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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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 단령은 대한제국기, 개화사상가 유길준이 착용하였던 개량식 소례복 단령이다. 단령 1은 겉감은 검은색 명주, 안감은 푸른색 명주로 만든 겹단령이며, 단령 2는 검은색으로 물들인 모시로 만든 홑단령이다. 두루마기 형태에 단령 깃을 부착하고, 고름 대신 단추를 부착한 형태로 서양식 요소를 도입하여 단순하게 만들었다. 1909년에 유길준이 이 단령으로 보여지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전해진다.
유길준 단령 (兪吉濬 團領)
유길준 단령은 대한제국기, 개화사상가 유길준이 착용하였던 개량식 소례복 단령이다. 단령 1은 겉감은 검은색 명주, 안감은 푸른색 명주로 만든 겹단령이며, 단령 2는 검은색으로 물들인 모시로 만든 홑단령이다. 두루마기 형태에 단령 깃을 부착하고, 고름 대신 단추를 부착한 형태로 서양식 요소를 도입하여 단순하게 만들었다. 1909년에 유길준이 이 단령으로 보여지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전해진다.
흑단령은 조선시대 세종대 이후 문무 관원이 예복으로 착용한 아청색 또는 유록색 단령이다. 사모와 품대, 화자와 함께 착용하였다. 흑단령 제도는 1446년(세종 28) 대소 조의(朝儀)에 흑염조의(黑染朝衣)를 입도록 하자는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당상관 이상이 무늬 있는 아청색 비단의 흑단령을 입었으며 3품까지 흉배를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유록색으로 색상이 바뀌고 9품까지의 모든 관원이 흉배를 사용하였다. 19세기 말에는 북청색 계통의 반령착수(盤領窄袖)로 바뀌었고 흉배 유무에 따라 대례복과 소례복으로 구분하였다.
흑단령 (黑團領)
흑단령은 조선시대 세종대 이후 문무 관원이 예복으로 착용한 아청색 또는 유록색 단령이다. 사모와 품대, 화자와 함께 착용하였다. 흑단령 제도는 1446년(세종 28) 대소 조의(朝儀)에 흑염조의(黑染朝衣)를 입도록 하자는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당상관 이상이 무늬 있는 아청색 비단의 흑단령을 입었으며 3품까지 흉배를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유록색으로 색상이 바뀌고 9품까지의 모든 관원이 흉배를 사용하였다. 19세기 말에는 북청색 계통의 반령착수(盤領窄袖)로 바뀌었고 흉배 유무에 따라 대례복과 소례복으로 구분하였다.
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원의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후반의 복식류 53점이다. 198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좌의정을 지낸 김덕원(1634~1704)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에서 의복이 출토되었다. 출토 의복은 단령, 철릭, 창의, 중치막, 바지, 장옷, 저고리, 치마, 웃치마, 여자 속바지 등이다. 옷의 본래 색상은 없어지고 갈변된 상태이다. 이 출토 의복은 염습의와 염습 제구이다. 이는 조선 숙종 때 사대부가의 복식 형태 등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 (金德遠 墓 出土 衣服 一括)
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원의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후반의 복식류 53점이다. 198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좌의정을 지낸 김덕원(1634~1704)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에서 의복이 출토되었다. 출토 의복은 단령, 철릭, 창의, 중치막, 바지, 장옷, 저고리, 치마, 웃치마, 여자 속바지 등이다. 옷의 본래 색상은 없어지고 갈변된 상태이다. 이 출토 의복은 염습의와 염습 제구이다. 이는 조선 숙종 때 사대부가의 복식 형태 등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사영 김병기 일가 옷은 조선 후기의 세도가 김병기와 부인, 아들 김용규, 장손 김승진 등 한 일가의 복식과 부속품 26점이다. 조복(朝服)과 제복으로 각각 의 1점, 상(裳) 1점, 대대(大帶) 1점, 수(綬) 1점씩 있다. 흑사모와 백사모가 각 1점, 단령 2점, 동다리 2점, 전복 4점, 배자류 1점이 있다. 그밖에 원삼 1점, 호패와 술이 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조선 후기 복식 유행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세대를 이어가는 세도가의 경제력과 권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사영 김병기 일가 옷 (思潁 金炳冀 一家 옷)
사영 김병기 일가 옷은 조선 후기의 세도가 김병기와 부인, 아들 김용규, 장손 김승진 등 한 일가의 복식과 부속품 26점이다. 조복(朝服)과 제복으로 각각 의 1점, 상(裳) 1점, 대대(大帶) 1점, 수(綬) 1점씩 있다. 흑사모와 백사모가 각 1점, 단령 2점, 동다리 2점, 전복 4점, 배자류 1점이 있다. 그밖에 원삼 1점, 호패와 술이 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조선 후기 복식 유행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세대를 이어가는 세도가의 경제력과 권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대는 코뿔소나 물소의 서각 띠돈을 사용하여 만든 조선시대 1품용 대(帶)이다. 공복을 제외한 관복에 사용하였다. 본래 서대는 명나라 2품이 사용하는 띠이므로 조선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띠였으나, 1485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국속(國俗)의 1품용 서대를 국가의 제도로 수용하여 조선시대 말기까지 사용하였다. 바탕 띠인 정(鞓)에 삼태 3개, 남두육성 6개, 좌보·우필 각 1개, 타미 2개, 뒤쪽의 북두칠성 7개 등 20개를 사용하였다. 특히 중국 복주(福州)에서 생산되는 통천서(通天犀)를 좋은 서각으로 여겼다.
서대 (犀帶)
서대는 코뿔소나 물소의 서각 띠돈을 사용하여 만든 조선시대 1품용 대(帶)이다. 공복을 제외한 관복에 사용하였다. 본래 서대는 명나라 2품이 사용하는 띠이므로 조선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띠였으나, 1485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국속(國俗)의 1품용 서대를 국가의 제도로 수용하여 조선시대 말기까지 사용하였다. 바탕 띠인 정(鞓)에 삼태 3개, 남두육성 6개, 좌보·우필 각 1개, 타미 2개, 뒤쪽의 북두칠성 7개 등 20개를 사용하였다. 특히 중국 복주(福州)에서 생산되는 통천서(通天犀)를 좋은 서각으로 여겼다.
시복은 사모(紗帽)·단령(團領)·품대(品帶)·흑화(黑靴)로 구성된 조선시대 문무백관의 관복의 일종이다. 조선 성종 말기부터 광해군 대 초까지 아청색의 의례용 단령을 시복이라 칭하였으나 1610년(광해 2) “전시(殿試)를 행할 때 독권관(讀券官)과 대독관(對讀官)은 모두 상복(常服)을 입는다.”는 『오례의』 기록에 근거하여 흑단령을 상복으로 인식함에 따라 이후 시복으로 인식되었던 흑단령을 상복이라 칭하고 상복이었던 홍단령을 시복으로 부르게 되었다.
시복 (時服)
시복은 사모(紗帽)·단령(團領)·품대(品帶)·흑화(黑靴)로 구성된 조선시대 문무백관의 관복의 일종이다. 조선 성종 말기부터 광해군 대 초까지 아청색의 의례용 단령을 시복이라 칭하였으나 1610년(광해 2) “전시(殿試)를 행할 때 독권관(讀券官)과 대독관(對讀官)은 모두 상복(常服)을 입는다.”는 『오례의』 기록에 근거하여 흑단령을 상복으로 인식함에 따라 이후 시복으로 인식되었던 흑단령을 상복이라 칭하고 상복이었던 홍단령을 시복으로 부르게 되었다.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 유물은 1980년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전 박장군 묘에서 출토된 유물 33점이다. 묘주가 명확하지 않으나 유물의 종류나 형태를 통하여 17세기 전기의 묘라고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단령, 장옷, 도포, 저고리, 바지, 치마, 모자, 홑이불, 쌍상투 등이다. 지금과는 사폭의 구조가 다른 사폭바지, 다양한 깃 모양과 길이의 저고리류, 동자문만 있는 금선단 등이 특징적이다. 다른 묘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유물들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81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 유물 (淸原 傳 朴將軍 墓 出土 遺物)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 유물은 1980년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전 박장군 묘에서 출토된 유물 33점이다. 묘주가 명확하지 않으나 유물의 종류나 형태를 통하여 17세기 전기의 묘라고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단령, 장옷, 도포, 저고리, 바지, 치마, 모자, 홑이불, 쌍상투 등이다. 지금과는 사폭의 구조가 다른 사폭바지, 다양한 깃 모양과 길이의 저고리류, 동자문만 있는 금선단 등이 특징적이다. 다른 묘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유물들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81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흠조 부부묘 출토 유물은 조선 중종대의 문신인 김흠조(金欽祖, 1461~1528) 묘와 부인들의 묘에서 출토된 3종 134점의 일괄 유물이다. 1997년 3월 영주~평은간 국도 공사로 묘를 이장하던 중에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복식류 66점, 문서류 38점, 기타 유물 30점으로, 조선 전기 관복 제도의 전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002년 7월 18일에 중요 민속 자료 제24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가 민속 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재지정되어 영주 소수서원 유물관에 소장 중이다.
김흠조 부부묘 출토 유물 (金欽祖 夫婦墓 出土 遺物)
김흠조 부부묘 출토 유물은 조선 중종대의 문신인 김흠조(金欽祖, 1461~1528) 묘와 부인들의 묘에서 출토된 3종 134점의 일괄 유물이다. 1997년 3월 영주~평은간 국도 공사로 묘를 이장하던 중에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복식류 66점, 문서류 38점, 기타 유물 30점으로, 조선 전기 관복 제도의 전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002년 7월 18일에 중요 민속 자료 제24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가 민속 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재지정되어 영주 소수서원 유물관에 소장 중이다.
고운 묘 출토유물은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사림 고운 묘에서 출토된 복식과 기타 물품이다. 복식 유물은 단령, 직령, 철릭, 과두, 답호, 바지, 소모자, 버선 등이 출토되었다. 직령과 철릭 등 포에서는 임진왜란 이전 복식의 특징이 나타난다. 16세기 초 복식과 장례 풍속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운 묘 출토 유물 (高雲 墓 出土 遺物)
고운 묘 출토유물은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사림 고운 묘에서 출토된 복식과 기타 물품이다. 복식 유물은 단령, 직령, 철릭, 과두, 답호, 바지, 소모자, 버선 등이 출토되었다. 직령과 철릭 등 포에서는 임진왜란 이전 복식의 특징이 나타난다. 16세기 초 복식과 장례 풍속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변수 묘 출토유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변수 묘에서 출토된 의복과 부장품이다. 목우와 요선철릭, 철릭, 답호, 단령, 바지, 적삼 등의 복식유물 62건 72점이다. 특히 목우와 요선철릭은 관련 유물이 희귀한 귀중한 사례로 조선 전기 남자 복식의 특징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완성도가 높아 16세기 초의 복식, 상·장례 풍습 및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변수 묘 출토 유물 (邊脩 墓 出土 遺物)
변수 묘 출토유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변수 묘에서 출토된 의복과 부장품이다. 목우와 요선철릭, 철릭, 답호, 단령, 바지, 적삼 등의 복식유물 62건 72점이다. 특히 목우와 요선철릭은 관련 유물이 희귀한 귀중한 사례로 조선 전기 남자 복식의 특징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완성도가 높아 16세기 초의 복식, 상·장례 풍습 및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사모관대는 사모(紗帽), 단령(團領), 각대(角帶), 목화(木靴)로 구성된, 조선시대 벼슬아치의 관복(官服)이자 신랑의 혼례복이다. 사모관대란 사모와 관대(冠帶)를 합해 부르는 말인데, 원래는 벼슬아치의 관복 중 상복(常服)을 지칭한다. 혼인 때에는 자신의 신분보다 높은 신분의 옷을 입는 것이 가능하므로 신랑은 벼슬이 없어도 사모관대를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 상복으로 입는 단령의 가슴과 등에는 품급에 따라 흉배(胸背)를 달지만, 혼례복으로는 쌍학흉배(雙鶴胸背)를 단 청색 단령이 애용된 편이다.
사모관대 (紗帽冠帶)
사모관대는 사모(紗帽), 단령(團領), 각대(角帶), 목화(木靴)로 구성된, 조선시대 벼슬아치의 관복(官服)이자 신랑의 혼례복이다. 사모관대란 사모와 관대(冠帶)를 합해 부르는 말인데, 원래는 벼슬아치의 관복 중 상복(常服)을 지칭한다. 혼인 때에는 자신의 신분보다 높은 신분의 옷을 입는 것이 가능하므로 신랑은 벼슬이 없어도 사모관대를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 상복으로 입는 단령의 가슴과 등에는 품급에 따라 흉배(胸背)를 달지만, 혼례복으로는 쌍학흉배(雙鶴胸背)를 단 청색 단령이 애용된 편이다.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묘 출토복식은 16세기 중후반기를 살았던 구성이씨(駒城李氏)와 여흥이씨(驪興李氏)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등 유물 일괄이다. 2010년 경기도 오산시 가장지구 문화재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구성이씨의 묘에서는 41건 51점, 여흥이씨의 묘에서는 55건 73점이 수습되어 총 96건 12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6세기 중후반 양반 가문 여성의 다양한 복식과 상장속(喪葬俗)을 엿볼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2021년 6월 2일에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 (烏山 駒城李氏·驪興李氏 墓 出土服飾)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묘 출토복식은 16세기 중후반기를 살았던 구성이씨(駒城李氏)와 여흥이씨(驪興李氏)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등 유물 일괄이다. 2010년 경기도 오산시 가장지구 문화재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구성이씨의 묘에서는 41건 51점, 여흥이씨의 묘에서는 55건 73점이 수습되어 총 96건 12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6세기 중후반 양반 가문 여성의 다양한 복식과 상장속(喪葬俗)을 엿볼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2021년 6월 2일에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