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구곡가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구곡원림을 경영하면서 그곳의 승경을 읊은 노래이다. 주자를 흠모한 조선조 성리학자들은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가」를 연상하면서 자신들이 직접 구곡을 경영하고 그 승경을 구곡가계 한시, 시조, 가사 등의 형태로 지어 부르며 즐겼다. 조선조 성리학자들이 직접 경영한 구곡원림으로는 송시열의 화양구곡, 이형상의 성고구곡 등이 있다. 이이의 「고산구곡가」, 권섭의 「황강구곡가」 등은 시조형 구곡가이며, 채헌의 「석문구곡도가」, 이도복의 「이산구곡가」 등은 가사형 구곡가이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사상적 기반이던 성리학이 기울면서 함께 소멸해 갔다.
정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구곡원림을 경영하면서 그곳의 승경을 읊은 노래.
개설
연원 및 변천
15세기 중엽 이후 성리학자들의 시문학의 주된 흐름이 되었던 구곡가계 시가는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라는 학맥을 중심으로 구곡원림의 경영과 상호 방문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았으나 이 두 계보 간의 영향 관계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영 · 정조 시대에 들어서 구곡가계 시가는 형태 면에서 어부가와 혼효되는 등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 점차 쇠퇴해 갔다. 개화기 때에 「아양구첩(峨洋九疊)」, 「구곡도가(九曲櫂歌)」 등 다소 잔영을 남겼지만,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구곡가계 시가의 사상적 기반이던 성리학이 기울면서 함께 소멸해 갔다. 조선시대의 구곡원림은 오늘날 국립공원으로 편입되어 일부 보존되고 있다.
내용
조선조 성리학자들이 직접 경영하였던 구곡원림으로 유명한 것은 정구(鄭逑)의 무흘구곡(武屹九曲), 이중경(李重慶)의 오대구곡(梧臺九曲), 송시열(宋時烈)의 화양구곡(華陽九曲), 김수증(金壽增)의 곡운구곡(谷雲九曲), 권상하(權尙夏)의 황강구곡(黃江九曲), 이형상(李衡祥)의 성고구곡(城皐九曲), 정만양(鄭萬陽)의 황계구곡(黃溪九曲), 권섭(權燮)의 화지구곡(花枝九曲), 채헌(蔡瀗)의 석문구곡(石門九曲), 홍양호(洪良浩)의 우이동구곡(牛耳洞九曲), 오대익(吳大益)의 운암구곡(雲巖九曲), 이한응(李漢膺)의 춘양구곡(春陽九曲), 이도복(李道復)의 이산구곡(駬山九曲) 등이 있다.
원림 구곡시는 국문 구곡가와 함께 주류를 이루었던 것으로, 조선조 성리학자들이 자신들의 구곡원림의 승경을 읊은 것인데, 대개 자신이 직접 읊었으나 화양구곡, 황강구곡의 승경을 노래로 지은 권섭처럼 때로는 다른 이들이 대신 지은 것들도 있다.
화운 구곡시는 수적으로 가장 많은데, 퇴계 이황의 「한거독무이지차구곡도가운십수(閒居讀武夷志次九曲櫂歌韻十首)」 등처럼 실경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주자의 「무이도가」나 『무이지(武夷志)』에 실린 글이나 그림을 보고 「무이도가」의 운을 써서 주자의 삶과 주자학적 세계를 관념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 「무이도가」를 차운한 시에 화운한 것, 「무이도가」의 운을 써서 「고산구곡가」의 시세계를 표현한 것 등이 있다.
번역 구곡시는 송시열이 이이의 「고산구곡가」를 5언시로 번역한 「고산구곡가번문(高山九曲歌飜文)」처럼 국문으로 지어진 구곡가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으로, 「황강구곡가」를 번역한 권섭의 「황강구곡용무이도가운번소영가곡(黃江九曲用武夷櫂歌韻飜所詠歌曲)」과 「석문구곡가」를 번역한 채헌의 「석문구곡차무이도가운(石門九曲次武夷棹歌韻)」 등이 있다.
국문 구곡가에는 이이의 「고산구곡가」, 이중경의 「오대구곡」, 권섭의 「황강구곡가」 등의 시조형 구곡가와 채헌의 「석문구곡도가」, 이도복의 「이산구곡가」 등의 가사형 구곡가가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 구곡문화 연구의 현황과 과제」(이종호, 『안동학연구』 10, 2011)
- 「영남 선비들의 구곡 경영과 최남복의 백련서사」(이종호, 『영남학』 18, 2010)
- 「구곡 연원의 성과와 전망」(이종호, 『한국사상과 문화』 50, 2009)
- 「17∼18세기 구곡가 계열 시가문학의 전개양상」(조지형,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 「구곡가계 시가의 계보와 전개양상」(김문기, 『국어교육연구』 23, 1991)
- 「고산구곡가 연구─“정언묘선”과 관련하여」(김병국,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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