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은 1539년(중종 34) 경상도 안동 광흥사에서 간행한 목판본 불서이다. 충청북도 단양군 구인사 도서인 이 불서는 원나라 때의 승려 몽산 덕이의 육도윤회에 대한 대중 설법을 엮은 책으로,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조선시대 불교계의 흐름과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2004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몽산화상육도보설』은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에 속하는 몽산 덕이(蒙山 德異, 1231~1308?)의 법어 중 육도윤회(六道輪廻)와 관련된 것을 편찬하여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권말에 가정 18년 을해(嘉靖十八年己亥)〔1539년(중종 34)〕에 안동 하가산 광흥사(廣興寺)에서 개판(開板)하였고, 이러한 불사(佛事)가 김한석(金漢石) 양주(兩主) 등 다수의 시주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1권 1책으로서 크기는 세로 31.8㎝, 가로 20.5㎝이며, 본문 24장은 6행 13자로 이루어져 있다. 장정 형태는 선장본(線裝本)으로서 판심에 ‘보(普)’ 자가 씌어 있다.
몽산 덕이가 입적하기 전에 편찬되었고, 15세기에 두 차례, 16세기에 열두 차례 정도 전라도와 경상도 ·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간행되었다.
상당(上堂), 소참(小參), 보설(普說), 시중(示衆) 등으로 이루어진 선승(禪僧)의 법어 중 보설은 필요에 따라 수시로 행해지는 약식 설법인데, 『육도보설』은 먼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냄[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을 강조한다.
이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신으로 이루어진 육도(六道)와 성문, 연각, 보살, 부처로 이루어진 사성(四聖)의 십법계(十法界)를 분별하여 업력(業力)의 결과 범부들은 육도 중의 하나에 처하게 되지만 지기(志氣)가 있으면 성인(聖人)이 되어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 화엄경(華嚴經)』 100부를 함께 읽는 법회를 열기로 하였고, 6월 29일 마침내 무차대회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법회에서는 참회를 통하여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화두를 참구하여 자기의 참된 성품을 보고 단박에 깨달아[돈오(頓悟)] 윤회에서 벗어나되, 극락세계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만날 것을 염(念)할 것을 아울러 당부하고 있다.
이 법회와 관련하여 기갈(飢渴)의 해소를 바란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1280년대 남송이 망한 이후 전란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중국 강남 지역의 정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구인사 도서인 이 책은 13세기 말 몽산 덕이가 휴휴암에 은거한 이후 강소성과 절강성 지역의 재가자들과 교류한 정황을 알려 준다.
아울러 고려 말 많은 승려들이 그를 찾아가 만났다는 사실, 그의 설법이 중국에서와 달리 국내에서 『육도보설』과 같은 형태로 온전히 전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에 전하는 9건의 보설 가운데 4건이 이 책의 주제와 관련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우리나라 불교에 끼친 몽산의 영향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6세기에 그의 저술이 집중 간행된 것은 개별 사찰이 불교 의례나 신앙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수륙재(水陸齋)나 무차대회와 같은 의례에 이 책에 나타난 것과 같은 대중적인 설법이 수반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두 참구가 언급된 것은 당시 불교계가 의례를 중시하면서도 선종이 여전히 사상적 주류였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조선시대 불교계의 흐름과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어, 2004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