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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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은 5세기 중엽부터 1125년까지 퉁구스와 몽골의 혼혈족으로 알려진 동호(東胡)계의 한 종족명이자 국가명이다. 요하 상류인 시라무렌[西刺木倫]의 남쪽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이다. 거란국은 당나라 말과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틈타 8부족을 통일한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해 916년에 건국되어, 9대 210년동안 존속하다가 1125년에 천조제(天祚帝)가 여진에 생포되면서 멸망하였다. 고려와 3차례에 걸쳐 무력충돌을 하였으며, 압록강 이동의 점유지에 군사시설을 확충하는 문제로 고려와 갈등을 빚었다.
거란 (契丹)
거란은 5세기 중엽부터 1125년까지 퉁구스와 몽골의 혼혈족으로 알려진 동호(東胡)계의 한 종족명이자 국가명이다. 요하 상류인 시라무렌[西刺木倫]의 남쪽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이다. 거란국은 당나라 말과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틈타 8부족을 통일한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해 916년에 건국되어, 9대 210년동안 존속하다가 1125년에 천조제(天祚帝)가 여진에 생포되면서 멸망하였다. 고려와 3차례에 걸쳐 무력충돌을 하였으며, 압록강 이동의 점유지에 군사시설을 확충하는 문제로 고려와 갈등을 빚었다.
고려 전기 거란침입 때 흥화진(興化鎭, 평안북도 의주)에서 벌어진 전투.
흥화진전투 (興化鎭戰鬪)
고려 전기 거란침입 때 흥화진(興化鎭, 평안북도 의주)에서 벌어진 전투.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왕조에서 70세 이상의 연로한 대신들에게 내린 하사품.
궤장 (几杖)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왕조에서 70세 이상의 연로한 대신들에게 내린 하사품.
「강감찬 설화」는 고려 전기의 문신 강감찬에 관한 설화이다. 「강감찬 설화」는 문헌 설화와 구전 설화로 전승되고 있다. 실존 인물인 강감찬의 업적이 민간에서 숭상받게 되어 널리 구전된 것으로 보인다. 「강감찬 설화」는 전기적 구성으로 크게 출생, 성장, 벼슬에 관한 일화로 나눌 수 있다. 구전 설화에서 강감찬은 백성과 친근한 존재로 나타나며 이인으로서 도술을 행하거나 귀신을 쫓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하는 능력을 가진 신앙 인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강감찬 설화 (姜邯贊 說話)
「강감찬 설화」는 고려 전기의 문신 강감찬에 관한 설화이다. 「강감찬 설화」는 문헌 설화와 구전 설화로 전승되고 있다. 실존 인물인 강감찬의 업적이 민간에서 숭상받게 되어 널리 구전된 것으로 보인다. 「강감찬 설화」는 전기적 구성으로 크게 출생, 성장, 벼슬에 관한 일화로 나눌 수 있다. 구전 설화에서 강감찬은 백성과 친근한 존재로 나타나며 이인으로서 도술을 행하거나 귀신을 쫓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하는 능력을 가진 신앙 인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구주대첩(龜州大捷)은 1019년(현종 10) 고려에 침입한 거란군을 구주에서 크게 격파한 전투이다. 구주는 993년(성종 12) 10월 거란의 제1차 침입 후 체결된 강화조약에서 서희(徐熙)의 외교적인 수완으로 고려의 점유를 인정받은 청천강 이북에서 압록강 입구까지의 강동지방에 설치된 행정 구역인 강동육주의 하나였다. 1018년(현종 9) 12월 소배압(蕭排押)을 총지휘관으로 한 거란의 제3차 침입 때, 10만의 거란대군을 상원수 강감찬(姜邯贊) 등이 구주에서 크게 무찔러 거란군의 전의를 완전히 잃게 한 전쟁을 말한다.
구주대첩 (龜州大捷)
구주대첩(龜州大捷)은 1019년(현종 10) 고려에 침입한 거란군을 구주에서 크게 격파한 전투이다. 구주는 993년(성종 12) 10월 거란의 제1차 침입 후 체결된 강화조약에서 서희(徐熙)의 외교적인 수완으로 고려의 점유를 인정받은 청천강 이북에서 압록강 입구까지의 강동지방에 설치된 행정 구역인 강동육주의 하나였다. 1018년(현종 9) 12월 소배압(蕭排押)을 총지휘관으로 한 거란의 제3차 침입 때, 10만의 거란대군을 상원수 강감찬(姜邯贊) 등이 구주에서 크게 무찔러 거란군의 전의를 완전히 잃게 한 전쟁을 말한다.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에 있는 고려전기 이후 내성과 조선후기의 외성으로 구성된 석축 성곽. 산성.
백마산성 (白馬山城)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에 있는 고려전기 이후 내성과 조선후기의 외성으로 구성된 석축 성곽. 산성.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동 강감찬 생가 터에 위치하고 있던 고려시대의 석탑.
낙성대 삼층석탑 (落星垈 三層石塔)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동 강감찬 생가 터에 위치하고 있던 고려시대의 석탑.
1908년 우기선(禹基善)이 지은 강감찬 전기.
강감찬전 (姜邯贊傳)
1908년 우기선(禹基善)이 지은 강감찬 전기.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은 해군 최초의 함대 방공 구축함으로, 본격적인 대양작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배수량 4,400톤급의 함선이다. 2003년 제1번함인 충무공이순신함이 취역한 후에 차례대로 문무대왕함, 대조영함, 왕건함, 강감찬함, 최영함 등 총 6척이 건조되였다.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은 함대 방공 구축함인 동시에 다층 방공망, 스텔스 설계 등을 적용하였으며, 대잠헬기인 링스를 2대까지 탑재할 수 있다. 또한 장거리 운항도 가능해 다양한 해외훈련과 군사작전에 참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충무공이순신급 함정 6척을 보유함으로써 대양해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忠武公李舜臣級 驅逐艦)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은 해군 최초의 함대 방공 구축함으로, 본격적인 대양작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배수량 4,400톤급의 함선이다. 2003년 제1번함인 충무공이순신함이 취역한 후에 차례대로 문무대왕함, 대조영함, 왕건함, 강감찬함, 최영함 등 총 6척이 건조되였다.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은 함대 방공 구축함인 동시에 다층 방공망, 스텔스 설계 등을 적용하였으며, 대잠헬기인 링스를 2대까지 탑재할 수 있다. 또한 장거리 운항도 가능해 다양한 해외훈련과 군사작전에 참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충무공이순신급 함정 6척을 보유함으로써 대양해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고려 전기, 강감찬의 아버지이자 금주 일대의 토착세력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섬겼던 호족·공신.
강궁진 (姜弓珍)
고려 전기, 강감찬의 아버지이자 금주 일대의 토착세력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섬겼던 호족·공신.
고려 전기에, 예부원외랑, 우간의대부, 우산기상시 등을 역임한 문신.
김종현 (金宗鉉)
고려 전기에, 예부원외랑, 우간의대부, 우산기상시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통군녹사, 병마사, 시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원 (趙元)
고려 전기에, 통군녹사, 병마사, 시랑 등을 역임한 문신.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개성 흥국사 (開城 興國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있는 고려전기 관리·무신 강감찬의 생가터.
강감찬 생가터(낙성대) (姜邯贊 生家터(落星垈))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있는 고려전기 관리·무신 강감찬의 생가터.
북한 평안북도 피현군에 있는 조선후기 강감찬과 임경업 등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사당.
현충사 (顯忠祠)
북한 평안북도 피현군에 있는 조선후기 강감찬과 임경업 등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사당.
행영병마사는 고려시대에 변방에 외침이나 변란이 발생하였을 때 파견되었던 기구이자 관직이다. 처음에는 대번병마(大番兵馬)라고 하였다가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를 거쳐 1047년(문종1)에 행영병마사로 개칭되었다. 재신이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추밀과 직사3품관이 파견되었으며, 위로 행영병마판사(行營兵馬判事)가 있고 아래로 지행영병마사(知行營兵馬事), 행영병마부사(行營兵馬副使), 행영병마판관(行營兵馬判官), 행영병마녹사(行營兵馬綠事), 행영병마별감(行營兵馬別監) 등이 설치되었다.
행영병마사 (行營兵馬使)
행영병마사는 고려시대에 변방에 외침이나 변란이 발생하였을 때 파견되었던 기구이자 관직이다. 처음에는 대번병마(大番兵馬)라고 하였다가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를 거쳐 1047년(문종1)에 행영병마사로 개칭되었다. 재신이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추밀과 직사3품관이 파견되었으며, 위로 행영병마판사(行營兵馬判事)가 있고 아래로 지행영병마사(知行營兵馬事), 행영병마부사(行營兵馬副使), 행영병마판관(行營兵馬判官), 행영병마녹사(行營兵馬綠事), 행영병마별감(行營兵馬別監) 등이 설치되었다.
고려전기 시어사, 판관, 예빈경 좌간의대부 등을 역임한 관리.
박종검 (朴從儉)
고려전기 시어사, 판관, 예빈경 좌간의대부 등을 역임한 관리.
「강시중전」은 고려 시대 명장 강감찬의 일대기를 다룬, 장회체 형식의 소설이다. 역사를 기반으로 창작되었으며, 강감찬이 거듭된 내우외환을 잘 극복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1908년에 출간된 「강감찬전」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검열 때문인지 반일의 요소가 생략되고 친일의 요소가 추가되는 양상이 확인된다.
강시중전 (姜侍中傳)
「강시중전」은 고려 시대 명장 강감찬의 일대기를 다룬, 장회체 형식의 소설이다. 역사를 기반으로 창작되었으며, 강감찬이 거듭된 내우외환을 잘 극복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1908년에 출간된 「강감찬전」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검열 때문인지 반일의 요소가 생략되고 친일의 요소가 추가되는 양상이 확인된다.
현종은 고려 전기 제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09~1031년이며, 승려로 숭교사와 신혈사에 있다가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5도양계체제라는 군현제의 기본 골격을 완성하여, 호족세력에 의해 형성된 정치체제를 청산하고 왕권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하였다. 거란의 2차, 3차 침입을 물리치고 강력한 북진정책을 실천하여 북방민족에 대해 자주적인 입장을 확립하였다. 부처의 힘으로 외침을 방어하고자 제작한 6천여 권의 대장경은 큰 문화적 업적이다. 고려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현종 (顯宗)
현종은 고려 전기 제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09~1031년이며, 승려로 숭교사와 신혈사에 있다가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5도양계체제라는 군현제의 기본 골격을 완성하여, 호족세력에 의해 형성된 정치체제를 청산하고 왕권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하였다. 거란의 2차, 3차 침입을 물리치고 강력한 북진정책을 실천하여 북방민족에 대해 자주적인 입장을 확립하였다. 부처의 힘으로 외침을 방어하고자 제작한 6천여 권의 대장경은 큰 문화적 업적이다. 고려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