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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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내근이 전라남도 함평군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1926년에 편찬한 {사찬 읍지}.
기성지 (箕城誌)
정내근이 전라남도 함평군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1926년에 편찬한 {사찬 읍지}.
「기성도병」은 평양성 내외의 자연적, 인문적 경관과 풍정을 재현한 19세기 산수화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155.9㎝, 가로 419.9㎝이다. 가로로 연결되는 8첩 병풍에 평양부성, 대동강 일대, 인근의 산악 풍경과 평안감사 행렬을 담았다. ‘기성’이라는 지명은 평양이 고대 기자조선의 수도라는 인식에서 붙여졌다. 풍경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조망해 담았다. 주요 경물 옆에 해서로 명칭을 부기하였다. 짜임새 있는 구도와 안정된 필묵법이 적용되었고, 제작 당시 평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각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기성도병 (箕城圖屛)
「기성도병」은 평양성 내외의 자연적, 인문적 경관과 풍정을 재현한 19세기 산수화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155.9㎝, 가로 419.9㎝이다. 가로로 연결되는 8첩 병풍에 평양부성, 대동강 일대, 인근의 산악 풍경과 평안감사 행렬을 담았다. ‘기성’이라는 지명은 평양이 고대 기자조선의 수도라는 인식에서 붙여졌다. 풍경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조망해 담았다. 주요 경물 옆에 해서로 명칭을 부기하였다. 짜임새 있는 구도와 안정된 필묵법이 적용되었고, 제작 당시 평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각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옛 지명.
가리 (加利)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옛 지명.
강원도 김화 지역의 옛 지명.
매이 (買伊)
강원도 김화 지역의 옛 지명.
강원도 양구 지역의 옛 지명.
수입 (水入)
강원도 양구 지역의 옛 지명.
유가유식종에서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을 가리키는 불교교리. 유식삼성·삼무성.
삼성 (三性)
유가유식종에서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을 가리키는 불교교리. 유식삼성·삼무성.
화악산 운주암에서 기성이 염불로 마음의 고향에 돌아갈 것을 밝히는 내용 1767년에 간행한 불교서. 불교가사집.
염불환향곡 (念佛還鄕曲)
화악산 운주암에서 기성이 염불로 마음의 고향에 돌아갈 것을 밝히는 내용 1767년에 간행한 불교서. 불교가사집.
해방 이후 「서도소리」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서도소리명창.
장학선 (張鶴仙)
해방 이후 「서도소리」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서도소리명창.
고려 후기에, 삼사사, 좌상시, 첨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윤신걸 (尹莘傑)
고려 후기에, 삼사사, 좌상시, 첨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일제강점기 평양의 기성서화회에서 활동한 서화가.
임청계 (任淸溪)
일제강점기 평양의 기성서화회에서 활동한 서화가.
천연당사진관은 1907년 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개설한 사진관이다. 당대의 유명 서화가인 김규진(1868∼1933)은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와 서울의 석정동(지금의 중구 소공동)의 자신의 집에 사진관을 개업했다. 김규진은 초상사진, 졸업사진, 일반인들의 기념사진·기록사진·결혼식 사진·장례식 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진이 이용되도록 사진을 보급하였다. 신문 광고를 하고, 여성사진사를 통해 여성의 사진관 이용을 유도하고, 교육생을 모집하여 사진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영업방식을 이용하여 사진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천연당사진관 (天然堂寫眞館)
천연당사진관은 1907년 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개설한 사진관이다. 당대의 유명 서화가인 김규진(1868∼1933)은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와 서울의 석정동(지금의 중구 소공동)의 자신의 집에 사진관을 개업했다. 김규진은 초상사진, 졸업사진, 일반인들의 기념사진·기록사진·결혼식 사진·장례식 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진이 이용되도록 사진을 보급하였다. 신문 광고를 하고, 여성사진사를 통해 여성의 사진관 이용을 유도하고, 교육생을 모집하여 사진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영업방식을 이용하여 사진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김유탁은 일제강점기 때, 「화조사군자」, 「조안도」 등을 그린 서화가이다. 집안 어른들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21세 무렵 도화서 화원 양기훈에게 사군자와 화조를 배웠고 조석진 등의 화법을 익히기도 했다. 1906년에 한국 화랑의 효시되는 '수암서화관'을 설립하였다. 이후 기성서화미술회에 참여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고 서울 삼청동에 사설 서화학원인 서화지남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평양기생학교에서 그의 『남화초단격』을 사군자 교재로 사용하였다. 「후출사표」, 「전적벽부」, 「모란」, 「임탄은죽」 등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김유탁 (金有鐸)
김유탁은 일제강점기 때, 「화조사군자」, 「조안도」 등을 그린 서화가이다. 집안 어른들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21세 무렵 도화서 화원 양기훈에게 사군자와 화조를 배웠고 조석진 등의 화법을 익히기도 했다. 1906년에 한국 화랑의 효시되는 '수암서화관'을 설립하였다. 이후 기성서화미술회에 참여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고 서울 삼청동에 사설 서화학원인 서화지남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평양기생학교에서 그의 『남화초단격』을 사군자 교재로 사용하였다. 「후출사표」, 「전적벽부」, 「모란」, 「임탄은죽」 등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개항기 「산수도」, 「쌍마인물도」, 「설중방우도」 등을 그린 화가.
김윤보 (金允輔)
개항기 「산수도」, 「쌍마인물도」, 「설중방우도」 등을 그린 화가.
16세기에서 17세기 초반에 예안김씨(禮安金氏) 집안의 인물들이 참여한 모임을 담은 계회도(契會圖) 3점.
예안김씨 가전 계회도 일괄 (禮安金氏 家傳 契會圖 一括)
16세기에서 17세기 초반에 예안김씨(禮安金氏) 집안의 인물들이 참여한 모임을 담은 계회도(契會圖) 3점.
평양성도 병풍은 조선 후기, 평양성 일대의 경관을 연폭 병풍에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평양부의 실제 경관을 8폭 병풍에 그렸다. 평양성 일대의 산과 하천을 비롯해 행정, 군사, 제례, 문화 관련 시설 등 자연적, 인문적 형세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시설물과 화풍의 특징으로 미루어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병풍 형식 평양기성도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올라간다.
평양성도 병풍 (平壤城圖 屛風)
평양성도 병풍은 조선 후기, 평양성 일대의 경관을 연폭 병풍에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평양부의 실제 경관을 8폭 병풍에 그렸다. 평양성 일대의 산과 하천을 비롯해 행정, 군사, 제례, 문화 관련 시설 등 자연적, 인문적 형세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시설물과 화풍의 특징으로 미루어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병풍 형식 평양기성도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올라간다.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소재 대풍헌에 걸려 있는 19세기 무렵에 조성된 현판 12점.
울진 대풍헌 현판 일괄 (蔚珍 待風軒 懸板 一括)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소재 대풍헌에 걸려 있는 19세기 무렵에 조성된 현판 12점.
일제강점기 「조선팔경가」·「태평연」·「능수버들」 등을 부른 가수.
선우일선 (鮮于一扇)
일제강점기 「조선팔경가」·「태평연」·「능수버들」 등을 부른 가수.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간도청년회, 대한청년단 등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강백규 (姜伯奎)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간도청년회, 대한청년단 등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기생에게 음악과 노래 등을 가르쳤던 교육기관. 평양기생학교·기성권번 부속 기생양성소.
가무학교 (歌舞學校)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기생에게 음악과 노래 등을 가르쳤던 교육기관. 평양기생학교·기성권번 부속 기생양성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