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공보관화랑은 1957년 2월 대한민국 정부 부처인 '공보실'이 서울 중구 소공동[북창동]에 설립했으며,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서울에서 열린 대부분의 사진 전시를 개최한 화랑[Gallery]이다. 정부 차원에서 문화공간의 부족함을 해소하고 작가들에게는 전시장을 무료로 대여해서 예술창작 발표의 기회를 부여하고자 만들었다. 실제 대관은 순수예술 분야 단체나 작가들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1972년 정부의 공보관 운영 방침 변경에 따라 일반 대관 전시가 폐지될 때까지 한국사진과 미술의 대표적인 발표 공간이었다.
한국정부는 1957년 정부의 공보 기능을 전담하는 공보실 산하에 중앙공보관 직제를 신설하고, 서울 중구 소공동[북창동]에 화랑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을 신설했다. 1층과 2층에는 중앙공보관화랑을 두어 사진, 미술, 공예 등 시각예술 작가들에게 무료로 전시장을 대관했으며, 화랑 외에도 ' 대한뉴스' 등을 상영하는 영사실, 학술대회나 명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강의실, 클래식 음반을 듣고 공연도 즐길 수 있는 음악실, 다양한 정부 홍보 자료나 학술 도서를 읽을 수 있는 도서실 등을 순차적으로 만들어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하지만 1968년 덕수궁 내의 동북쪽에 임시 가건물을 지어 이전하면서 본래의 기능이 축소되었다. 1970년 국립공보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2년 정부의 '국립공보관 운영 계획'에 따라 정부정책 홍보 전담기관으로 성격이 바뀌었으며, 197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으로 이전해 오면서 전시 기능이 통합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중앙공보관화랑에서 열린 가장 대표적인 사진전람회는 1959년 1월에 시작한 잡지사 『사상계(思想界)』가 주최한 라이프사진작가걸작전과 1960년 10월에 열린 사진단체 싸롱아루스의 싸롱 아루스사진전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세계 사진의 흐름을 주도한 『라이프(LIFE)』지에 게재된 유명한 사진을 직접 감상할 기회를 시민들에게 제공했으며, 조형주의 사진의 서막을 알리는 싸롱 아루스의 창립전은 리얼리즘에서 조형주의로 변화하는 한국사진의 변곡점을 알리는 전시를 선보이는 계기이었다.
한편 1966년 4월에는 한국 기록사진의 출발선으로 꼽히는 사진가 주명덕의 ‘ 홀트씨고아원’전이 이곳에서 개최되었으으며, 한국 현대사진의 주역들을 배출한 ' 현대사진연구회' 회원전도 세차례에 걸쳐 열렸다. 작가주의 사진가 현일영의 1961년 10월 ‘현일영 사진 소품전’, 1962년 ‘현일영(玄一榮) 사진개인전’, 1963년 ‘현일영 회갑 기념전’ 등 현일영의 주요 작품들도 이 화랑에서 처음 선보였다. 현일영은 1972년 한국화랑에서 개최한 마지막 개인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중앙공보관화랑과 명칭을 바꾼 국립공보관화랑에서 전시를 열었고, 화랑 역사에서 가장 많은 개인전을 치룬 작가로 남아있다.
중앙공보관화랑은 설립된 1957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기능이 통합된 1972년까지 서울의 가장 중요한 사진과 미술의 작품 발표의 장이었다. 사진의 경우는 한국사진사의 분기점을 이루는 대부분의 전시가 이곳에서 열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당시 중앙공보관 주변에는 ‘반도화랑’ 같은 사설 화랑이 생기면서 시장성이 있는 회화 전시가 열려 기능이 분산되었다. 좀 더 대중적이지만 미술시장에 진입하지 않았던 사진의 경우는 정부가 운영해 공공의 성격이 강한 이곳이 전시공간으로 사진작품 발표를 거의 전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