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규진"
검색결과 총 23건
경상북도 영주시 구성산(龜城山)에 있는 조선시대 영천군 동헌의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가학루 (駕鶴樓)
경상북도 영주시 구성산(龜城山)에 있는 조선시대 영천군 동헌의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 있는 조선후기 종서 김규진 관련 주택.
망천동 임당댁 (輞川洞 林塘宅)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 있는 조선후기 종서 김규진 관련 주택.
1862년(철종 13) 4월 경상도 개령 에서 현감 김후근(金厚根)의 탐욕과 폭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봉기.
개령민란 (開寧民亂)
1862년(철종 13) 4월 경상도 개령 에서 현감 김후근(金厚根)의 탐욕과 폭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봉기.
사군자의 하나인 대나무를 소재로하여 수묵으로 그린 그림.
묵죽 (墨竹)
사군자의 하나인 대나무를 소재로하여 수묵으로 그린 그림.
이응노는 해방 이후 조선미술가협회 상임 위원을 역임한 화가이다. 1924년 김규진에게 묵화를 사사한 이후 194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과 특선에 올랐다. 일본에 가서 일본 화법과 양화를 공부하였고 귀국 후에는 배렴·장우성 등과 단구미술원을 조직하여 동인전을 가졌다. 1958년에 파리에 정착했는데 반공법으로 투옥되었다가 특별 사면된 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1981년부터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을 주제로 삼은 ‘시위 군중’ 소재의 대대적인 수묵화 연작에 열중하였다. 2007년에 대전에 이응노미술관이 개관했고 2012년에 대전시와 위·수탁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응노 (李應魯)
이응노는 해방 이후 조선미술가협회 상임 위원을 역임한 화가이다. 1924년 김규진에게 묵화를 사사한 이후 194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과 특선에 올랐다. 일본에 가서 일본 화법과 양화를 공부하였고 귀국 후에는 배렴·장우성 등과 단구미술원을 조직하여 동인전을 가졌다. 1958년에 파리에 정착했는데 반공법으로 투옥되었다가 특별 사면된 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1981년부터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을 주제로 삼은 ‘시위 군중’ 소재의 대대적인 수묵화 연작에 열중하였다. 2007년에 대전에 이응노미술관이 개관했고 2012년에 대전시와 위·수탁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희수는 조선 후기~근대에 활동한 『이소남서첩』을 남기고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화가이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근대기 서화가 김규진의 외삼촌이다. 글씨는 추사체를 따랐고, 그림에서는 산수, 사군자, 괴석, 모란, 정물 등 19세기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제를 두루 섭렵했다. 강원도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제자를 배출했고, 강원 화단의 성장에 이바지했다.
이희수 (李喜秀)
이희수는 조선 후기~근대에 활동한 『이소남서첩』을 남기고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화가이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근대기 서화가 김규진의 외삼촌이다. 글씨는 추사체를 따랐고, 그림에서는 산수, 사군자, 괴석, 모란, 정물 등 19세기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제를 두루 섭렵했다. 강원도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제자를 배출했고, 강원 화단의 성장에 이바지했다.
김규진이 1913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안에 개설한 상업화랑.
고금서화관 (古今書畵館)
김규진이 1913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안에 개설한 상업화랑.
1915년에 개설한 근대기의 서화교육 기관.
서화연구회 (書畵硏究會)
1915년에 개설한 근대기의 서화교육 기관.
19세기 말 최영년(崔永年)이 개설한 상업 화랑.
한성서화관 (漢城書畵館)
19세기 말 최영년(崔永年)이 개설한 상업 화랑.
해방 이후 『조선미술사』, 『동양미술사』, 『동양미술론』 등을 저술한 화가. 한국화가.
김영기 (金永基)
해방 이후 『조선미술사』, 『동양미술사』, 『동양미술론』 등을 저술한 화가. 한국화가.
일제강점기 난죽과 전각에 뛰어났던 화가. 한국화가.
민택기 (閔宅基)
일제강점기 난죽과 전각에 뛰어났던 화가. 한국화가.
천연당사진관은 1907년 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개설한 사진관이다. 당대의 유명 서화가인 김규진(1868∼1933)은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와 서울의 석정동(지금의 중구 소공동)의 자신의 집에 사진관을 개업했다. 김규진은 초상사진, 졸업사진, 일반인들의 기념사진·기록사진·결혼식 사진·장례식 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진이 이용되도록 사진을 보급하였다. 신문 광고를 하고, 여성사진사를 통해 여성의 사진관 이용을 유도하고, 교육생을 모집하여 사진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영업방식을 이용하여 사진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천연당사진관 (天然堂寫眞館)
천연당사진관은 1907년 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개설한 사진관이다. 당대의 유명 서화가인 김규진(1868∼1933)은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와 서울의 석정동(지금의 중구 소공동)의 자신의 집에 사진관을 개업했다. 김규진은 초상사진, 졸업사진, 일반인들의 기념사진·기록사진·결혼식 사진·장례식 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진이 이용되도록 사진을 보급하였다. 신문 광고를 하고, 여성사진사를 통해 여성의 사진관 이용을 유도하고, 교육생을 모집하여 사진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영업방식을 이용하여 사진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우후산수」·「난」·「매」 등을 그린 화가. 문인화가.
김우범 (金禹範)
일제강점기 「우후산수」·「난」·「매」 등을 그린 화가. 문인화가.
일제강점기 「귀초」·「추교」·「우제」 등을 그린 화가.
정용희 (鄭用姬)
일제강점기 「귀초」·「추교」·「우제」 등을 그린 화가.
1929년 남종화(南宗畵)의 고취 및 조선 내 지사(志士)들의 친목과 공조(共助)를 위해 조직한 미술단체.
조선남화협회 (朝鮮南畵協會)
1929년 남종화(南宗畵)의 고취 및 조선 내 지사(志士)들의 친목과 공조(共助)를 위해 조직한 미술단체.
「총석정절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1917년 창덕궁 대화재 이후 재건된 건물의 벽화 장식을 김규진(1868-1933)이 맡았다. 순종의 명에 의해 당시 화단의 중진인 김규진이 희정당 벽에 「총석정절경도」를 그렸다. 「총석정절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총석정의 절경을 청록산수 기법으로 파노라믹하게 표현하였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 화단에서 실경산수를 시도한 예이다. 「총석정절경도」는 한국 근대회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총석정절경도 (叢石亭絶景圖)
「총석정절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1917년 창덕궁 대화재 이후 재건된 건물의 벽화 장식을 김규진(1868-1933)이 맡았다. 순종의 명에 의해 당시 화단의 중진인 김규진이 희정당 벽에 「총석정절경도」를 그렸다. 「총석정절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총석정의 절경을 청록산수 기법으로 파노라믹하게 표현하였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 화단에서 실경산수를 시도한 예이다. 「총석정절경도」는 한국 근대회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2006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1917년 창덕궁의 대화재로 소실된 건물을 재건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졌다. 이 벽화는 희정당의 서쪽 벽면 위쪽에 금강산 만물상의 절경을 그린 것이다. 구름에 싸인 금강산의 단풍 든 가을 정경이 신비롭고 웅장하게 표현되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에 이런 실경산수는 기념비적이다. 김규진은 이 그림 외에 희정당 동쪽 벽의 「총석정절경도」도 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 (金剛山萬物肖勝景圖)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2006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1917년 창덕궁의 대화재로 소실된 건물을 재건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졌다. 이 벽화는 희정당의 서쪽 벽면 위쪽에 금강산 만물상의 절경을 그린 것이다. 구름에 싸인 금강산의 단풍 든 가을 정경이 신비롭고 웅장하게 표현되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에 이런 실경산수는 기념비적이다. 김규진은 이 그림 외에 희정당 동쪽 벽의 「총석정절경도」도 있다.
암상카메라는 일제강점기 사진관에서 주로 사용하던 목재 몸통에 주름막을 장착한 조립식 어둠상자 카메라이다. 건판의 실용화화 함께 무겁고 불편한 카메라 옵스큐라가 가볍고 간편한 암상 카메라로 바뀌자 영업 사진사들이나 사진 기자들이 주로 애용하며 대중화되었다. 1960년대까지도 수학여행 관광지나 졸업식장의 기념 촬영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소형 카메라가 등장하자 일부 전문 사진가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다가 최근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거의 사라졌다.
암상카메라 (暗箱camera)
암상카메라는 일제강점기 사진관에서 주로 사용하던 목재 몸통에 주름막을 장착한 조립식 어둠상자 카메라이다. 건판의 실용화화 함께 무겁고 불편한 카메라 옵스큐라가 가볍고 간편한 암상 카메라로 바뀌자 영업 사진사들이나 사진 기자들이 주로 애용하며 대중화되었다. 1960년대까지도 수학여행 관광지나 졸업식장의 기념 촬영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소형 카메라가 등장하자 일부 전문 사진가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다가 최근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거의 사라졌다.
김진애는 근대 천연당사진관에서 여성 고객을 전담한 한국 최초의 여류 사진가이다. 1868년 태어났으며, 천연당사진관을 설립한 해강 김규진의 부인이다. 1907년 사진관 개업 무렵부터 사진사로 능력을 발휘하였다. 최초의 여성 사진사가 여성 전용 촬영장을 개설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자신의 직업을 사진 찍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로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춘 사진사였다.
김진애 (金眞愛)
김진애는 근대 천연당사진관에서 여성 고객을 전담한 한국 최초의 여류 사진가이다. 1868년 태어났으며, 천연당사진관을 설립한 해강 김규진의 부인이다. 1907년 사진관 개업 무렵부터 사진사로 능력을 발휘하였다. 최초의 여성 사진사가 여성 전용 촬영장을 개설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자신의 직업을 사진 찍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로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춘 사진사였다.
사진사는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을 가르쳐준 헤이무라 도쿠베이의 이름에 붙여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른 명칭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지운영은 한국에 처음 사진을 도입한 선각자 중의 한명이었고, 대한제국 황실사진가를 지낸 해강 김규진도 천연당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이름에 자연스럽게 '사진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 이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사 (寫眞師)
사진사는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을 가르쳐준 헤이무라 도쿠베이의 이름에 붙여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른 명칭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지운영은 한국에 처음 사진을 도입한 선각자 중의 한명이었고, 대한제국 황실사진가를 지낸 해강 김규진도 천연당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이름에 자연스럽게 '사진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 이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