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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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한식에 강원도 영월군에서 단종의 제향과 함께 개최하는 문화축제. 향토문화제.
단종문화제 (端宗文化祭)
4월 한식에 강원도 영월군에서 단종의 제향과 함께 개최하는 문화축제. 향토문화제.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있는 조선전기 제6대 단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터.
단종 태실지 (端宗 胎室址)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있는 조선전기 제6대 단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터.
조선 전기에, 공조참의, 이조참의, 황해도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강 (朴薑)
조선 전기에, 공조참의, 이조참의, 황해도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종서 장군 묘는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종서의 무덤이다. 김종서는 단종의 충신으로 계유정난 때 죽었다가 영조대에 복권되었다. 묘역에는 관리사, 신도비, 홍살문, 정려각이 있고 묘소에는 문인석, 동자석, 장명등, 망주석 등 석물과 묘비 3기가 있다. 묘역 입구에는 받침돌이 두꺼비인 신도비가 있는데 이는 현대에 제작되었으며 마을 풍수지리와 관련 있다. 정려각에는 아들 김승규의 정려가 함께 걸려 있다. 이 묘는 조선 후기 단종과 단종대 인물의 복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적이다.
김종서 장군 묘 (金宗瑞 將軍 墓)
김종서 장군 묘는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종서의 무덤이다. 김종서는 단종의 충신으로 계유정난 때 죽었다가 영조대에 복권되었다. 묘역에는 관리사, 신도비, 홍살문, 정려각이 있고 묘소에는 문인석, 동자석, 장명등, 망주석 등 석물과 묘비 3기가 있다. 묘역 입구에는 받침돌이 두꺼비인 신도비가 있는데 이는 현대에 제작되었으며 마을 풍수지리와 관련 있다. 정려각에는 아들 김승규의 정려가 함께 걸려 있다. 이 묘는 조선 후기 단종과 단종대 인물의 복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적이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전기 동헌으로 사용되었던 관청.
관풍헌 (觀風軒)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전기 동헌으로 사용되었던 관청.
조선 초기 왕실과 종친 등의 건축공사를 위하여 선공감(繕工監)에 설치하였던 임시 관서.
도청 (都廳)
조선 초기 왕실과 종친 등의 건축공사를 위하여 선공감(繕工監)에 설치하였던 임시 관서.
박심문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예조정랑, 평안도판관‚ 종사관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세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후대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가 실패하여 박팽년·성삼문 등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심문 (朴審問)
박심문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예조정랑, 평안도판관‚ 종사관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세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후대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가 실패하여 박팽년·성삼문 등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전기에, 우정언, 사헌부지평, 집현전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인년 (朴引年)
조선 전기에, 우정언, 사헌부지평, 집현전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 폐위된 단종의 왕위를 복위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서.
복위도감 (復位都監)
조선 후기 폐위된 단종의 왕위를 복위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서.
1698년·1739년 부묘도감에서 폐위된 왕이나 왕비를 추복위하여 신주를 종묘에 봉안한 의식과 절차 등을 기록한 의궤.
복위부묘도감의궤 (復位祔廟都監儀軌)
1698년·1739년 부묘도감에서 폐위된 왕이나 왕비를 추복위하여 신주를 종묘에 봉안한 의식과 절차 등을 기록한 의궤.
박팽년은 조선 세종~세조 대 집현전 부제학. 승정원 좌승지, 형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에 제수되면서 세종 대의 여러 사업에 참여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였고, 혹독한 고문으로 죽었다. 숙종 대 관작이 회복되고 증직 및 증시되었다.
박팽년 (朴彭年)
박팽년은 조선 세종~세조 대 집현전 부제학. 승정원 좌승지, 형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에 제수되면서 세종 대의 여러 사업에 참여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였고, 혹독한 고문으로 죽었다. 숙종 대 관작이 회복되고 증직 및 증시되었다.
남양주 사릉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여산송씨의 능이다. 단종과 함께 폐위된 정순왕후의 묘는 해주정씨 선산에 조성되었으며, 1698년 복위 뒤 왕릉의 모습으로 봉릉되었다. 사릉을 봉릉하면서 석물의 크기는 정종 후릉, 석물의 수량은 덕종 경릉을 따랐다. 사적 남양주 사릉(南楊州 思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양주 사릉 (南楊州 思陵)
남양주 사릉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여산송씨의 능이다. 단종과 함께 폐위된 정순왕후의 묘는 해주정씨 선산에 조성되었으며, 1698년 복위 뒤 왕릉의 모습으로 봉릉되었다. 사릉을 봉릉하면서 석물의 크기는 정종 후릉, 석물의 수량은 덕종 경릉을 따랐다. 사적 남양주 사릉(南楊州 思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세조 때 성삼문(成三問)이 지은 시조.
봉래산가 (蓬萊山歌)
조선 세조 때 성삼문(成三問)이 지은 시조.
조선 전기에, 사옹원별좌 등을 역임한 문신.
봉여해 (奉汝諧)
조선 전기에, 사옹원별좌 등을 역임한 문신.
「연화몽」은 1928년 회동서관에서 간행한 넓은 의미의 몽유록계 고전소설이다. 단종의 역사적 사건을 제재로 구성하였는데, 이는 당시 단종조의 역사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에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에 김시습이 단종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충절을 포상하는 내용은 이 소설의 주요 의미를 확인케 한다. 내용적으로는 「원생몽유록」과의 관련성도 고려할 만하다.
연화몽 (蓮花夢)
「연화몽」은 1928년 회동서관에서 간행한 넓은 의미의 몽유록계 고전소설이다. 단종의 역사적 사건을 제재로 구성하였는데, 이는 당시 단종조의 역사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에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에 김시습이 단종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충절을 포상하는 내용은 이 소설의 주요 의미를 확인케 한다. 내용적으로는 「원생몽유록」과의 관련성도 고려할 만하다.
조선 전기에,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왕방연 (王邦衍)
조선 전기에,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조선후기 김충주의 9세손 김처일이 건립한 누정. 정자.
고송정지 (枯松亭址)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조선후기 김충주의 9세손 김처일이 건립한 누정. 정자.
조선 전기에, 행돈녕부판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로 처형된 문신.
권완 (權完)
조선 전기에, 행돈녕부판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로 처형된 문신.
조선 전기에, 아버지 성희가 단종복위운동애 연루되어 국문을 받고 결국 세상을 떠나자, 진사에 합격했음에도 벼슬을 단념하고 은거한 학자·생육신.
성담수 (成聃壽)
조선 전기에, 아버지 성희가 단종복위운동애 연루되어 국문을 받고 결국 세상을 떠나자, 진사에 합격했음에도 벼슬을 단념하고 은거한 학자·생육신.
조선 전기에, 좌부승지, 우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권자신 (權自愼)
조선 전기에, 좌부승지, 우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