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2 · 4 · 5 · 6은 고려 후기 1288년(충렬왕 14)에 간행된 목판본 불경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대학교 도서인 이 불경은 고려 충렬왕 14년에 해당하는 1288년경 구마라집이 한역한 7권본 『묘법연화경』 중에서 2 · 4 · 5 · 6, 4권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것이다. 경문 외곽에 과문을 추가하였으며, 절첩장(折帖裝)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판본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대승불교 경전인 『Saddharmapuṇḍarīka-sūtra』를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4)이 7권본으로 406년에 한역(漢譯)하였다.
7행 16자, 4책 4첩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장정 형태는 절첩장(折帖裝)이다. 종이의 상단 여백에는 과문(科文)을 나타냈다. 인쇄 상태가 선명하여 초인본(初印本)으로 추정되며, 질박한 저지(楮紙)로 되어 있다.
이 경전의 권7에 해당하는 보물 『묘법연화경』과 동일한 판본이지만,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인출(印出)된 것으로 보인다.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28.8㎝, 가로 9.1㎝이다. 보물로 지정된 판본 『묘법연화경』 권7에는 “고려 충렬왕 14년에 승려 재색(齋色)이 새긴 목판에서 찍어 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청주대학교 도서는 이것과 동일한 판본이므로 간행 시기를 1288년(충렬왕 14)으로 추정할 수 있다.
1288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지만, 간기(刊記)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간행 경위를 파악할 수 없다.
국가유산포털에 게시된 국가유산 이미지 파일 3개를 통해서 이 문헌이 구마라집 한역 7권본 『묘법연화경』 권2의 제3 「비유품(譬喻品)」, 권4의 제8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 권6의 제19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의 경문에 대응됨을 확인할 수 있다.
권, 품의 번호가 대체로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의 판본과 일치하므로 권5에는 제14 「안락행품(安樂行品)」 ~ 제17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이 수록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권2에 수록된 품들은 불타는 집의 비유와 가난한 아들의 비유를 통해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외의 일불승(一佛乘)이 있어서 모든 방편이 결국 하나의 진실로 돌아간다는 점과 모든 중생이 불성(佛性)을 가진 존재이며 점차 성숙해지면서 그 불성을 발휘하게 됨을 알려 준다.
권4의 품들은 일불승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던 이들에게도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 곧 수기(受記)를 주는 내용과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독송(讀誦)하는 공덕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권5는 이 경전을 말법시대에 전하는 방법과 부처의 구원실성(久遠實成), 곧 부처가 아득한 옛날에 이미 성불하여 영원히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는 진실을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권6은 이 경전을 널리 펼 것을 강조하면서, 특히 세상의 멸시를 감내하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의 덕을 찬탄하고 있으며, 여러 공양 중 자기의 몸을 불사르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이 최고임을 설하고 있다.
청주대학교 도서 『묘법연화경』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이들에 의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경문과 과문을 결합하여 휴대가 간편한 병풍형 절첩장으로 장정했다는 점에서 독송과 강학(講學)을 겸하기 위한 목적으로 간행되었으리라 판단된다.
비교적 이른 시기의 목판본이면서 독특한 형태로 간행되었다는 점에서 고려 말 경전의 제작과 유통이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음을 알려 주는 자료이다. 2008년 4월 1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