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46년, 신문사 소속 사진기자들이 결성한 단체.
설립 과정
간사장 제도로 운영되었으며, 백운선[1947년], 김정래[1948년], 최창희[1949년] 등이 간사장을 역임했다. 회원으로는 권태완, 김수종, 김영배, 김정래, 박진식, 방삼성, 백운선, 이병은, 이종옥, 이태연, 이한종, 조대식, 채규정, 최경덕, 최인집, 최창희, 최희연, 허승균 등의 사진기자들이 참여했다.
해방공간기 좌우익의 대립 속에서 언론[신문]도 좌익과 우익으로 나눠졌는데, 조선신문사진협회는 우익계 사진단체 중의 하나였다. 1947년 2월 총 28개의 우익 계열의 문화예술단체가 모여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를 결성할 때, 조선신문사진협회가 조선사진예술연구회, 조선기록사진문화사와 함께 그 산하 단체로 가입했다는 사실에서 그 이념적 성향을 알 수 있다.
주요 활동
한편 해방을 맞아 그동안 일본을 통해 반입되던 사진재료의 수급이 차단되자, 사진계는 중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예술사진뿐만 아니라 영업사진, 보도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 창작 및 기록을 위한 양질의 사진재료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사진문화와 사진산업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불어닥친 것이다.
이에 대해 1947년 5월 8일자 『동아일보』는 “[사진] 재료문제는 오직 재고품과 일부 외국의 밀수품에 의존하여 왔으며, 최근에 있어서는 현하 사진문화가 담당하고 있는 그 소비량에 대비할만한 국내 생산이 전무상태에 있고 극소수의 잔품도 이미 소비되어 금후의 재료 보충이 완전히 봉쇄상태에 있다”며 그 긴급함을 전했다.
사진계는 해방 직후부터 이러한 사진재료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자 다각도의 노력을 전개했다. 특히 1947년 3월 27일 조선신문사진협회를 비롯하여, 조선신문협회, 서울사진업조합, 조선사진예술연구회, 서울인상사진연구회, 서울사진재료상조합 등 언론계 · 예술사진계 · 사진업계를 대표하는 각 분야의 6개 사진단체가 모여 조선사진재료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박필호를 위원장으로 한 조선사진재료대책위원회에서는 5월 3일 사진재료난 타계를 위한 진정서를 미군정 관계부서에 제출했다. 제출된 진정서의 주요 내용은 “사진재료의 국내 생산 촉진, 외래품의 수입 알선, 간상배(奸商輩)의 조량(跳梁) 방지”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진재료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변천
전쟁이 끝나자 사진기자들은 다시 회원들을 규합하여 1954년 6월 ‘한국신문사진기자단’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조직했다. 초대 간사장은 박진식이 맡았으며, 간사에 이병은, 이종옥, 이명동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어서 1964년 4월 “사진기자간의 친목도모와 권익옹호 및 보도사진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동명(同名)의 ‘한국신문사진기자단’[초대 대표 최경덕]이 새로 발족했으며, 1982년 한국사진기자회, 1996년 한국사진기자협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사협사 1: 1945~1970』(한국사진작가협회 출판부, 2001)
신문·잡지 기사
-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12일 결성대회 개최 예정」(『동아일보』, 1947. 2. 9.)
인터넷 자료
- [南朝鮮過渡立法議院 速記錄 第四號](https://db.history.go.kr/id/cons_001_0070_0010_0040)
주석
-
주1
: 도량(跳梁)의 당시 표기로,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어 다님’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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