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태어나 만주와 일본, 미국에서 피아노, 작곡, 지휘를 공부한 1세대 음악가이다. 고려교향악단의 초대 상임지휘자로 부임하였고 1956년 KBS 교향악단을 창단하였다. 1961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초대교장을 역임하였고 경희대학교와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919년 평안남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오르간과 서양음악을 접했다. 6세에 만주로 이주하여 1939년 하얼빈 제일음악학원을 졸업하였다. 1942년 일본으로 유학, 동경음악학교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하였고 당시 유학 중이던 김원복, 전봉초, 윤기선 등과 교류하였다.
1945년 계정식, 김생려, 현제명을 중심으로 창단된 서울교향악단의 전신인 고려교향악단에 1946년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역시 1946년 이화여고 교사로 재직하였고 당시 음악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1961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설립, 초대교장으로 부임하여 음악 조기 교육을 위한 개척자가 되었다.
1948년에는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인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을 지휘하였다. 1948년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지휘과를 수료하였고 1956년 KBS 교향악단의 전신인 경성방송관현악단을 창설하였고 1959년 재정난으로 해체하였으나 1961년 KBS 교향악단으로 복귀하였고 1969년 운영권이 국립극장으로 이관되어 국립교향악단으로 바뀌었지만 1970년 12월까지 계속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국립교향악단은 1981년 KBS 교향악단으로 재발족하게 된다.
1984년 12월 새롭게 출발한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어 우수한 단원을 확보하고 단원의 복지 개선을 목표로 지방교향악단의 활성화에 이바지하였다. 1985년부터 추계예술대학교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한국가곡 「아무도 모르라고」를 작곡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방송문화상, 1964년 5월 문예상, 1965년 서울시 문화상, 1970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한민국 예술원상, 1987년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