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호는 지연(智淵)이다.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출신의 한국 서양화 1세대 화가로 구상적인 사실주의를 추구하며 한국 아카데미즘 미술의 전통을 확립한 작가이다. 한국 근대 조각의 1세대 작가인 김경승이 그의 동생이다.
개성 제일보통학교를 거처 1925년 송도 고등상업학교를 입학한 그는 1929년 동아일보사 주최 전조선학생미술전에 「임진강철교」, 「뒷동산 풍경」이 입선될 만큼 이른 나이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1932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学校〕 서양화과를 수료하고 같은 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이던 1936년 일본 문부성미술전람회(文部省美術展覧会)에서 「나부(裸婦)」로 입선하고 광풍회(光風會) 전람회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1937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 참가한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부」로 첫 특선을 차지했는데 제19회까지 연속 4회의 특선을 수상하면서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 때 서양화 분야에서 추천작가가 된 심형구, 이인성과 함께 ‘추천 작가 3인전(三人展)’을 가졌다.
1943년에는 심형구, 박영선, 김만형, 손응성, 이봉상, 임응구 등과 함께 단광회(丹光會)를 조직하여 친일미술활동에 가담했다. 그해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시행되자 이를 기념하는 기록화인 「조선징병제실시」를 합작으로 제작했으며 반도총후미술전의 추천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개성여자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가 1947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부임하여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로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1955년 대한미술협회 부위원장, 1957년 예술원 회원,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면서 서양화단의 구상 계열을 주도하는 작가로 활동했다. 1974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작품활동을 계속해 오다가 2001년에 사망했다.
김인승의 일제시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 제11·13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3: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849~873)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1963년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고 1965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3·1 문화상을 수상하고, 1969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 동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