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개항기, 조선에서 통리기무아문 소속으로 설치되어 인재의 등용과 각 관사로의 배치 등을 담당하던 관서.
설치 목적
이 기구는 전선사와 더불어 사대사(事大司) · 교린사(交隣司) · 군무사(軍務司) · 변정사(邊政司) · 통상사(通商司) · 군물사(軍物司) · 기계사(機械司) · 선함사(船艦司) · 기연사(譏沿司) · 어학사(語學司) · 이용사(理用司) 등 총 12사(司)로 구성되었다. 그중 전선사는 군국기무와 외교 통상 문제를 총괄하는 부서로, 개화 · 자강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인재 선발을 담당하였다.
기능과 역할
고종은 인재 선발의 기준으로 ① 학행(學行)이 독실하고, ② 실무에 능하며, ③ 기예(技藝)에 정밀 · 민첩하고, ④ 현실 대처에 능숙하며, ⑤ 병기를 잘 만들고, ⑥ 산술(算術)에 능할 것 등의 여섯 항목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천거된 인재 가운데 현실 대처 능력, 병기 제작 및 산술 능력 등을 보유한 자가 통리기무아문에 등용되었는데, 전선사는 이러한 인재들을 아문 내의 각 사로 배치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변천 사항
이후 임오군란이 발발하여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하자 통리기무아문이 폐지되면서 전선사도 일시 철폐되었다. 그러나 군란이 진압된 후, 1882년 11월에 통리기무아문이 복설되면서 외교 관련 사무를 관할하는 통리아문(統理衙門)과 내정 관련 업무를 맡은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으로 분리되었는데, 전선사는 이 가운데 통리내무아문에 소속되어 부활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인 12월 통리아문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통리내무아문은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으로 개칭되었는데, 통리군국사무아문 휘하에는 전선사를 비롯하여 장내사(掌內司) · 이용사 · 군무사 · 감공사(監工司) · 농상사(農商司) 등의 6사가 있었다.
이후 통리군국사무아문이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에 의정부로 병합되면서 전선사도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하지만, 통리군국사무아문을 계승하여 설치된 내무부(內務府)의 소속 부서인 7사 중 직제사(職制司)의 관할 업무가 각 관직의 추천 및 상훈(賞勳) 등을 관할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전선사의 업무 영역 또한 직제사로 계승된 것으로 여겨진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종실록(高宗實錄)』
- 『동래부계록(東萊府啓錄)』(奎15105)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장정(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章程)』(奎15323)
단행본
- 송병기, 박용옥, 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1(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0)
- 송병기, 박용옥, 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2, 3, 4, 5, 6, 7(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1)
- 송병기, 박용옥, 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8, 9(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2)
논문
- 구선희, 「개항기 관제 개혁을 통해 본 권력 구조의 변화」(『한국사학보』 12, 고려사학회, 2002)
- 전미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 관한 연구」(『이대사원』 24·25, 이화여자대학교 사학회, 1989)
- 이광린, 「개항 이후 외세의 침투와 그 대응: 통리기무아문의 조직과 기능」(『이화사학연구』 17·18,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1988)
- 전해종, 「통리기무아문 설치의 경위에 대하여」(『역사학보』 17·18, 역사학회, 1962)
인터넷 자료
-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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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람의 지혜가 열려 새로운 사상, 문물, 제도 따위를 가지게 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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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후기에, 통리기무아문에 속하여 청나라에 대한 외교를 맡아보던 중앙 관아. 고종 18년(1881)에 설치하였다가 이듬해에 없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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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후기에, 통리기무아문에 속하여 일본과의 외교를 맡아보던 관청. 고종 18년에 설치하였다가 이듬해에 없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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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인재를 뽑아서 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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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기술’과 ‘예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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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일상생활에 실제로 응용할 수 있는, 수와 양의 간단한 성질 및 셈을 다루는 수학적 계산 방법.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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