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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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거노비는 고려·조선시대에 관청이나 주인의 거주지로부터 떨어져 지내며 주어진 신공을 부담한 노비이다. 이들 외거노비는 여러 가지 형태의 신역을 부담하였다. 고려시대 공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왕실이나 관청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였으며, 사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외방에서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였다. 조선의 공노비 중 외거노비는 입역노비·봉족노비·납공노비로 구분되며 60세까지 신역을 부담하였다. 사노비에 해당하는 외거노비는 원방노비·원처노비라고 불렀는데, 주인인 상전에게 신공을 납부하였다.
외거노비 (外居奴婢)
외거노비는 고려·조선시대에 관청이나 주인의 거주지로부터 떨어져 지내며 주어진 신공을 부담한 노비이다. 이들 외거노비는 여러 가지 형태의 신역을 부담하였다. 고려시대 공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왕실이나 관청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였으며, 사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외방에서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였다. 조선의 공노비 중 외거노비는 입역노비·봉족노비·납공노비로 구분되며 60세까지 신역을 부담하였다. 사노비에 해당하는 외거노비는 원방노비·원처노비라고 불렀는데, 주인인 상전에게 신공을 납부하였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和龍市) 용수향(龍水鄕) 용해촌(龍海村) 용두산(龍頭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 제3대 문왕의 넷째 딸 정효공주의 벽돌무덤. 전축분.
정효공주 묘 (貞孝公主 墓)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和龍市) 용수향(龍水鄕) 용해촌(龍海村) 용두산(龍頭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 제3대 문왕의 넷째 딸 정효공주의 벽돌무덤. 전축분.
조선시대 왕과 왕족의 명령 전달, 알현 안내, 문방구 관리 등을 관장하던 관서.
액정서 (掖庭署)
조선시대 왕과 왕족의 명령 전달, 알현 안내, 문방구 관리 등을 관장하던 관서.
정함은 고려 전기 내전숭반, 권지합문지후 등을 역임한 환관이다. 천예 출신으로 의종의 유모를 아내로 삼아 의종이 즉위한 후 내전숭반이 되었다. 의종의 측근 정습명을 비방해 제거하면서 김존중과 함께 정국을 주도하였다. 당시 개경 세력이 강성하여 왕권이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의종의 총애와 비호를 받는 총신이 되었다. 이후 문신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의종의 측근 세력으로 권지합문지후에 임명되어 대신들과 같은 반열에 섰다. 정함 등 환관의 발호와 내시·환관에 의지한 총신정치는 1170년에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정함 (鄭諴)
정함은 고려 전기 내전숭반, 권지합문지후 등을 역임한 환관이다. 천예 출신으로 의종의 유모를 아내로 삼아 의종이 즉위한 후 내전숭반이 되었다. 의종의 측근 정습명을 비방해 제거하면서 김존중과 함께 정국을 주도하였다. 당시 개경 세력이 강성하여 왕권이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의종의 총애와 비호를 받는 총신이 되었다. 이후 문신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의종의 측근 세력으로 권지합문지후에 임명되어 대신들과 같은 반열에 섰다. 정함 등 환관의 발호와 내시·환관에 의지한 총신정치는 1170년에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노비비총제(奴婢比摠制)는 내시 노비의 변동을 파악하기 위해 조정에서 추쇄관을 파견하던 방식을 중지하고, 특정 해의 노비 수를 기준으로 매년 같은 신공을 징수하던 제도이다. 추쇄관 파견은 지방관청에게도 큰 재정적 부담이었고,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실효성이 떨어졌다. 이에 추쇄가 점차 형식적인 절차로 변해 갔고, 마침내 중앙정부는 매년 일정한 노비 신공을 확보할 수 있는 비총제를 시행하였다.
노비비총제 (奴婢比摠制)
노비비총제(奴婢比摠制)는 내시 노비의 변동을 파악하기 위해 조정에서 추쇄관을 파견하던 방식을 중지하고, 특정 해의 노비 수를 기준으로 매년 같은 신공을 징수하던 제도이다. 추쇄관 파견은 지방관청에게도 큰 재정적 부담이었고,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실효성이 떨어졌다. 이에 추쇄가 점차 형식적인 절차로 변해 갔고, 마침내 중앙정부는 매년 일정한 노비 신공을 확보할 수 있는 비총제를 시행하였다.
조선 전기 궁궐의 경비와 왕의 신변보호를 맡아보던 시위군.
내시위 (內侍衛)
조선 전기 궁궐의 경비와 왕의 신변보호를 맡아보던 시위군.
집주는 고려시대에 승선(承宣) 외에 왕명을 출납하는 업무를 맡은 관원이다. 국왕에게 명을 받아 승선 또는 명을 받은 관료에게 전달하고, 재가를 받기 위해 승선을 거쳐 올라오는 백관의 장주(章奏)를 왕에게 상달하였다. 고려 전기에 내시가 집주로 임명되고, 무신집권기에는 집정이 집주가 되다가 충렬왕 때 사(辭)로 변모하였다.
집주 (執奏)
집주는 고려시대에 승선(承宣) 외에 왕명을 출납하는 업무를 맡은 관원이다. 국왕에게 명을 받아 승선 또는 명을 받은 관료에게 전달하고, 재가를 받기 위해 승선을 거쳐 올라오는 백관의 장주(章奏)를 왕에게 상달하였다. 고려 전기에 내시가 집주로 임명되고, 무신집권기에는 집정이 집주가 되다가 충렬왕 때 사(辭)로 변모하였다.
권설직(權設職)은 조선시대에, 중앙과 지방에 임시로 두었던 관직이다. 넓은 의미로는 국가의 행사나 토목, 내우외란, 외교사신 등 상설관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국가적으로 큰 일이 발생하였을 때 설치하는 모든 관직을 권설직이라 한다. 좁은 의미로는 왕실 인사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한 사부(師傅) 등 관직만을 법제적으로 규정한 권설직이라 한다.
권설직 (權設職)
권설직(權設職)은 조선시대에, 중앙과 지방에 임시로 두었던 관직이다. 넓은 의미로는 국가의 행사나 토목, 내우외란, 외교사신 등 상설관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국가적으로 큰 일이 발생하였을 때 설치하는 모든 관직을 권설직이라 한다. 좁은 의미로는 왕실 인사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한 사부(師傅) 등 관직만을 법제적으로 규정한 권설직이라 한다.
강석호는 조선 후기~대한제국기에 국왕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정치에 관여하였던 내시이다. 1875년 벼슬길에 오른 이후 갑오개혁 이후에 민영환과 함께 친미파로 활동하는 등 복잡다단하였던 이 시기 정치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대한제국을 장악하고 내시부가 해체되면서 그의 영향력도 사라졌다.
강석호 (姜錫鎬)
강석호는 조선 후기~대한제국기에 국왕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정치에 관여하였던 내시이다. 1875년 벼슬길에 오른 이후 갑오개혁 이후에 민영환과 함께 친미파로 활동하는 등 복잡다단하였던 이 시기 정치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대한제국을 장악하고 내시부가 해체되면서 그의 영향력도 사라졌다.
조선시대 내시의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내시부 (內侍府)
조선시대 내시의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공포는 조선시대, 16세에서 60세 사이 공노비가 입역(立役) · 선상(選上)하는 대신 신공(身貢)으로 바친 포목이다. 각사노비로서 지방에 거주하는 외방노비는 대체로 납공의 의무를 졌다. 신공으로 낸 포목은 사섬시에서 관할하였으나, 관서를 통폐합한 뒤에는 호조가 주관하였다. 포목의 액수는 시대마다 달랐으나 점차 삭감되어 18세기 후반에는 양인과 같은 1필로 수렴하였다.
공포 (貢布)
공포는 조선시대, 16세에서 60세 사이 공노비가 입역(立役) · 선상(選上)하는 대신 신공(身貢)으로 바친 포목이다. 각사노비로서 지방에 거주하는 외방노비는 대체로 납공의 의무를 졌다. 신공으로 낸 포목은 사섬시에서 관할하였으나, 관서를 통폐합한 뒤에는 호조가 주관하였다. 포목의 액수는 시대마다 달랐으나 점차 삭감되어 18세기 후반에는 양인과 같은 1필로 수렴하였다.
고려후기 수사공참지정사, 수태위중서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차약송 (車若松)
고려후기 수사공참지정사, 수태위중서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대차지는 조선후기에 왕실의 조달이나 제사를 담당한 각궁(各宮)에서 직제상 최상위에 있었던 직책이다. 대차지의 직책에는 내시, 즉 환관이 임명되었다. 대차지는 각궁 내부에 직제상 존재한 당상관이 아니었으며, 당상인 환관에 의해 각궁이 관할되고 있었을 뿐이다.
대차지 (大次知)
대차지는 조선후기에 왕실의 조달이나 제사를 담당한 각궁(各宮)에서 직제상 최상위에 있었던 직책이다. 대차지의 직책에는 내시, 즉 환관이 임명되었다. 대차지는 각궁 내부에 직제상 존재한 당상관이 아니었으며, 당상인 환관에 의해 각궁이 관할되고 있었을 뿐이다.
고려 후기에, 내시소경 등을 역임한 문신.
선인열 (宣仁烈)
고려 후기에, 내시소경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시대 왕을 측근에서 시봉하거나 호종하는 내시들이 소속된 관청.
내시원 (內侍院)
고려시대 왕을 측근에서 시봉하거나 호종하는 내시들이 소속된 관청.
고려 후기에, 상서예부시랑, 직보문각, 태자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수 (李需)
고려 후기에, 상서예부시랑, 직보문각, 태자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유광식 (柳光植)
고려 후기에,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신련은 고려 전기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한 문신이다.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금주판관 등의 지방관을 거친 후에 인종이 내시로 임명하였다. 이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하여, 진군하다가 적진에서 화살을 맞았다. 개선한 후에 삼사판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중국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이후 지방관으로 업적을 남기고 은퇴하였다.
김신련 (金臣璉)
김신련은 고려 전기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한 문신이다.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금주판관 등의 지방관을 거친 후에 인종이 내시로 임명하였다. 이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하여, 진군하다가 적진에서 화살을 맞았다. 개선한 후에 삼사판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중국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이후 지방관으로 업적을 남기고 은퇴하였다.
고려후기 내시낭장, 병부원외랑 등을 역임한 관리.
장보 (莊甫)
고려후기 내시낭장, 병부원외랑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 후기에, 경선점녹사, 내시, 감문위섭산원 등을 역임한 문신.
최광 (崔㫛)
고려 후기에, 경선점녹사, 내시, 감문위섭산원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