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각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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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해방 이후 에 창건된 대한불교법화종의 총본산인 사찰.
서울 무량사 (서울 無量寺)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해방 이후 에 창건된 대한불교법화종의 총본산인 사찰.
대한불교법화종(大韓佛敎法華宗)은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한 법화계 종단이다. 충청남도 보령 출신 비구니 혜일 정각이 무량사에서 창종한 종단이다. 대한불교정각회로 창립되어 대한불교법화종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대한불교법화종 유지재단으로 등록한 후 대한불교법화종이라는 이름의 불교 단체로 등록하였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이며, 본존(本尊)은 십계만다라(十界曼多羅)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종지는 『묘법연화경』의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을 본체로 일심삼관(一心三觀)과 교관겸수(敎觀兼修)를 익혀 중생을 교화하고 호국하는 것이다.
대한불교법화종 (大韓佛敎法華宗)
대한불교법화종(大韓佛敎法華宗)은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한 법화계 종단이다. 충청남도 보령 출신 비구니 혜일 정각이 무량사에서 창종한 종단이다. 대한불교정각회로 창립되어 대한불교법화종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대한불교법화종 유지재단으로 등록한 후 대한불교법화종이라는 이름의 불교 단체로 등록하였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이며, 본존(本尊)은 십계만다라(十界曼多羅)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종지는 『묘법연화경』의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을 본체로 일심삼관(一心三觀)과 교관겸수(敎觀兼修)를 익혀 중생을 교화하고 호국하는 것이다.
대한불교불입종(大韓佛敎佛入宗)은 법화계 불교 종단이다. 대각국사 의천을 종조로, 태허 홍선을 개산조로 삼고 있다. 일승실교사상(一乘實敎思想)과 일승원교사상(一乘圓敎思想)을 받들고, 보살의 제세원력(濟世願力)으로 전법도생(傳法度生) 견성(見性) 성불(成佛)함을 종지(宗旨)로 한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법화경)』과 『대방광불화엄경(화엄경)』이며 기타의 경전을 연구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는다. 현재는 대한불교관음종으로 개칭하였으며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원 종단이다.
대한불교불입종 (大韓佛敎佛入宗)
대한불교불입종(大韓佛敎佛入宗)은 법화계 불교 종단이다. 대각국사 의천을 종조로, 태허 홍선을 개산조로 삼고 있다. 일승실교사상(一乘實敎思想)과 일승원교사상(一乘圓敎思想)을 받들고, 보살의 제세원력(濟世願力)으로 전법도생(傳法度生) 견성(見性) 성불(成佛)함을 종지(宗旨)로 한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법화경)』과 『대방광불화엄경(화엄경)』이며 기타의 경전을 연구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는다. 현재는 대한불교관음종으로 개칭하였으며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원 종단이다.
숙종은 고려 전기 제15대(재위: 1095~1105) 왕이다. 친조카인 헌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1년 만에 왕위를 찬탈하여 즉위했다. 1097년(숙종 2) 주화를 만들어 통용시켰고, 1101년 은병을 만들었으며, 1102년 해동통보 1만 5천 관을 만들어 문·무 양반과 군인들에게 분배했다. 양주에 남경을 두어 궁궐을 지었으며, 서경에 기자사당을 만들었다. 여진정벌을 단행하였지만 실패하고, 별무반을 처음 설치하였다. 1105년 서경에 순행하여 동명왕묘에 제사하고, 병이 들어 개경으로 돌아오다가 수레 안에서 사망했다.
숙종 (肅宗)
숙종은 고려 전기 제15대(재위: 1095~1105) 왕이다. 친조카인 헌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1년 만에 왕위를 찬탈하여 즉위했다. 1097년(숙종 2) 주화를 만들어 통용시켰고, 1101년 은병을 만들었으며, 1102년 해동통보 1만 5천 관을 만들어 문·무 양반과 군인들에게 분배했다. 양주에 남경을 두어 궁궐을 지었으며, 서경에 기자사당을 만들었다. 여진정벌을 단행하였지만 실패하고, 별무반을 처음 설치하였다. 1105년 서경에 순행하여 동명왕묘에 제사하고, 병이 들어 개경으로 돌아오다가 수레 안에서 사망했다.
승가사는 통일신라 시대 수태가 승가대사상을 조성하며 창건한 서울 종로구 북한산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에는 재해의 극복을 위해 국왕들이 행차하여 법회를 열었고,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약사신앙으로 유명했다. 세종 대 선교양종의 선종 18사의 하나였으며 조선 말에도 왕실의 기도처로서 지원을 받았다.
승가사 (僧伽寺)
승가사는 통일신라 시대 수태가 승가대사상을 조성하며 창건한 서울 종로구 북한산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에는 재해의 극복을 위해 국왕들이 행차하여 법회를 열었고,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약사신앙으로 유명했다. 세종 대 선교양종의 선종 18사의 하나였으며 조선 말에도 왕실의 기도처로서 지원을 받았다.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영파산(影波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제27대 위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
영파산 영랑사 (影波山 影浪寺)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영파산(影波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제27대 위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
고려 전기에, 검교사도 수사공 판형부사, 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이오 (李䫨)
고려 전기에, 검교사도 수사공 판형부사, 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은병은 고려 전기 숙종 대에 표인(標印)하여 유통한 법정 은화이다. 숙종이 1097년(숙종 2)에 주전관을 설치하며 동전의 주조와 유통을 시작하였고, 1101년(숙종 6)에는 기존에 칭량 화폐의 역할을 하던 은(銀)을 제도권으로 편입하여 은병에 표인하여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후 원 간섭기 원의 지폐 보초(寶鈔)가 유입되며 은이 대량 유출되자 1331년(충혜왕 1)에는 은병의 유통을 금지하고 새로이 소은병을 제작하여 유통하는 제도 변화를 시도하였다. 고려시대 주조된 금속 화폐 중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유통되었으며 고액권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은병 (銀甁)
은병은 고려 전기 숙종 대에 표인(標印)하여 유통한 법정 은화이다. 숙종이 1097년(숙종 2)에 주전관을 설치하며 동전의 주조와 유통을 시작하였고, 1101년(숙종 6)에는 기존에 칭량 화폐의 역할을 하던 은(銀)을 제도권으로 편입하여 은병에 표인하여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후 원 간섭기 원의 지폐 보초(寶鈔)가 유입되며 은이 대량 유출되자 1331년(충혜왕 1)에는 은병의 유통을 금지하고 새로이 소은병을 제작하여 유통하는 제도 변화를 시도하였다. 고려시대 주조된 금속 화폐 중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유통되었으며 고액권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정천면 구봉산(九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
구봉산 천황사 (九峰山 天皇寺)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정천면 구봉산(九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
학일(學一)은 고려 전기 왕사(王師)를 지낸 선종 가지산문의 승려이다. 천태종 개창으로 인해 타격을 받은 선종계가 종세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입적한 뒤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로 추증되었다. 대각국사 의천, 숙종, 예종, 인종 등의 공경을 받았다.
학일 (學一)
학일(學一)은 고려 전기 왕사(王師)를 지낸 선종 가지산문의 승려이다. 천태종 개창으로 인해 타격을 받은 선종계가 종세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입적한 뒤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로 추증되었다. 대각국사 의천, 숙종, 예종, 인종 등의 공경을 받았다.
선암사 소장 가사 · 탁의는 전라남도 순천시 선암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가사 2점과 탁의 1점이다. 가사는 불교 승려의 법복인데, 삼보명자수가사는 25조 대가사, 쌍룡문직은가사는 9조 가사이다. 자수 등 제작 기법으로 보아 18세기 유물로 추정된다. 탁의는 사찰 안의 법상을 덮던 천이며, 자수 양식으로 보아 명나라와 교류의 일면을 보여준다.
선암사 소장 가사·탁의 (仙巖寺 所藏 袈裟·卓衣)
선암사 소장 가사 · 탁의는 전라남도 순천시 선암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가사 2점과 탁의 1점이다. 가사는 불교 승려의 법복인데, 삼보명자수가사는 25조 대가사, 쌍룡문직은가사는 9조 가사이다. 자수 등 제작 기법으로 보아 18세기 유물로 추정된다. 탁의는 사찰 안의 법상을 덮던 천이며, 자수 양식으로 보아 명나라와 교류의 일면을 보여준다.
『법화경강목(法華經綱目)』은 법화경의 대강을 조목조목 나누어 서술했던 책으로 보인다. 이 책은 현재 전하지 않고, 대각국사 의천이 쓴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의적은 『삼국유사』에 의상 십대덕의 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사상적 계열로 화엄가라기보다 법상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승려이다. 고대 일본 법상가의 문헌에서 의적의 저술이 인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를 현장(玄奘)의 제자로, 중국 유학승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의적은 유식사상뿐만 아니라 법화사상에도 정통하여 다양한 법화관계 저술을 남겼다.
법화경강목 (法華經綱目)
『법화경강목(法華經綱目)』은 법화경의 대강을 조목조목 나누어 서술했던 책으로 보인다. 이 책은 현재 전하지 않고, 대각국사 의천이 쓴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의적은 『삼국유사』에 의상 십대덕의 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사상적 계열로 화엄가라기보다 법상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승려이다. 고대 일본 법상가의 문헌에서 의적의 저술이 인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를 현장(玄奘)의 제자로, 중국 유학승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의적은 유식사상뿐만 아니라 법화사상에도 정통하여 다양한 법화관계 저술을 남겼다.
사천(泗川) 백천사(白泉寺) 『대방광원각약소주경(大方廣圓覺略疏註經)』은 고려 후기인 13~14세기에 『원각약소주경』 번각본을 인출한 목판본 불교 경전이다. 권상(卷上) 1책으로 당나라 종밀의 『대방광원각약소주경』을 고려의 의천이 교장(敎藏)에 찬집한 것을 번각한 것이다. 판식은 전형적인 송판본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판식과 판심 등이 아단문고 소장본(보물)과 동일판본으로 보인다. 서문과 본문에 고려시대의 각필(角筆)과 음독 구결 및 조선시대의 한글 구결도 함께 나타나고 있어서 국어학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사천 백천사 대방광원각약소주경 (泗川 白泉寺 大方廣圓覺略疏註經)
사천(泗川) 백천사(白泉寺) 『대방광원각약소주경(大方廣圓覺略疏註經)』은 고려 후기인 13~14세기에 『원각약소주경』 번각본을 인출한 목판본 불교 경전이다. 권상(卷上) 1책으로 당나라 종밀의 『대방광원각약소주경』을 고려의 의천이 교장(敎藏)에 찬집한 것을 번각한 것이다. 판식은 전형적인 송판본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판식과 판심 등이 아단문고 소장본(보물)과 동일판본으로 보인다. 서문과 본문에 고려시대의 각필(角筆)과 음독 구결 및 조선시대의 한글 구결도 함께 나타나고 있어서 국어학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