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상 ‘은자대장경(銀字大藏經)’은 고려 정종(定宗) 원년(946)에 왕요(王堯), 즉 정종이 발심하여 ‘은자장경(銀字藏經)’을 경조(更造)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요동행부지(遼東行部志)』에서 처음 나타난다.
12세기에 제작된 은자대장들은 남아 있는 실물보다 기록이 풍성한데, 1101년(고려 숙종 6) 4월에 임금이 일월사(日月寺)에 행차하여 금으로 사성한 『묘법연화경』을 경축하였고, 1102년(고려 숙종 7) 5월에는 임금이 현화사(玄化寺)에 행차하여 감지은자 『유가사지론』, 『현양성교론』의 사성을 경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은자대장경은 대체로 13세기인 충렬왕 시기부터 사경원(寫經院), 금자원(金字院), 은자원(銀字院) 등에서 많이 조성되어 전해지는데 이때 조성된 국왕 발원 은자대장경으로는 『불공패색신변진언경』 권13, 『문수사리문보리경』, 『불설보살본행경』 권하, 『보살선계경』 권5, 『현식론』 등 제작 연대가 확실한 금은자 사경이 70여 건에 이르며, 산질(散帙)로 전해지는 것을 합치면 수백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불공패색신변진언경(不空覇索神變眞言經)』 권13의 경우, 감지에 은니로 서사하였고, 권자본이며, 전체 길이는 1,020cm, 높이 13.3cm, 1행 14자로 권두에 금니(金泥)와 은니의 선으로 된 당초문(唐草紋)의 표지(褾紙)가 있으며, 뒷면에는 금니로, 서 있는 신장상 1구가 그려져 있다. 권미(卷尾)에는 2행으로 된 발문이 있다.
은자대장경과 금자대장경의 경문(經文)은 고려 재조대장경의 경문과 동일한 경우가 많지만 거란대장경의 경문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초조대장경과 같은 목판 대장경을 조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려 후기인 충렬왕대부터 충숙왕대에 이르는 시기에는 금자대장경과 은자대장경 등 사경 대장경도 대대적으로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