25일에 진보군수로 임명된 오횡묵(吳宖默)을 가리킨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년]와 『영남읍지(嶺南邑誌)』[1871년], 국립고궁박물관의 『읍지(邑誌)』[1878년]에 실린 읍지도 위의 세 읍지와 거의 같은 형태이다. 이러한 유형은 1768년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대체하기 위하여 보급한 읍지 수록 규정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1832년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임수와 군기 항목을 추가하여 경상도의 모든 고을 읍지에 적용하게 한 『경상도읍지』 유형이라 할 수 있다. 1895년(고종 32)에 보고한 『영남읍지』에 실린 읍지에는 사례(事例)까지 수록하였으나 11장에 불과하고, 내용도 단순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진보현읍지(眞寶縣邑誌)』도 『경상도읍지』 유형인데, 1786년(정조 10)에 보고한 읍지를 정서한 『안동진관진보현[읍지]』을 1910년대 전반에 베낀 것이다. 원본은 현재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의 『단성지(丹城誌)』에 합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