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집 ()

호산집
호산집
유교
문헌
1922년,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문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문헌/고서
간행 시기
1922년
저자
박문호(朴文鎬)
편자
박순연(朴洵衍)
권책수
78권 42책
권수제
호산집(壺山集)
판본
활자본
표제
호산집(壺山集)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호산집』은 1922년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문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78권 42책의 규모로, 1922년에 활자로 간행되었다. 박문호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학자 중 한 사람으로, 방대한 저술을 남겨 이 시기 문학사와 학술사, 사상사에 미친 영향이 크다. 이 책은 이러한 그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하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1922년,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문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박문호(朴文鎬: 1846~1918)의 본관은 영해(寧海)이며, 자는 경모(景模), 호는 호산(壺山) · 풍산(楓山) · 노초(老樵) 등이다. 아버지는 한담공(閑潭公) 박기성(朴基成)이고 어머니는 강릉 김씨이다. 어려서 가학(家學)을 전수받고 이후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의 학통을 계승한 어당(峿堂) 이상수(李象秀)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과거를 포기하고서 성리학에 침잠하여 이상수의 호론(湖論)을 계승하였고, 1885년(고종 22)에 낙론(洛論) 계열인 간재(艮齋) 전우(田愚)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에 관해 편지로 논쟁을 벌였다.

1872년에 보은에 풍림정사(楓林精舍)를 건립하여 제자를 양성하였다. 문집 『호산집(壺山集)』 78권 42책을 비롯하여, 『대학장구상설(大學章句詳說)』, 『논어집주상설(論語集註詳說)』, 『맹자집주상설(孟子集註詳說)』, 『시집전상설(詩集傳詳說)』, 『서집전상설(書集傳詳說)』, 『주역본의상설(周易本義詳說)』, 『풍산기문록(楓山記聞錄)』, 『중동고금인가희유록(中東古今人家希有錄)』 등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서지사항

78권 42책 규모의 활자본이다. 목록이 2권 2책, 문집 본문이 78권 40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1919년에 문인 양계학(梁桂學)이 쓴 서문이 있다. 목록 말미에는 누락된 일부 작품이 부록(附錄)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 등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저자는 생전에 방대한 분량의 시문과 저술을 남겼는데, 저자 사후에 아들들이 중심이 되어 유고를 수집하여 편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편집 작업을 완료하고서 저자의 막내 아들 박순연(朴洵衍)이 원고를 가지고 저자의 제자인 양계학을 찾아가 서문을 부탁하고, 이를 1919년 10월에 활자로 인쇄하여 12월에 발간하였다.

구성과 내용

1책과 2책은 본서 전체의 목록이다. 3책부터 권1이 시작되는데, 각 권별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권1~10은 부(賦)시(詩)이다. 시는 형식적인 분류 없이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어 저자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기가 용이하다. 권1은 부 4편과 1865년[20세]부터 1871년[26세]까지의 시 145제(題) 193수(首), 권2는 1872년[27세]부터 1875년[30세]까지의 시 171제 214수, 권3은 1876년[31세]부터 1884년[39세]까지의 시 175제 220수, 권4는 1885년[40세]부터 1890년[45세]까지의 시 146제 198수, 권5는 1891년[46세]부터 1893년[48세]까지의 시 190제 236수, 권6은 1894년[49세]의 시 27제 249수, 권7은 1894년[49세]부터 1895년[50세]까지의 시 145제 244수, 권8은 1896년[51세]부터 1900년[55세]까지의 시 164제 227수, 권9는 1901년[56세]부터 1903년[58세]까지의 시 226제 236수, 권10은 1904년[59세]부터 1916년[71세]까지의 시 154제 246수가 수록되어 있다.

50여 년 간의 전체 한시 수량은 1,543제 2,263수에 달한다. 시기순으로 대략 구분하면 권12는 20대[407수], 권3은 30대[220수], 권47은 40대[927수], 권89는 50대[463수], 권10은 6070대[246수]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저자가 특히 40대에 집중적으로 한시를 창작했음이 드러난다. 특히 49~50세의 2년 사이에 493수의 작품이 집중되고 있는데,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수미음(首尾吟)」에 차운한 「차강절수미음운(次康節首尾吟韻)」 134수와 같은 대작을 비롯해 수십 수에 달하는 연작시를 여러 편 남기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권11~26은 서(書)이다. 권11은 14제, 권12는 15제, 권13은 15제, 권14는 6제, 권15는 1제, 권16은 10제, 권17은 16제, 권18은 1제, 권19는 13제, 권20은 16제, 권21은 4제, 권22는 13제, 권23은 12제, 권24는 14제로, 16권에 걸쳐 총 150제의 서신이 수록되어 있다. 서신의 수신자는 스승인 이상수를 비롯하여 송병선(宋秉善), 한장석(韓章錫) 등과 같이 당대의 명사가 망라되어 있고, 제자 및 지인들과의 문답을 수록한 작품의 비중이 크다. 특히 저자와 동문수학한 양주학(梁柱學)에게 보낸 서신은 78편에 이르러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권27~29는 서(序)로, 권27에 36편, 권28에 34편, 권29에 17편이 수록되었다. 서 중에는 저자가 편찬한 학술서들에 부친 것이 많아 저자의 학문적 관심사와 이력 등을 살필 수 있다. 권27의 「설문해자유초서(說文解字類抄序)」, 「자학편고서(字學便考序)」는 한자학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드러난 작품이고, 「사례집의서(四禮集儀序)」는 저자의 예학(禮學) 관련 대표 저술인 『사례집의』의 저술 취지를 밝힌 것이다. 권28의 「칠서주상설서(七書註詳說序)」는 저자의 경학(經學)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논어집주상설』 등 『칠서주상설(七書註詳說)』의 편찬 취지와 연구 방법론 등을 상세히 해설한 것으로서 주목된다.

권3032는 기(記)로, 권30에 29편, 권31에 25편, 권32에 30편이 수록되었다. 저자가 오랜 기간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활동했던 만큼, 다양한 인물들의 청탁에 응하여 지어진 건물기의 비중이 높다. 권3334는 발(跋)로, 권33에 30편, 권34에 47편이 실려 있다. 발은 다양한 문헌에 대한 독후감이 다수 실려 있어 저자의 학문적 관심사를 짐작하게 해 준다. 권35~36은 논(論)으로, 권35에 27편, 권36에 20편이 수록되었다. 논에서는 「육국론(六國論)」, 「시황득천하론(始皇得天下論)」 등과 같이 춘추전국시대를 중심으로 한 사론(史論)이 많이 보인다.

권37~40은 설(說)로, 권37에 19편, 권38에 18편, 권39에 1편, 권40에 8편이 수록되었다. 저자가 외세의 압박이 심하던 시기를 살았던 만큼, 정통 유학자로서 「척사설(斥邪說)」과 같은 작품은 당대 정세에 대한 저자의 인식을 잘 보여 주며, 마음의 본성에 대해 논의한 「심본성설(心本性說)」 4부작은 6년에 걸친 저자의 심학(心學) 연구 결과이다. 권39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수사이십칠도설(洙泗二十七圖說)』은 저자가 자녀 교육을 위해 도학(道學)의 이론을 27개의 그림으로 작성하고 이에 대해 해설한 것으로, 하나의 단독 저술이라 할 수 있다.

권41은 명(銘) 29편, 찬(贊) 4편, 잠(箴) 2편, 송(頌) 2편, 자사(字辭) 10편, 초사(醮辭) 1편, 혼서(婚書) 1편, 상량문(上樑文) 5편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특히 명의 비중이 높은데, 저자가 성리학자로서 자기 수양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수양을 보조할 용도로 창작하였던 작품들이다. 상량문의 경우는 전부 강학(講學)을 위해 지어진 건물에 부친 것들이다.

권42~44는 제문(祭文)으로, 권42에 24편, 권43에 21편, 권44에 제문 17편과 애사(哀辭) 1편이 수록되었다. 권45는 묘도문자(墓道文字)로 묘갈명(墓碣銘) 1편, 묘표(墓表) 7편, 묘지명(墓誌銘) 18편이 실려 있다. 대상 인물은 매천(梅天) 황현(黃玹), 하정(荷亭) 박기일(朴基一) 등의 당대 명사들, 저자의 친인척 및 지인들이며, 묘표 중의 「자찬묘표(自撰墓表)」는 저자가 자신의 묘표를 직접 써 둔 것으로 주목된다. 권46은 행장(行狀) 16편, 권47은 시장(諡狀) 1편, 유사(遺事) 6편으로 주로 자신의 친인척을 위해 지어진 것들이 많다. 권48은 전(傳) 6편, 어록(語錄) 1편이 수록되었다. 「어록(語錄)」은 스승 이상수의 어록을 저자가 정리한 것이다.

권4970은 잡저(雜著)로, 권49에 19편, 권50에 1편, 권51에 7편, 권52에 5편, 권53에 1편, 권54에 5편, 권55에 5편, 권56에 2편, 권5762는 권별로 1편씩, 권63에 2편, 권64에 4편, 권6569도 권별로 1편씩, 권70에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는 「독독맹상군전(讀讀孟嘗君傳)」과 같은 독후감, 「원명(原名)」과 같은 원체(原體) 논설문을 비롯하여 학습 방법, 가훈(家訓), 향약(鄕約), 강의(講義), 책문(策問) 등 실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중 권5963에 걸쳐 수록된 『고정인물성고(考亭人物性考)』는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대한 학설을 다양한 문헌에서 발췌하여 해설한 것으로, 간재 전우와의 인물성동이론 논쟁의 결과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권66~68에 걸쳐 수록된 『오서차설(五書箚說)』은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의 다섯 종의 책에 대한 선유(先儒) 및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차기체(箚記體) 저술이다.

권7178은 필기류(筆記類) 저술인 잡지(雜識)이다. 권7175는 내편(內篇)으로 논학(論學), 천지(天地), 이기(理氣), 심성(心性), 인물성(人物性), 경설(經說), 예설(禮說), 성현(聖賢) 등으로 주제별로 분류하여 학문에 대한 저자의 다양한 생각을 담았다. 권76~78은 도학 이외의 주제들에 대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논사(論史), 시사(時事), 잡사(雜事), 시문(詩文), 이단(異端)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구성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농암잡지(農巖雜識)』를 연상시킨다.

의의 및 평가

『호산집』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살았던 호산 박문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분야에 학문적으로 관심을 가졌는지를 매우 상세하게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저술의 양이 매우 방대한 만큼 당대 정치, 사상, 문화, 학술 등 사회 전반의 면모를 살피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지식인이 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자 노력하였는가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용걸 외, 『한국 사상가의 새로운 발견: 병와 이형상과 호산 박문호 연구』(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논문

도민재, 「호산 박문호의 『사례집의』 고찰」(『동양고전연구』 92, 동양고전학회, 2023)
지교헌, 지준호, 「호산 박문호의 윤리사상과 시국관」(『동양고전연구』 33, 동양고전학회, 2008)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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