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전원시는 농촌 전원의 풍물과 인정의 아름다움 등 소박한 생활 정취를 묘사한 시이다. 고려 중후기 문인들이 성리학을 배경으로 전원, 전원시를 애호하기 시작하였다. 전원시는 조선 시대 16∼17세기에 크게 유행하여 시조, 가사, 한시로 창작되고 향유되었다. 조선 시대의 강호가도는 산수시와 자연시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중국에서는 도연명의 시들을 대표적인 전원시로 인식하고 있다. 이건청은 1930년대 한국의 전원시와 서구의 전원시는 전원에 귀의하여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는 본질적인 면이 일치한다고 평가하였다.
정의
농촌 전원의 풍물과 인정의 아름다움 등 소박한 생활정취를 묘사한 시.
개설
연원 및 변천
전원시라는 용어는 고려 때 이규보 등으로부터 조선 전기의 서거정(徐居正), 조선 중기 이후 이안눌(李安訥), 조익(趙翼), 오원(吳瑗), 박제가(朴齊家) 등의 글에서 보이며, 전원시인(田園詩人)이란 말도 윤선도(尹善道), 정약용(丁若鏞), 이덕무(李德懋), 유희춘(柳希春), 서영보(徐榮輔) 등의 글에서 보인다. 이 전원시가 활발하게 창작된 것은 16∼17세기 조선의 사대부들에 의해서였다. 일제강점기에 서구의 전원시가 소개되면서 한국의 전원시는 전통적인 전원의 내용에 서구적 전원시의 요소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에서는 중국 동진(東晋)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대(宋代) 초기에 걸친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시들을 대표적인 전원시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전원시를 산수시와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내용
박종훈은 조선후기 한시 사가(四家)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 1749∼1807), 형암(炯庵) 이덕무(李德懋, 1741∼1793), 강산(薑山) 이서구(李書九, 1754∼1825)의 시들 중 전원시에 해당하는 시편들을 선별하여 당시 농촌의 생활, 풍속, 고통과 정감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공통점을 찾아내었다. 시조와 가사 장르가 추구하였던 ‘은근한 인정미’보다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건청은 조선조의 전원시와 서구의 전원시의 특징을 밝힌 후 일제강점기 특히 1930년대 한국 전원시의 특징을 제시하였다. 농경문화의 산물인 조선조의 전원시와 기독교 사상을 토대로 한 목축문화의 서구 전원시는 세부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면들이 있지만 현실적 가치를 떠나 전원에 귀의함으로써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는 본질적인 면은 일치한다. 1930년대 한국 전원시는 전원 지향의 전래적 토양 위에 서구 전원시의 가치와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전개의 장을 열었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자연시조에 나타난 녹색담론」(류해춘, 『시조학논총』37, 2012)
- 「한시 ‘사가(四家)’의 전원시 비교 고찰」(박종훈, 『동방학』18, 2010)
- 「강호가도와 산수시전원시」(최진원, 『도남학보』14, 1993)
- 「시조해석의 일시점」(최진원, 『모산학보』1, 1990)
- 「한국 전원문학의 전통과 그 현대적 전이양상」(김병국, 『한국문화』7, 1986)
- 「한국전원시 연구」(이건청,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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