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계림회는 1944년 중국 저장성 진화에서 전쟁 동원을 위해 조직된 조선인 친일단체이다. 이 단체의 문서로 일본군 ‘위안부’가 포함된 명부가 발견되었다. 2015년 10월, 진화 계림회 회칙 및 명부가 중국에서 공개되었는데, 명부에는 12개소의 진화 지역 위안소 또는 접객점의 업자와 그들과 현지 주소가 같은 20대 전후의 여성 129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1940년대 들어 조선에서 전개된 주1와 주2의 영향은 중국에도 파급되었다. 이에 일제에 대한 협력 여부와 상관없이 ‘조선인회’ 같은 민족 색체를 드러내는 조직들이 해체 또는 변경되었다. 친일단체였던 상해거류조선인회(上海居留朝鮮人會)는 1941년 3월 상해일본인거류민단과 통합되었다. 그리고 후계단체로 계림회(鷄林會) 지부가 결성되었다. 계림회는 원래 만주 지역의 조선인에 대한 친일공작을 위해 창춘(長春)에 본부를 두고 설립된 기관이었다. 1940년대 들어 중국 관내에도 지부 형식으로 상하이(上海)와 우한(武漢), 광저우(廣東) 등에 설립되었다. 모두 황국신민의식 고취 및 침략전쟁 후방협력을 위한 친일조직이었다.
2015년 10월, 진화 계림회(金華鷄林會) 회칙 및 명부가 중국에서 공개되었다. 진화(金華)는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중부에 위치하는 소도시이다. 일본군은 1942년 5월 진화를 점령했고, 이후 진화는 일본군의 주3 역할을 담당했다. 명부는 진화시 당안관에 소장되어 있었고, 『진화신문』 기자 리이엔(李艳)이 발견했으며, 주4 활동가 왕쉬엔(王选)을 거쳐 공개되었다.
진화 계림회 회칙은 진화 지역의 조선인들도 조직을 구성하고, ‘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기초로 대국민 양성을 목표로 한다고 되어있다. 총무부, 양성부, 후근부, 부인부를 두었다. 명부에는 진화 계림회의 이사장이 평안도 선천 출신인 28세 안도자봉[岸島子峰 : 창씨명]으로 절공물산회사(浙赣物産公司)에서 사업하는 인물이라고 되어있다. 명부에는 1944년 4월 현재 진화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210명의 이름과 주소, 직업이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명부에는 12개소의 진화 지역 위안소 또는 접객점(接客店)의 업자와 그들과 현지 주소가 같은 20대 전후의 여성 129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들 여성 중 상당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추정되었다. 위안소 업주라고 분명하게 직업을 밝힌 인물은 3명이었다. 금택귀락(金澤貴樂)이 경영하던 위안소에는 20세에서 29세의 여성 13명이 있었는데, 경상도 출신이 다수였다. 금성여곤(金城麗坤)이 경영하던 위안소에는 21세에서 30세의 여성 7명이 수록되어 있다. 신정박(新井博)이 경영하던 위안소의 여성명단은 남아있지 않다. 또한 금산동준(金山東俊)이나 김만복(金萬福)/금본일성(金本一成)과 같이 진화 계림회 명부에는 위안소와 관련이 없게 나오거나, 명단에는 없지만, 다른 자료를 통해 진화 지역에서 위안소를 경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인들도 있다. 또한 명부상에는 위안소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실제로는 위안소로 운영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곳도 있다. 12명의 위안소 및 접객점 업자들은 평양도 출신이 많았다. 반면에 일본군‘위안부’ 등 접객여성들의 본적지는 경상도 출신이 61명으로 다수를 점하였다. 다음으로 평안도 출신이 29명이었다.
진화 계림회를 통해 계림회가 기존에 알려진 몇몇 대도시 이외의 소도시 지역에도 조직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계림회가 각 지역 친일 유지와 자산가, 각종 일제 협력자들을 조직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위안부’를 포함한 접객여성들, 전쟁에 필요한 다양한 인력들을 조직했음이 알려졌다. 곧 침략전쟁의 후방지원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조선인들을 동원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