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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치안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된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하의 중앙치안 행정기관.
경찰청 (警察廳)
국내 치안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된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하의 중앙치안 행정기관.
전선사는 개항기에 조선에서 통리기무아문 소속으로 설치되어 인재의 등용과 각 관사로의 배치 등을 담당하던 관서이다. 1880년(고종 17)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의 부속 관서로, 담당하던 주요 임무는 인재 선발이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이후 일시적으로 해체되었다가 통리군국사무아문이 설치되면서 복설되었고,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인해 최종 해체되었다.
전선사 (典選司)
전선사는 개항기에 조선에서 통리기무아문 소속으로 설치되어 인재의 등용과 각 관사로의 배치 등을 담당하던 관서이다. 1880년(고종 17)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의 부속 관서로, 담당하던 주요 임무는 인재 선발이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이후 일시적으로 해체되었다가 통리군국사무아문이 설치되면서 복설되었고,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인해 최종 해체되었다.
박경원은 해방 이후 육군중장, 합동참모본부 본부장, 2군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이다. 1923년 전남 영광 출생으로 미국 포병학교,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박정희 대령 등과 함께 포병 사령관으로 발탁되었으며, 이후 합동참모본부 본부장, 2군사령관 등을 역임하였다. 군 예편 후 체신부 장관, 교통부 장관, 내무부 장관(총 3회) 등을 역임하였으며, 내무부 장관 시절 새마을운동을 확산시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마포·용산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박경원 (朴璟遠)
박경원은 해방 이후 육군중장, 합동참모본부 본부장, 2군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이다. 1923년 전남 영광 출생으로 미국 포병학교,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박정희 대령 등과 함께 포병 사령관으로 발탁되었으며, 이후 합동참모본부 본부장, 2군사령관 등을 역임하였다. 군 예편 후 체신부 장관, 교통부 장관, 내무부 장관(총 3회) 등을 역임하였으며, 내무부 장관 시절 새마을운동을 확산시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마포·용산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양찬우는 육군 준장, 육군 교육총본부 작전교육처 처장, 경상남도 도지사, 내무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26년 부산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과를 수료했다. 육군 제32·21사단장을 역임하였고, 5·16군사정변 후 경상남도 도지사,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공화당 소속으로 제7·8·9·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한국국민당과 신민주공화당의 부총재로 활동하였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이어 낙선해 자유민주연합 고문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했다. 청조근정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양찬우 (楊燦宇)
양찬우는 육군 준장, 육군 교육총본부 작전교육처 처장, 경상남도 도지사, 내무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26년 부산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과를 수료했다. 육군 제32·21사단장을 역임하였고, 5·16군사정변 후 경상남도 도지사,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공화당 소속으로 제7·8·9·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한국국민당과 신민주공화당의 부총재로 활동하였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이어 낙선해 자유민주연합 고문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했다. 청조근정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정석모는 내무부 치안국장, 충청남도 도지사, 국회의원, 내무부장관 등을 역임한 경찰·정치인이다. 1929년 출생하여 2009년 사망했다. 서울대학교 국방대학원을 수료했다. 1951년 경찰전문학교를 졸업 후, 1971년 제29대 내무부 치안국장(현 경찰청장)이 되었다. 제18대 강원도 도지사, 제15대 충청남도 도지사를 지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15대까지 6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5년 내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이듬해 8월까지 재직했다. 2009년 6월 8일 사망했다. 상훈으로는 4등 무공훈장, 황조근정훈장 등이 있다.
정석모 (鄭石謨)
정석모는 내무부 치안국장, 충청남도 도지사, 국회의원, 내무부장관 등을 역임한 경찰·정치인이다. 1929년 출생하여 2009년 사망했다. 서울대학교 국방대학원을 수료했다. 1951년 경찰전문학교를 졸업 후, 1971년 제29대 내무부 치안국장(현 경찰청장)이 되었다. 제18대 강원도 도지사, 제15대 충청남도 도지사를 지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15대까지 6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5년 내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이듬해 8월까지 재직했다. 2009년 6월 8일 사망했다. 상훈으로는 4등 무공훈장, 황조근정훈장 등이 있다.
국회의원, 내무부장관 서리, 공화당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황호현 (黃虎鉉)
국회의원, 내무부장관 서리, 공화당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해방 이후 내무부치안국장, 서울시장, 내무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김태선 (金泰善)
해방 이후 내무부치안국장, 서울시장, 내무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이순용은 일제강점기 미국 전략첩보국(OSS) 침투작전에 미 육군 하사로 선발된 독립운동가, 관료이다. 1897년 서울 출생으로 북경, 상해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후 이승만의 측근이 되었으며,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1942년 이승만의 추천으로 미 육군 하사가 된 후 미국 전략첩보국 요원으로 활동했다. 1951년 제6대 내무부 장관에 지명되었으나 국적문제가 논란이 되었고, 미국시민권을 포기했으나 내무부 장관 불신임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이후 체신부 장관, 대한해운공사 사장, 외자청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순용 (李淳鎔)
이순용은 일제강점기 미국 전략첩보국(OSS) 침투작전에 미 육군 하사로 선발된 독립운동가, 관료이다. 1897년 서울 출생으로 북경, 상해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후 이승만의 측근이 되었으며,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1942년 이승만의 추천으로 미 육군 하사가 된 후 미국 전략첩보국 요원으로 활동했다. 1951년 제6대 내무부 장관에 지명되었으나 국적문제가 논란이 되었고, 미국시민권을 포기했으나 내무부 장관 불신임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이후 체신부 장관, 대한해운공사 사장, 외자청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익흥은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5·16특사로 석방된 경찰·군인·정치인이다. 1905년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이다. 일본 큐슈제국대학교, 도쿄대학교 대학원 등을 다녔다. 일제 하에서 경찰서장을 지내다가 해방 후 경기도 경찰청장, 서울시 경찰국장,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60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평화통일정책자문회 상임위원 등으로 위촉되어 1990년대까지 활동하였다. 방위포장, 충무무공훈장, 청조소성훈장, 동엽 자유훈장 등을 받았다.
이익흥 (李益興)
이익흥은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5·16특사로 석방된 경찰·군인·정치인이다. 1905년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이다. 일본 큐슈제국대학교, 도쿄대학교 대학원 등을 다녔다. 일제 하에서 경찰서장을 지내다가 해방 후 경기도 경찰청장, 서울시 경찰국장,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60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평화통일정책자문회 상임위원 등으로 위촉되어 1990년대까지 활동하였다. 방위포장, 충무무공훈장, 청조소성훈장, 동엽 자유훈장 등을 받았다.
해방 이후 주일본대사, 내무부차관, 주호주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이동환 (李東煥)
해방 이후 주일본대사, 내무부차관, 주호주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해방 이후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관료.
김태호 (金泰鎬)
해방 이후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관료.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 차장 등을 역임하며 박정희 정부에서 핵심 세력으로 활동한 법조인·정치인.
김치열 (金致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 차장 등을 역임하며 박정희 정부에서 핵심 세력으로 활동한 법조인·정치인.
해무청은 1955년 2월 수산·조선·해운·항만 공사와 일반 항만 및 해양 경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행정기관이다. 상공부 수산국과 교통부 해운국 기능을 통합하여 1955년 2월 17일, 대통령령 제1010호로 설치되었고, 1961년 10월 2일 공포된 정부조직법[법률 제734호]에 따라 폐지되어 해안 경비 업무는 내무부 치안국, 수산 업무는 농림부 수산국, 해운 업무는 교통부 해운국으로 각각 분리 이관되었다.
해무청 (海務廳)
해무청은 1955년 2월 수산·조선·해운·항만 공사와 일반 항만 및 해양 경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행정기관이다. 상공부 수산국과 교통부 해운국 기능을 통합하여 1955년 2월 17일, 대통령령 제1010호로 설치되었고, 1961년 10월 2일 공포된 정부조직법[법률 제734호]에 따라 폐지되어 해안 경비 업무는 내무부 치안국, 수산 업무는 농림부 수산국, 해운 업무는 교통부 해운국으로 각각 분리 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