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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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10월 1일 남조선과도정부의 정무회의 시국대책위원회가 작성한「시국대책요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군정 연장 반대시위 (軍政 延長 反對示威)
1947년 10월 1일 남조선과도정부의 정무회의 시국대책위원회가 작성한「시국대책요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군정법령 제33호는 1945년 12월 6일 미군정이 「조선내 소재 일본인재산권 취득의 건」을 규정한 법령이다. 1945년 9월 25일의 군정법령 제2호로 패전국의 재산을 동결하였는데, 군정법령 제33호는 조선 내에 있는 일본 정부와 일본인의 모든 재산을 조선 군정청이 접수한다는 내용으로 귀속재산의 범위를 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군정법령 제33호 (軍政法令 第三十三號)
군정법령 제33호는 1945년 12월 6일 미군정이 「조선내 소재 일본인재산권 취득의 건」을 규정한 법령이다. 1945년 9월 25일의 군정법령 제2호로 패전국의 재산을 동결하였는데, 군정법령 제33호는 조선 내에 있는 일본 정부와 일본인의 모든 재산을 조선 군정청이 접수한다는 내용으로 귀속재산의 범위를 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존속한 남한 통치를 위한 미국의 군정청.
미군정청 (美軍政廳)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존속한 남한 통치를 위한 미국의 군정청.
미소군정기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한반도의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남한과 북한을 각기 통치했던 기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한반도를 패전국과 같은 분할점령지역으로 설정하여, 북에는 소련군이, 남에는 미군이 점령군으로서 주둔하여 군정을 실시했다. 이 기간 동안 국내에서는 하나의 독립국가 건설을 놓고 여러 견해가 치열하게 충돌했고, 미국과 소련도 미소공동위원회를 열어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수립되면서 남북분단이 고착화되었다.
미소군정기 (美蘇軍政期)
미소군정기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한반도의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남한과 북한을 각기 통치했던 기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한반도를 패전국과 같은 분할점령지역으로 설정하여, 북에는 소련군이, 남에는 미군이 점령군으로서 주둔하여 군정을 실시했다. 이 기간 동안 국내에서는 하나의 독립국가 건설을 놓고 여러 견해가 치열하게 충돌했고, 미국과 소련도 미소공동위원회를 열어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수립되면서 남북분단이 고착화되었다.
1946년 9월 24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약칭 전평)이 전국적 규모로 일으킨 미군정기 최대의 총파업.
9월 총파업 (九月 總罷業)
1946년 9월 24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약칭 전평)이 전국적 규모로 일으킨 미군정기 최대의 총파업.
조선 후기 삼정문란의 한 사례인 군정(軍政)의 폐해.
백골징포 (白骨徵布)
조선 후기 삼정문란의 한 사례인 군정(軍政)의 폐해.
삼정은 18세기 이후 조선 왕조 국가 재정 운영에 있어서 근간인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을 의미한다. 조선 전기 국가 재정은 전세, 군역, 공물로 운영되었으나, 17세기 이후 대동법의 실시로 공물이 지세화(地世化)되고, 환곡이 새롭게 주요 수입원으로 등장하면서 삼정 체제가 확립되었다.
삼정 (三政)
삼정은 18세기 이후 조선 왕조 국가 재정 운영에 있어서 근간인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을 의미한다. 조선 전기 국가 재정은 전세, 군역, 공물로 운영되었으나, 17세기 이후 대동법의 실시로 공물이 지세화(地世化)되고, 환곡이 새롭게 주요 수입원으로 등장하면서 삼정 체제가 확립되었다.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군포는 병역 의무자인 양인 남정(男丁: 16세 이상 60세 이하)이 현역 복무에 나가지 않는 대신에 부담하였던 세금이다. 본래는 현역 복무자인 정군(正軍)의 경비 충당을 위하여 정군을 보조하는 자인 보인(保人, 또는 奉足)이 부담한 베[布]를 의미했으나, 16세기 현역으로 군역을 수행하는 대신 베[布]를 바치는 방식이 제도화된 이후, 사실상 국가 재정의 보전을 위한 일반 양민의 3대 물납세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군포 (軍布)
군포는 병역 의무자인 양인 남정(男丁: 16세 이상 60세 이하)이 현역 복무에 나가지 않는 대신에 부담하였던 세금이다. 본래는 현역 복무자인 정군(正軍)의 경비 충당을 위하여 정군을 보조하는 자인 보인(保人, 또는 奉足)이 부담한 베[布]를 의미했으나, 16세기 현역으로 군역을 수행하는 대신 베[布]를 바치는 방식이 제도화된 이후, 사실상 국가 재정의 보전을 위한 일반 양민의 3대 물납세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익희 (申翼熙)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조선 후기에, 장련현감, 선전관, 위원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윤동교 (尹東郊)
조선 후기에, 장련현감, 선전관, 위원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과의군도지휘사, 동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원경 (元卿)
고려후기 과의군도지휘사, 동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의흥삼군부는 조선 전기 군령(軍令)과 군정(軍政)을 총괄한 관서이다. 삼군부라고 불렀다. 오군체제를 삼군체제로 바꾸어 삼군도총제부를 설치하였는데 조선 건국 이후 이름을 바꿨다. 고려의 2군 6위의 8위와 태조의 친위부대 의흥친군위의 좌·우위를 합해 10위를 중·좌·우의 3군으로 나누어 통솔하였다. 군사 최고기관이었으나 10위를 통할할 뿐 군사력은 절제사 등에 영속(領屬)되어 있었다. 사병을 혁파되고 병권을 분할 통솔하기 위한 의도에서 성립한 기구라고 할 수 있다. 1401년 승추부(承樞府)로 개편되고 삼군에 각각 도총제부를 두어 분리되었다가 병조에 합병되었다.
의흥삼군부 (義興三軍府)
의흥삼군부는 조선 전기 군령(軍令)과 군정(軍政)을 총괄한 관서이다. 삼군부라고 불렀다. 오군체제를 삼군체제로 바꾸어 삼군도총제부를 설치하였는데 조선 건국 이후 이름을 바꿨다. 고려의 2군 6위의 8위와 태조의 친위부대 의흥친군위의 좌·우위를 합해 10위를 중·좌·우의 3군으로 나누어 통솔하였다. 군사 최고기관이었으나 10위를 통할할 뿐 군사력은 절제사 등에 영속(領屬)되어 있었다. 사병을 혁파되고 병권을 분할 통솔하기 위한 의도에서 성립한 기구라고 할 수 있다. 1401년 승추부(承樞府)로 개편되고 삼군에 각각 도총제부를 두어 분리되었다가 병조에 합병되었다.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
송진우 (宋鎭禹)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
1945년 12월 8일에 결성된 전국적인 농민운동 연합체.
전국농민조합총연맹 (全國農民組合總聯盟)
1945년 12월 8일에 결성된 전국적인 농민운동 연합체.
좌우 합작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1946년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조직된 정치 기구.
좌우합작위원회 (左右合作委員會)
좌우 합작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1946년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조직된 정치 기구.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장면 (張勉)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황구첨정은 조선 후기, 군정(軍政)의 폐단 중 하나로, 갓난아기까지 군적에 올려 세금을 부과하던 행위이다. 군역 기피 현상으로 심해져 군포(軍布) 납부자는 줄어드는데 군현별로 배정된 군정의 총액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지방관이 인원을 채우기 위하여 행한 불법 행위의 한 사례이다.
황구첨정 (黃口簽丁)
황구첨정은 조선 후기, 군정(軍政)의 폐단 중 하나로, 갓난아기까지 군적에 올려 세금을 부과하던 행위이다. 군역 기피 현상으로 심해져 군포(軍布) 납부자는 줄어드는데 군현별로 배정된 군정의 총액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지방관이 인원을 채우기 위하여 행한 불법 행위의 한 사례이다.
1946년 임시정부 진영을 중심으로 소집·구성한 우익 정치세력들의 통일전선체.
비상정치회의주비회 (非常政治會議籌備會)
1946년 임시정부 진영을 중심으로 소집·구성한 우익 정치세력들의 통일전선체.
미군정 법령에 의해 설립된 일제 귀속재산을 소유·관리한 회사.
신한공사 (新韓公社)
미군정 법령에 의해 설립된 일제 귀속재산을 소유·관리한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