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용추동고분(平壤龍秋洞古墳)은 평양직할시 룡성구역에 있는 고조선 후기의 덧널무덤이다. 덧널의 북쪽이 부장칸이 되는 전형적인 단장 덧널무덤의 구조이다. 출토된 유물이 명기화된 점에서 늦은 시기의 구덩무덤으로 파악된다. 평양용추동고분 덧널무덤의 존재는 대동강 남쪽 기슭에 집중되는 전형적인 덧널무덤의 전체적인 분포 범위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여기서 출토된 나무칼과 칼집의 형태는 진한 사회의 대구팔달동유적과 유사한 점이 있어 양 지역 간에는 상호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행정구역상 평양직할시 룡성구역 용추동에 해당하는 곳으로 평양직할시의 동북부에 자리한다. 용성에서 마람 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 3.7㎞ 정도를 가면 합장강을 만나게 되는데, 이 강을 따라가다 만나는 선우촌의 동쪽 자지산 자락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무덤은 이미 내부가 파헤쳐진 상태였다. 무덤구덩이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석비례(풍화된 화강암) 생흙과 회색 기조의 무덤구덩이 내부는 색조에서 차이가 분명하였다. 무덤구덩이 내부에서는 뚜껑이 사라진 덧널과 나무널이 발견되었다. 무덤을 처음 굴착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나무널 윗면에도 10~15㎝ 정도의 회색 점토가 덮혀 있었다고 한다.
덧널은 나무를 모나게 깎아서 만들었으며 그 내부에 남쪽으로 치우쳐 나무널을 배치하였다. 자연스럽게 덧널의 북쪽이 부장칸이 되는 구조로 전형적인 단장 덧널무덤의 구조이다.
덧널은 폭 1520㎝, 두께 1012㎝ 정도의 목재를 각각 3개씩 연결해서 만들었는데, 바닥은 두께 10㎝, 폭 32~35㎝ 널재목을 3개 모아서 만들었다. 덧널의 길이는 270㎝이며 동서 폭은 100㎝, 높이는 50㎝이다. 덧널의 동서 두 벽은 안으로 휘어져 들어와 나무널과 붙은 상태였다. 덧널 내부의 부장칸은 덧널의 북쪽에 마련되었는데, 동서 90㎝, 남북 30㎝ 정도이다.
나무널은 원래 상태로 잘 남았는데, 양옆과 마구리판은 잘 다듬어서 끼우고 나무못으로 연결시켰다. 길이는 186㎝, 폭은 50㎝, 높이는 50㎝이다.
출토 유물은 나무널 내부에서 출토된 것과 덧널 내 부장칸에서 출토된 것으로 나누어진다. 나무널 내부 피장자의 허리춤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의 형태를 한 나무칼과 칼집이 발견되었다. 보고자들은 칼집을 대나무로 만들었으며, 각 부위를 잘라서 결합하고 옻칠을 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칼 손잡이의 마구리 부분에 결합될 칼자루끝장식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칼집 주변에서는 탄화(炭化)된 기장쌀이 다수 출토되었다.
부장칸에서도 일산살대투겁과 나무 용기의 바닥 조각이 출토되었다. 일산살대투겁은 모두 22개가 출토되었다. 그 가운데 큰 것이 6개이고 작은 것은 16개이다. 큰 것은 길이가 3.44㎝이고 지름은 1.2㎝, 작은 것은 길이가 2.33㎝, 지름이 0.8㎝이다.
보고자들은 평양용추동고분 덧널무덤은 출토 유물이 이미 명기화된 것이어서 늦은 시기의 구덩무덤이라고 평가하였다. 즉 고조선 후기의 묘제(墓制)로 보았다.
평양용추동고분 덧널무덤의 존재는 대동강 남쪽 기슭에 집중되는 전형적인 덧널무덤의 전체적인 분포 범위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평양직할시에서 제법 동북으로 떨어진 지역까지 전형적인 덧널무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한편, 피장자가 칼날이 있는 칼을 패용(佩用)하지 않고 나무칼을 세형동검처럼 가공하여 칼집에 꽂아서 패용한 사실은 흥미롭다. 이 시기 장식성이 강조된 화려한 칼집이 실용성보다는 의장용의 기능이 컸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세형동검의 부장 사례는 대구팔달동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세형동검의 형태는 물론 칼집의 형태와 장식도 비슷한 것을 보면, 양 지역 간 상호 관계의 특수성이 인정된다. 진한 사회의 성장과 고조선 유민을 논의할 때 참고되어야 할 고고학적 사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