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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동이족에게 붙인 9가지의 종족명칭.
구이 (九夷)
중국인이 동이족에게 붙인 9가지의 종족명칭.
「구황실재산법」은 1954년에 구황실재산을 문화재로서 영구히 보존 관리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률이다. 구황실재산이란 구한국 황실이 소유했던 재산으로 구 이왕직(李王職)에서 관리하였던 일체의 재산을 말하며, 국유로 하였다. 구황실재산을 영구 보존 재산과 기타 재산으로 구분하고 이를 관리하는 기구로 대통령 감독 하에 구황실재산관리위원회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을 두었다. 1963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의 부칙에 따라 「구황실재산법」은 폐지되었고 영구 보존 재산은 국유 문화재로 하였다.
구황실재산법 (舊皇室財産法)
「구황실재산법」은 1954년에 구황실재산을 문화재로서 영구히 보존 관리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률이다. 구황실재산이란 구한국 황실이 소유했던 재산으로 구 이왕직(李王職)에서 관리하였던 일체의 재산을 말하며, 국유로 하였다. 구황실재산을 영구 보존 재산과 기타 재산으로 구분하고 이를 관리하는 기구로 대통령 감독 하에 구황실재산관리위원회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을 두었다. 1963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의 부칙에 따라 「구황실재산법」은 폐지되었고 영구 보존 재산은 국유 문화재로 하였다.
구 황실관리위원회는 광복 후 이왕직을 대신하여 구황실 및 황실의 소유 물품,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종친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임의 단체이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황실 관련 사무를 관장했던 궁내부를 폐지하고 이왕직을 설치하여 구황실을 관리, 통제하였다. 해방 후에는 구황실관리위원회가 황실 및 황실의 소유 물품, 재산을 관리하는 이왕직을 대신할 수 있는 후속기관으로 조직되었다. 이달용, 이규용, 윤홍섭, 김익동 등과 황실 종친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임시 단체이며 1945년 8월 16일 조직되어 1945년 11월 8일 폐지되었다.
구 황실관리위원회 (舊 皇室管理委員會)
구 황실관리위원회는 광복 후 이왕직을 대신하여 구황실 및 황실의 소유 물품,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종친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임의 단체이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황실 관련 사무를 관장했던 궁내부를 폐지하고 이왕직을 설치하여 구황실을 관리, 통제하였다. 해방 후에는 구황실관리위원회가 황실 및 황실의 소유 물품, 재산을 관리하는 이왕직을 대신할 수 있는 후속기관으로 조직되었다. 이달용, 이규용, 윤홍섭, 김익동 등과 황실 종친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임시 단체이며 1945년 8월 16일 조직되어 1945년 11월 8일 폐지되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역과 경상북도 영천시 영천역 사이에 부설된 철도.
대구선 (大邱線)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역과 경상북도 영천시 영천역 사이에 부설된 철도.
김용춘은 신라 중고기의 왕족으로서, 진지왕의 아들이자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이다. 용수라고도 불렸으며, 사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 내성 사신을 역임하고 고구려 낭비성 공격에서 활약하였으며, 황룡사구층목탑의 건립을 주관하였다.
김용춘 (金龍春)
김용춘은 신라 중고기의 왕족으로서, 진지왕의 아들이자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이다. 용수라고도 불렸으며, 사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 내성 사신을 역임하고 고구려 낭비성 공격에서 활약하였으며, 황룡사구층목탑의 건립을 주관하였다.
삼국시대 때, 백제의 사비성 함락 사실을 일본 야마토 조정에 보고한 승려.
각종 (覺從)
삼국시대 때, 백제의 사비성 함락 사실을 일본 야마토 조정에 보고한 승려.
고려전기 태승, 한림학사, 내봉성령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정언 (金廷彦)
고려전기 태승, 한림학사, 내봉성령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명전은 고려시대에 전시과(田柴科) 제도 아래에서 개인에게 분급된 개인 명의의 토지이다. 양반전(兩班田)이나 군인전(軍人田)과 같이 자신의 직역(職役)에 대한 대가로 국가가 일정 액수의 수조권을 개인에게 지급한 토지로서 ‘역분구분가급보급(役分口分加給補給)의 명(전)’이라는 표현이 있다.
명전 (名田)
명전은 고려시대에 전시과(田柴科) 제도 아래에서 개인에게 분급된 개인 명의의 토지이다. 양반전(兩班田)이나 군인전(軍人田)과 같이 자신의 직역(職役)에 대한 대가로 국가가 일정 액수의 수조권을 개인에게 지급한 토지로서 ‘역분구분가급보급(役分口分加給補給)의 명(전)’이라는 표현이 있다.
십이잡가(十二雜歌)의 하나.
방물가 (房物歌)
십이잡가(十二雜歌)의 하나.
조선후기 문인 이병연의 「분매」·「정양사잡영」·「오대산」·「만폭동」 등을 수록한 시집.
사천시초 (槎川詩抄)
조선후기 문인 이병연의 「분매」·「정양사잡영」·「오대산」·「만폭동」 등을 수록한 시집.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여산폭포시」, 「창림사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김생 (金生)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여산폭포시」, 「창림사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은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남장사 보광전에 있는 조선 후기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이다.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36㎝, 너비 226㎝이다. 불화와 불상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목각탱이라고도 불린다. 총 8매의 나무판 중앙에 아미타여래를 배치하고, 상하 4단으로 나뉘어 아래에서부터 사천왕상, 8대보살과 범천·제석천, 10대 제자를 배치했다. 아미타극락구품도를 조각으로 옮긴 회화이자 조각의 특징을 지녔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7점 정도만 남아 있는 목각탱 중의 하나로 귀중한 자료이다.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 (尙州 南長寺 普光殿 木刻 阿彌陀如來 說法像)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은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남장사 보광전에 있는 조선 후기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이다.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36㎝, 너비 226㎝이다. 불화와 불상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목각탱이라고도 불린다. 총 8매의 나무판 중앙에 아미타여래를 배치하고, 상하 4단으로 나뉘어 아래에서부터 사천왕상, 8대보살과 범천·제석천, 10대 제자를 배치했다. 아미타극락구품도를 조각으로 옮긴 회화이자 조각의 특징을 지녔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7점 정도만 남아 있는 목각탱 중의 하나로 귀중한 자료이다.
수신전(守信田)은 과전법에서 토지를 받은 관직자가 사망한 이후 그의 처에게 재가(再嫁)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죽은 남편의 토지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과전법 규정에 따르면 토지를 받은 관직자가 사망했을 때, 수신하는 처에게는 자식이 있는 경우 남편의 토지 전체를, 자식이 없는 경우는 절반을 수신전의 명목으로 지급하였다. 수신전은 휼양전과 함께 사실상 과전의 승계를 위한 제도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했는데, 결국 1466년(세조 12) 직전법의 제정으로 폐지되었다.
수신전 (守信田)
수신전(守信田)은 과전법에서 토지를 받은 관직자가 사망한 이후 그의 처에게 재가(再嫁)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죽은 남편의 토지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과전법 규정에 따르면 토지를 받은 관직자가 사망했을 때, 수신하는 처에게는 자식이 있는 경우 남편의 토지 전체를, 자식이 없는 경우는 절반을 수신전의 명목으로 지급하였다. 수신전은 휼양전과 함께 사실상 과전의 승계를 위한 제도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했는데, 결국 1466년(세조 12) 직전법의 제정으로 폐지되었다.
영업전은 고려시대에 양반(兩班) · 서리(胥吏) · 군인(軍人) 등에게 지급하였던 전시과(田柴科) 및 공음전시(功蔭田柴)의 이칭이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전시과만 영업전으로 파악하거나 공음전시만을 영업전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영업전은 비록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토지는 아니었으나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손에게 세습할 수 있었다.
영업전 (永業田)
영업전은 고려시대에 양반(兩班) · 서리(胥吏) · 군인(軍人) 등에게 지급하였던 전시과(田柴科) 및 공음전시(功蔭田柴)의 이칭이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전시과만 영업전으로 파악하거나 공음전시만을 영업전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영업전은 비록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토지는 아니었으나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손에게 세습할 수 있었다.
어절은 한 단어 및 그 이상의 이어진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법 단위이다. 계열관계와 통합관계에 의해서 마디지어지는 한 덩어리의 말이다. 계열관계는 ‘하늘이 푸르다’라는 문장에서 ‘하늘이’ 대신 ‘강물이, 물이’ 등이 대치될 수 있는 말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 통합관계는 ‘높은’이 ‘하늘이’ 앞에, ‘더욱’은 ‘하늘이’와 ‘푸르다’의 사이에 삽입되어 ‘높은 하늘이 더욱 푸르다’와 같은 문장을 형성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한 단어가 한 어절을 이루기도 하고, 체언에 조사가 붙거나, 어미가 어간에 붙어서 한 어절을 이루기도 한다.
어절 (語節)
어절은 한 단어 및 그 이상의 이어진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법 단위이다. 계열관계와 통합관계에 의해서 마디지어지는 한 덩어리의 말이다. 계열관계는 ‘하늘이 푸르다’라는 문장에서 ‘하늘이’ 대신 ‘강물이, 물이’ 등이 대치될 수 있는 말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 통합관계는 ‘높은’이 ‘하늘이’ 앞에, ‘더욱’은 ‘하늘이’와 ‘푸르다’의 사이에 삽입되어 ‘높은 하늘이 더욱 푸르다’와 같은 문장을 형성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한 단어가 한 어절을 이루기도 하고, 체언에 조사가 붙거나, 어미가 어간에 붙어서 한 어절을 이루기도 한다.
삼국시대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 건립에 참여한 백제의 건축가.
아비지 (阿非知)
삼국시대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 건립에 참여한 백제의 건축가.
속감전은 872년(경문왕 12)에 황룡사9층목탑을 중수할 때 공역(工役)과 관련된 왕실과의 연락사무나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였던 속관(俗官)들로 구성된 통일신라의 임시기구이다. 속감전을 구성하였던 관료들 가운데 집사시랑은 집사부의 차관으로써, 중수와 관련된 왕명의 출납과 왕실과의 각종 연락사무를 담당하였다. 내성경은 왕실 재정을 담당하였던 내성의 차관으로, 목탑의 중수에 필요한 각종 재원의 마련과 지원 사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속감전 (俗監典)
속감전은 872년(경문왕 12)에 황룡사9층목탑을 중수할 때 공역(工役)과 관련된 왕실과의 연락사무나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였던 속관(俗官)들로 구성된 통일신라의 임시기구이다. 속감전을 구성하였던 관료들 가운데 집사시랑은 집사부의 차관으로써, 중수와 관련된 왕명의 출납과 왕실과의 각종 연락사무를 담당하였다. 내성경은 왕실 재정을 담당하였던 내성의 차관으로, 목탑의 중수에 필요한 각종 재원의 마련과 지원 사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조선후기 승려 긍선이 원나라 원묘의 『선요』를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선요기 (禪要記)
조선후기 승려 긍선이 원나라 원묘의 『선요』를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전시과는 고려시대 국가에서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분급한 토지제도이다. 협의로는 문무 관료 및 직역(職役) 부담자에 대한 수조지(收租地) 분급을 규정한 토지제도를 의미하고, 광의로는 이 토지제도를 기축으로 구성된 토지 지배 관계의 광범한 체계를 의미한다. 농경지인 전지와 땔나무 등을 공급해 주는 시지를 아울러 분급했기 때문에 전시과라고 하였다.
전시과 (田柴科)
전시과는 고려시대 국가에서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분급한 토지제도이다. 협의로는 문무 관료 및 직역(職役) 부담자에 대한 수조지(收租地) 분급을 규정한 토지제도를 의미하고, 광의로는 이 토지제도를 기축으로 구성된 토지 지배 관계의 광범한 체계를 의미한다. 농경지인 전지와 땔나무 등을 공급해 주는 시지를 아울러 분급했기 때문에 전시과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