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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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는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에 있는 삼국시대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한 사찰이다. 임정사라 부르던 것을 뒤에 원효가 중창하여 기림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신라 신문왕이 들른 바가 있으며, 고려 말의 각유가 주지로 있었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중건, 중수하였으나 1862년 대화재로 소실되었으며, 그 이후로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른다.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비로자나삼불회도, 건칠보살반가상이 있으며, 그 외 다수의 지정문화재가 전한다.
함월산 기림사 (含月山 祇林寺)
기림사는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에 있는 삼국시대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한 사찰이다. 임정사라 부르던 것을 뒤에 원효가 중창하여 기림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신라 신문왕이 들른 바가 있으며, 고려 말의 각유가 주지로 있었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중건, 중수하였으나 1862년 대화재로 소실되었으며, 그 이후로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른다.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비로자나삼불회도, 건칠보살반가상이 있으며, 그 외 다수의 지정문화재가 전한다.
무량사는 통일신라 시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萬壽山)에 창건된 사찰이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개산조 범일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성주산문을 개창한 무염이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 초의 생육신 김시습,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 일옥과의 인연담이 전하며, 석탑과 극락전, 불상 등 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만수산 무량사 (萬壽山 無量寺)
무량사는 통일신라 시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萬壽山)에 창건된 사찰이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개산조 범일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성주산문을 개창한 무염이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 초의 생육신 김시습,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 일옥과의 인연담이 전하며, 석탑과 극락전, 불상 등 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상원이 창건한 사찰.
계룡산 동학사 (鷄龍山 東鶴寺)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상원이 창건한 사찰.
「연화몽」은 1928년 회동서관에서 간행한 넓은 의미의 몽유록계 고전소설이다. 단종의 역사적 사건을 제재로 구성하였는데, 이는 당시 단종조의 역사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에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에 김시습이 단종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충절을 포상하는 내용은 이 소설의 주요 의미를 확인케 한다. 내용적으로는 「원생몽유록」과의 관련성도 고려할 만하다.
연화몽 (蓮花夢)
「연화몽」은 1928년 회동서관에서 간행한 넓은 의미의 몽유록계 고전소설이다. 단종의 역사적 사건을 제재로 구성하였는데, 이는 당시 단종조의 역사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에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에 김시습이 단종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충절을 포상하는 내용은 이 소설의 주요 의미를 확인케 한다. 내용적으로는 「원생몽유록」과의 관련성도 고려할 만하다.
조선 전기에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소설.
용궁부연록 (龍宮赴宴錄)
조선 전기에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소설.
조선전기 제6대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6인의 문신.
생육신 (生六臣)
조선전기 제6대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6인의 문신.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남산(南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
남산 용장사 (南山 茸長寺)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남산(南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 만경대(萬景臺)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창건한 암자.
설악산 오세암 (雪嶽山 五歲庵)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 만경대(萬景臺)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창건한 암자.
경기도 의정부시 수락산(水落山)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박태보가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사찰.
수락산 석림사 (水落山 石林寺)
경기도 의정부시 수락산(水落山)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박태보가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사찰.
조선 전기에, 홍문관부교리, 예문관응교,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유자한 (柳自漢)
조선 전기에, 홍문관부교리, 예문관응교,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석씨전심」은 조선 전기, 김시습이 유교의 성리설과 불교의 심성론을 대조하여 지은 글이다. 생육신(生六臣)으로 유명한 유학자로서 출가했던 저자가 유교와 불교의 심성 인식을 정리한 내용으로 본성과 이치, 깨달음에 대한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석씨전심 (釋氏傳心)
「석씨전심」은 조선 전기, 김시습이 유교의 성리설과 불교의 심성론을 대조하여 지은 글이다. 생육신(生六臣)으로 유명한 유학자로서 출가했던 저자가 유교와 불교의 심성 인식을 정리한 내용으로 본성과 이치, 깨달음에 대한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조선 전기에, 한림, 직제학,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종검 (李宗儉)
조선 전기에, 한림, 직제학,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자화상은 그리는 화사와 그려지는 대상 인물이 동일인인 경우의 초상화이다. 서양에서는 렘브란트, 고흐 등 걸출한 화가들의 자화상이 유명하다. 화가 자신이 인식하는 자아라는 차원에서 흥미 있는 장르이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록상으로 보면 이미 고려 시대에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매월당집』에서 김시습의 자화상이 확인된다. 18세기 우리나라 자화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윤두서 자화상」이다. 그 밖에 이광좌, 강세황의 자화상도 심미적 안목이 뛰어나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타 초상화의 융성에 비하면 희소한 수량이다.
자화상 (自畵像)
자화상은 그리는 화사와 그려지는 대상 인물이 동일인인 경우의 초상화이다. 서양에서는 렘브란트, 고흐 등 걸출한 화가들의 자화상이 유명하다. 화가 자신이 인식하는 자아라는 차원에서 흥미 있는 장르이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록상으로 보면 이미 고려 시대에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매월당집』에서 김시습의 자화상이 확인된다. 18세기 우리나라 자화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윤두서 자화상」이다. 그 밖에 이광좌, 강세황의 자화상도 심미적 안목이 뛰어나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기타 초상화의 융성에 비하면 희소한 수량이다.
이문구는 해방 이후 『산 너머 남촌』·『매월당 김시습』·『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자 동시 시인이다. 1963년 『현대문학』에 「다갈라 불망비」가, 1966년 「백결」이 추천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 『관촌수필』 연작, 1981년 『우리 동네』 연작으로 농촌사회를 풍자적으로 다루었다. 199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다. 이문구는 민중의 삶을 그들의 말과 주체적인 양식으로 그려냈다. 농촌 현실을 전(傳)의 양식과 충청도 지역어를 풍부하게 활용한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문구 (李文求)
이문구는 해방 이후 『산 너머 남촌』·『매월당 김시습』·『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자 동시 시인이다. 1963년 『현대문학』에 「다갈라 불망비」가, 1966년 「백결」이 추천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 『관촌수필』 연작, 1981년 『우리 동네』 연작으로 농촌사회를 풍자적으로 다루었다. 199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다. 이문구는 민중의 삶을 그들의 말과 주체적인 양식으로 그려냈다. 농촌 현실을 전(傳)의 양식과 충청도 지역어를 풍부하게 활용한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는 조선 전기 문신·학자 설잠(雪岑)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조동오위』를 해석한 것이다. 1495년에 간행되었다. 중국 선종의 대가였던 양개(良介)의 학설을 독창적으로 해설한 선서(禪書)이다. 김시습은 「도륭오위군신도서요해(道隆五位君臣圖序要解)」, 「자순오위도서(子淳五位圖序)」, 「조동종지(曹洞宗旨)」,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등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오위(五位)의 설을 설명하였다.
조동오위요해 (曹洞五位要解)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는 조선 전기 문신·학자 설잠(雪岑)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조동오위』를 해석한 것이다. 1495년에 간행되었다. 중국 선종의 대가였던 양개(良介)의 학설을 독창적으로 해설한 선서(禪書)이다. 김시습은 「도륭오위군신도서요해(道隆五位君臣圖序要解)」, 「자순오위도서(子淳五位圖序)」, 「조동종지(曹洞宗旨)」,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등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오위(五位)의 설을 설명하였다.
신라의 학자 박제상이 저술한 것으로 전하는 『징심록』 중 일부를 1953년에 박금이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복원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징심록』의 15지(誌) 가운데 맨 처음에 실린 지(誌)의 이름으로, 파미르고원으로 추정되는 마고성의 황궁씨로부터 시작한 1만 1천여 년 전의 한민족 상고사를 기록하고 있다. 김시습이 저술한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 의해 원본 『징심록』과 그 속에 있던 『부도지』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현존하는 『부도지』는 1953년 울산에 있던 영해 박씨 55세손인 박금의 복원본을 말한다. 『환단고기』처럼 전수과정의 의문점이 남아 있다.
부도지 (符都志)
신라의 학자 박제상이 저술한 것으로 전하는 『징심록』 중 일부를 1953년에 박금이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복원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징심록』의 15지(誌) 가운데 맨 처음에 실린 지(誌)의 이름으로, 파미르고원으로 추정되는 마고성의 황궁씨로부터 시작한 1만 1천여 년 전의 한민족 상고사를 기록하고 있다. 김시습이 저술한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 의해 원본 『징심록』과 그 속에 있던 『부도지』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현존하는 『부도지』는 1953년 울산에 있던 영해 박씨 55세손인 박금의 복원본을 말한다. 『환단고기』처럼 전수과정의 의문점이 남아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사에 있는 조선시대 명부신앙을 보여주는 불교조각상.
부여 무량사 지장보살 및 시왕상 일괄 (扶餘 無量寺 地藏菩薩 및 十王像 一括)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사에 있는 조선시대 명부신앙을 보여주는 불교조각상.
조선 전기에, 죽림칠현을 자처하며 세속을 멀리하고 노장의 학문을 토론했던 청담파 중 한 사람으로, 『소총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홍유손 (洪𥙿孫)
조선 전기에, 죽림칠현을 자처하며 세속을 멀리하고 노장의 학문을 토론했던 청담파 중 한 사람으로, 『소총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