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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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은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의 도성 유적으로, 네모반듯한 모양의 평지에 둘러쌓은 성으로 비정된다. 전체 둘레는 약 2.7km이다. 현전하는 석축 성벽은 4세기에 쌓아져 만들어졌는데, 3세기 중반 이후부터 도성 경관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으로 천도하는 427년까지 고구려의 도성 역할을 하였다.
국내성 (國內城)
국내성은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의 도성 유적으로, 네모반듯한 모양의 평지에 둘러쌓은 성으로 비정된다. 전체 둘레는 약 2.7km이다. 현전하는 석축 성벽은 4세기에 쌓아져 만들어졌는데, 3세기 중반 이후부터 도성 경관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으로 천도하는 427년까지 고구려의 도성 역할을 하였다.
시전은 조선시대, 옛날 전통 사회의 성읍(城邑)이나 도시에 있던 상설 점포이다. 유교 국가 도성의 필수 구성 요소로서 도성민의 생계유지, 궁궐과 관청에서 필요한 관수 물자의 조달, 대외 무역 참여 등의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삼국시대부터 각 도읍이나 주요 도시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은 건국 초부터 나라에서 시전 건설 사업을 추진하였고 조선 후기의 변화를 거쳐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도 존속하였다. 시전은 동업 조합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구성원들의 이권을 보호하는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시전 (市廛)
시전은 조선시대, 옛날 전통 사회의 성읍(城邑)이나 도시에 있던 상설 점포이다. 유교 국가 도성의 필수 구성 요소로서 도성민의 생계유지, 궁궐과 관청에서 필요한 관수 물자의 조달, 대외 무역 참여 등의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삼국시대부터 각 도읍이나 주요 도시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은 건국 초부터 나라에서 시전 건설 사업을 추진하였고 조선 후기의 변화를 거쳐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도 존속하였다. 시전은 동업 조합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구성원들의 이권을 보호하는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토성.
서울 몽촌토성 (서울 夢村土城)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토성.
도성은 왕이 거주하는 왕성과 백성들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도록 쌓은 성곽이다. 국도 또는 왕도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읍(邑)이라 하였으며, 읍이 국(國)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통합 권력의 상징인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는 읍을 도(都)라 하였다. 따라서 도성은 백성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는 외곽 성이 없더라도 왕이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하였으므로 왕도라 부르기도 한다.
도성 (都城)
도성은 왕이 거주하는 왕성과 백성들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도록 쌓은 성곽이다. 국도 또는 왕도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읍(邑)이라 하였으며, 읍이 국(國)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통합 권력의 상징인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는 읍을 도(都)라 하였다. 따라서 도성은 백성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는 외곽 성이 없더라도 왕이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하였으므로 왕도라 부르기도 한다.
광평성은 고려 초기 백관을 총괄하며 정치를 평의했던 관부이다. 호족 세력을 대변하는 기구라는 견해도 있으나 국왕 휘하의 정부기구로 보고 있다. 광평성은 태조 대에는 최고 관부였으나 광종 대에 내의성이 서열 1위가 되면서 밀려났고, 성종 대에 내의성, 내사령과 함께 내사문하성으로 개편되었다.
광평성 (廣評省)
광평성은 고려 초기 백관을 총괄하며 정치를 평의했던 관부이다. 호족 세력을 대변하는 기구라는 견해도 있으나 국왕 휘하의 정부기구로 보고 있다. 광평성은 태조 대에는 최고 관부였으나 광종 대에 내의성이 서열 1위가 되면서 밀려났고, 성종 대에 내의성, 내사령과 함께 내사문하성으로 개편되었다.
1751년 영조가 도성수비에 대하여 내린 교서. 윤음.
수성윤음 (守城綸音)
1751년 영조가 도성수비에 대하여 내린 교서. 윤음.
안학궁은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 유적이다. 대성산 남쪽에 자리하는 전체 둘레 약 2.5㎞의 마름모꼴 평지성이다. 일반 거주구역 등을 포함하지 않은 왕궁 유적으로,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6세기 이전설, 6세기 초반설, 6세기 후반설, 고구려 후기설, 고려시대설 등의 이견이 있다.
안학궁 (安鶴宮)
안학궁은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 유적이다. 대성산 남쪽에 자리하는 전체 둘레 약 2.5㎞의 마름모꼴 평지성이다. 일반 거주구역 등을 포함하지 않은 왕궁 유적으로,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6세기 이전설, 6세기 초반설, 6세기 후반설, 고구려 후기설, 고려시대설 등의 이견이 있다.
환도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이다. 유적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있다. 지안시 북쪽의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서는 198년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 파괴와 개축을 거쳐 342년까지 도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다만 고고학적으로는 5세기 중반 이전에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환도성 (丸都城)
환도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이다. 유적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있다. 지안시 북쪽의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서는 198년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 파괴와 개축을 거쳐 342년까지 도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다만 고고학적으로는 5세기 중반 이전에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상서성은 고려시대에 문서 전달과 국가 행정을 담당하였던 상서도성(尙書都省)과 상서육부(尙書六部)로 구성된 관부이다. 성종 대에 당의 3성 6부제를 수용하면서 설치 · 운영되었다. 고려 후기에 상서도성은 폐지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상서육부의 국가 행정은 다양한 형태로 유지 · 운영되었다. 3성의 하나였으나 중서문하성에 비해 위상이 낮았다. 국왕이 상서육부의 행정을 직접 관할하였으며 동시에 중서문하성의 재상이 6부판사를 일부 겸직하여 행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상서성 (尙書省)
상서성은 고려시대에 문서 전달과 국가 행정을 담당하였던 상서도성(尙書都省)과 상서육부(尙書六部)로 구성된 관부이다. 성종 대에 당의 3성 6부제를 수용하면서 설치 · 운영되었다. 고려 후기에 상서도성은 폐지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상서육부의 국가 행정은 다양한 형태로 유지 · 운영되었다. 3성의 하나였으나 중서문하성에 비해 위상이 낮았다. 국왕이 상서육부의 행정을 직접 관할하였으며 동시에 중서문하성의 재상이 6부판사를 일부 겸직하여 행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졸본(卒本)은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에 있던 고구려의 첫 번째 도성이다. 오녀산성과 하고성자토성 등 고구려시대의 성 유적과 함께 고력묘자촌 고분군, 상고성자 고분군, 망강루 고분군 등 고구려 초기의 돌무지무덤 고분군이 밀집해 있다.
졸본 (卒本)
졸본(卒本)은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에 있던 고구려의 첫 번째 도성이다. 오녀산성과 하고성자토성 등 고구려시대의 성 유적과 함께 고력묘자촌 고분군, 상고성자 고분군, 망강루 고분군 등 고구려 초기의 돌무지무덤 고분군이 밀집해 있다.
고려시대의 중앙관제인 이부(吏部)·병부(兵部)·호부(戶部)·형부(刑部)·예부(禮部)·공부(工部)의 합칭.
육부 (六部)
고려시대의 중앙관제인 이부(吏部)·병부(兵部)·호부(戶部)·형부(刑部)·예부(禮部)·공부(工部)의 합칭.
북한산성은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에 있는 북한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둘레 12.7km에 달하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의 중흥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 신라의 북한산성이었던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성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조선시대의 북한산성은 한양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1711년(숙종 37)에 축성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산성에는 성문 14개소, 장대 3개소, 행궁·성랑 143개소, 창고 8개소, 사찰 21개소, 누각 3개소, 교량 7개소, 못 26개소, 우물 99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산성 (北漢山城)
북한산성은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에 있는 북한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둘레 12.7km에 달하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의 중흥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 신라의 북한산성이었던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성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조선시대의 북한산성은 한양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1711년(숙종 37)에 축성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산성에는 성문 14개소, 장대 3개소, 행궁·성랑 143개소, 창고 8개소, 사찰 21개소, 누각 3개소, 교량 7개소, 못 26개소, 우물 99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琵瑟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성이 창건한 사찰.
비슬산 유가사 (琵瑟山 瑜伽寺)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琵瑟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성이 창건한 사찰.
삼성(三省)은 고려시대 중서성(中書省)·문하성(門下省)·상서성(尙書省)으로 구성된 최고 정치 기구이다. 당의 삼성 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국왕을 보좌했던 정치기구였다. 중서성과 문하성을 합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으로 운영하였고, 상서성은 중서문하성보다 위상이 낮았다. 국정의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하고, 간쟁(諫諍)과 봉박(封駁), 서경(署經)을 담당했으며,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삼성 (三省)
삼성(三省)은 고려시대 중서성(中書省)·문하성(門下省)·상서성(尙書省)으로 구성된 최고 정치 기구이다. 당의 삼성 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국왕을 보좌했던 정치기구였다. 중서성과 문하성을 합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으로 운영하였고, 상서성은 중서문하성보다 위상이 낮았다. 국정의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하고, 간쟁(諫諍)과 봉박(封駁), 서경(署經)을 담당했으며,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전기 석축 성곽. 도성.
개성 성곽 (開城 城廓)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전기 석축 성곽. 도성.
내봉성은 904년(효공왕 8)에 궁예가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정할 때 설치한 중앙의 관부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에는 전체 19개 가운데 서열상 9번째 관부로 설치되었지만, 태봉 시기를 거쳐 고려 초에는 기능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래서 내봉성의 장관인 내봉령이 광평시중 바로 다음에 등장할 정도로 서열이 높아졌다.
내봉성 (內奉省)
내봉성은 904년(효공왕 8)에 궁예가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정할 때 설치한 중앙의 관부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에는 전체 19개 가운데 서열상 9번째 관부로 설치되었지만, 태봉 시기를 거쳐 고려 초에는 기능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래서 내봉성의 장관인 내봉령이 광평시중 바로 다음에 등장할 정도로 서열이 높아졌다.
부여 부소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북쪽에 위치한 부소산에 조성된 산성이다. 부소산에는 백제~조선시대까지 4개의 성벽이 확인된다. 백제 산성인 포곡식 성은 백제 사비기의 왕성, 배후 산성, 후원 등으로 여겨지며, 부여 나성과 함께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면서 가장 먼저 계획된 도성 시설물로 천도 이전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충청남도 시도 유형 문화유산이다.
부여 부소산성 (扶餘 扶蘇山城)
부여 부소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북쪽에 위치한 부소산에 조성된 산성이다. 부소산에는 백제~조선시대까지 4개의 성벽이 확인된다. 백제 산성인 포곡식 성은 백제 사비기의 왕성, 배후 산성, 후원 등으로 여겨지며, 부여 나성과 함께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면서 가장 먼저 계획된 도성 시설물로 천도 이전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충청남도 시도 유형 문화유산이다.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전기 서울 성곽의 4소문 가운데 동남쪽 문(門). 문루.
광희문 (光熙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전기 서울 성곽의 4소문 가운데 동남쪽 문(門). 문루.
공부는 고려시대 산림과 연못, 공장(工匠)과 영조(營造)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이다. 고려의 가장 중요한 행정기구인 상서6부의 하나로, 산림과 연못의 관리, 기술자인 공장(工匠)의 관할, 궁궐 · 관청 · 사찰 등의 건축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6부의 업무 가운데 중요성이 작아 재신(宰臣)이 공부의 판사에 임명되지 않는 경우나 관부 자체가 폐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공부 (工部)
공부는 고려시대 산림과 연못, 공장(工匠)과 영조(營造)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이다. 고려의 가장 중요한 행정기구인 상서6부의 하나로, 산림과 연못의 관리, 기술자인 공장(工匠)의 관할, 궁궐 · 관청 · 사찰 등의 건축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6부의 업무 가운데 중요성이 작아 재신(宰臣)이 공부의 판사에 임명되지 않는 경우나 관부 자체가 폐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시대 수도였던 한양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성곽이다. 백악산과 인왕산, 목멱산, 남산을 연결하여 쌓은 평산성이며, 둘레는 18,127m에 달한다. 1396년(조선 태조 5) 축성을 시작하여 2년 뒤인 1398년에 완공하였다. 1422년(세종 4)에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영조 대를 거쳐 숙종 대에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성벽에는 숙청문과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등 사대문과 혜화문, 광희문, 창의문, 소덕문 등 사소문 등 8개의 성문이 있었다.
서울 한양도성 (서울 漢陽都城)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시대 수도였던 한양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성곽이다. 백악산과 인왕산, 목멱산, 남산을 연결하여 쌓은 평산성이며, 둘레는 18,127m에 달한다. 1396년(조선 태조 5) 축성을 시작하여 2년 뒤인 1398년에 완공하였다. 1422년(세종 4)에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영조 대를 거쳐 숙종 대에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성벽에는 숙청문과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등 사대문과 혜화문, 광희문, 창의문, 소덕문 등 사소문 등 8개의 성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