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산수시는 자연 풍경을 묘사하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 시이다. 조선 시대 벼슬을 버리고 한가로이 지내는 사대부들에 의해 발견된 자연의 미는 성리학과 긴밀한 관련을 가졌다. 즉, 산수를 즐기면서도 그 속에서 ‘도의(道義), 도체(道體)’를 찾는다는 것이 사대부들의 산수관이었다. 전통적인 산수, 전원의 개념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자아와 하나가 된 자연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산수시는 오늘날까지 각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시로 지어져서 우리의 미감을 촉발시켜 왔다. 산수시와 비슷한 전원시는 그 의미를 구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정의
자연 풍경을 묘사하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 시.
개설
연원 및 변천
강호가도에 대해 최진원(崔珍源)은 “자연을 읊은 조선시가의 문학사조다. 그것은 산수시와 전원시를 포괄한다. 강호가도에는 불만 불평이 거의 없다. 그 까닭은 산수시 전원시에 대한 장르 인식 때문이라 생각된다. 즉 산수시는 자연의 미를 읊은 것이고, 전원시는 농촌의 낙(樂)을 읊은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개념 규정을 하였다. 그러면서 산수시에 대해 “산수시는 풍경(Landscape-Scinery)을 그리는[묘사, 描寫]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의 산수시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흥(興)’을 느끼는 것을 말하는데, 초기에는 조선 사대부의 이념인 성리학과 산수자연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이황의 산수시는 산수자연에서 ‘자연의 이(理)’를 발견하고 그것에 감동하는 ‘이념적 감동’의 ‘흥’을 나타내고, 이이의 산수시는 도학적 기반 위에서 ‘서정으로서의 흥’을 나타내며, 윤선도의 산수시는 도학과 분리된 ‘서정으로서의 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자연에 대한 애호(愛好)를 담은 한시가 김극기(金克己), 이규보(李奎報) 등에 의해 지어지며, 이러한 전통은 조선 중기 송순, 백광훈(白光勳), 조선 후기 이서구(李書九), 정약용(丁若鏞), 구한말 황현(黃玹) 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통적인 성정론(性情論)에 근거한 조선 후기의 산수시론은 근대기 정지용(鄭芝溶)에게 이어졌다.
산수라는 용어는 일찍부터 사용하였으나 산수시라는 용어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산수시란 용어를 일찍부터 사용하였으며, 남조(南朝) 진송(晋宋) 시기의 사영운(謝靈雲, 385∼433)의 시들을 산수시의 기원이라고 한다.
내용
또한 이황은 “옛날 산림을 즐기는 사람을 보건대 둘이 있다. 현허(玄虛)를 그리워하여 고상(高尙)을 섬겨 즐기는 사람이고, 도의(道義)를 기뻐하여 심성(心性)을 길러서 즐기는 사람이다.”(〈도산기(陶山記)〉)라 하여 자신의 산수자연관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산수를 즐기면서도 그 속에서 ‘도의, 도체’를 찾는 것이 조선 사대부들의 산수관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산수 자연을 읊으면 대체로 ‘흥(興)’을 끌어들였다. “춘풍에 화만산ᄒᆞ고 추야애 월만대라/ 사시가흥이 사롬과 ᄒᆞᆫ가지라/ ᄒᆞᄆᆞᆯ며 어약연비 운영천광이아 어늬 그지 잇슬고”(〈도산십이곡〉 언지 6)의 퇴계의 ‘사시가흥(四時佳興)’, “사곡은 어ᄃᆡᄆᆡ오 송암에 ᄒᆡ 넘거다/ 담심암영은 온갖 빗치 ᄌᆞᆷ겨세라/ 임천이 깁도록 됴흐니 흥을 계워 하노라”(〈고산구곡가〉 사곡)의 율곡의 ‘흥을 계워 하노라’, “낙시줄 거더노코 봉창의 ᄃᆞᆯ을 보쟈/ 닫디여라 닫디여라/ ᄒᆞ마 밤들거냐 자규소ᄅᆡ ᄆᆞᆰ게 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나믄 흥이 무궁ᄒᆞ니 갈길을 니젓딷다”(〈어부사시사〉 춘사 9)의 고산의 ‘나믄 흥’이 그렇다.
이황의 ‘사시가흥’을 최진원은 ‘자연의 이(理)의 분명함’으로, 그래서 ‘이념적 감동’을 제공하는 ‘흥’으로 논의한 바 있다(「도산십이곡과 경」, 『한국고전시가의 형상성』). 최진원은 이것을 두고 ‘사시가흥이 사롬과 ᄒᆞᆫ가지라’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흥은 ‘자연의 이의 분명함(上下察)’을 깨달았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연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때 느낄 수 있는 흥이며 이렇게 그 깨달음의 감동은 이념적 감동이며, 이것이 곧 〈도산십이곡〉의 시적 감동이라고 하였다.
이이의 ‘흥을 계워 하노라’는 임천에 비친 송애의 아름다움을 보고 흥을 겨워하는 모습이다. 〈사곡〉의 그것은 자연의 경치 그 자체의 미를 체득함으로써 우러나오는 흥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곡〉에는 인위적인 흔적(상상을 통한 의상의 경, 관념 · 감정이입 등)이 없는, 이이가 언급한 ‘천연에서 나온(出於天然)’ 서경 및 이를 통하여 우러나온 흥이 있을 뿐이다. 최진원은 이에 대해 “경물에 부딪쳐 일어난 정감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 그 어떤 전제(양식적 구도)도 깔지 않았다. 〈고산구곡가〉에는 ‘인물기흥(因物起興)’뿐이라고 하였다(『한국고전시가의 형상성』).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의 ‘흥’은 앞의 두 작품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여기현(呂基鉉)은 〈어부사시사〉의 ‘흥’의 성격에 대하여 “고산이 사시에 따라 산수유상에서 느끼는 흥은 ‘서정으로서의 흥취’이지, 퇴계의 경우와 같이 자연을 매개한 ‘서정의 순정’으로서의 상자연이 아닌 것이다. 고산은 자연을 자연 그 자체로서 바라보고 있되,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미적 시각으로써이다.”(「어부가의 표상성 연구」)고 하여 〈어부사시사〉의 ‘흥’을 ‘서정으로서의 흥취’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윤선도의 “사시흥이 한가지나 추강이 읃듬이라.”(〈어부사시사〉 추사 1)고 한 표현을 이황의 ‘사시가흥이 사ᄅᆞᆷ과 ᄒᆞᆫ가지라’와 서로 비교해 볼 때 분명해진다. ‘이’에는 우열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면 때문에 조윤제는 〈어부사시사〉를 “도덕에서 시가를 완전히 분리하였다.”라고 한 듯하다.
세 작품을 이이가 언급한 산수의 취와 산수 속에 내재한 도체[理]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면, 이황의 〈도산십이곡〉은 이 둘의 관계 속에서 ‘도체’를 귀히 여긴 것이고, 이이의 〈고산구곡가〉는 산수의 취와 산수 속에 내재한 도체를 불가분의 관계로 이해하면서 산수의 취를 노래한 것이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이 둘을 관계 짓지 않고 산수의 취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황의 ‘사시가흥’의 흥은 이념적 감동으로서의 흥이고, 이이의 “흥을 계워 하노라”의 ‘흥’은 도학적 기반 위에서 ‘서정으로서의 흥’이며, 윤선도의 ‘나믄 흥’의 흥은 도학과 관련짓지 않은 ‘서정으로서의 흥’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세 노래의 흥의 차이는 모두 ‘성정지정’의 안에서 보여지는 것으로, 그것은 세 시인의 기질적 또는 풍격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이거나, 또는 김흥규(金興圭)의 지적처럼 ‘강호시가의 시대적 변모’(「〈어부사시사〉에서의 흥(興)의 성격」)가 가미된 것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이들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산수문학연구』(손오규, 부산대학교 출판부, 1994)
- 「조선 후기 산수 인식의 변화와 산수시 창작의 새 양상」(김형술, 『한국한시연구』 16, 2008)
- 「자연시의 의미와 한국에서의 전개양상」(남재철, 『동방한문학』 33, 2007)
- 「한국 현대시와 산수시의 미학」(최동호, 『비교문학』 28, 2002)
- 「강호가도와 산수시 전원시」(최진원, 『도남학보』 14, 1993)
- 「〈어부사시사〉에서의 흥(興)의 성격」(김흥규, 『한국고전시가작품론』 2, 집문당, 1992)
- 「고산구곡가 연구─“정언묘선”과 관련하여」(김병국,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 「시조해석의 일시점」(최진원, 『모산학보』 1, 1990)
- 「어부가의 표상성 연구」(여기현,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 「산수시의 경치·흥취·주제」(조동일, 『국어국문학』 98,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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