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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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은 일제강점기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했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1916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 소식을 전한 후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검거되어 투옥 중에도 옥중만세운동을 벌였고,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유관순 (柳寬順)
유관순은 일제강점기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했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1916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 소식을 전한 후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검거되어 투옥 중에도 옥중만세운동을 벌였고,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간도는 17세기,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동남부와 압록강·두만강 너머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 간 분쟁하던 지역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만주에 사는 조선인이 미간지를 개발하고 정착하면서 분쟁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변두리였던 만주가 제국주의 침략을 받으면서 간도 문제는 국제 문제와 연동되었다. 1907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으로 인해 간도는 중국으로 귀속되었다. 한일합방 후 민족운동가들은 1870년대부터 형성된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시도하였고 이를 탄압하는 일제의 침략이 지속되었다.
간도 (間島)
간도는 17세기,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동남부와 압록강·두만강 너머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 간 분쟁하던 지역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만주에 사는 조선인이 미간지를 개발하고 정착하면서 분쟁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변두리였던 만주가 제국주의 침략을 받으면서 간도 문제는 국제 문제와 연동되었다. 1907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으로 인해 간도는 중국으로 귀속되었다. 한일합방 후 민족운동가들은 1870년대부터 형성된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시도하였고 이를 탄압하는 일제의 침략이 지속되었다.
재외동포는 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크게 재외국민(在外國民)과 한국계 외국인(韓國系 外國人)으로 나뉘며, 미국, 중국, 일본에 거주하는 재미 교포, 재중 동포, 재일 교포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밖에 세계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식민지 시기까지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 3성지역,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196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재외동포 (在外同胞)
재외동포는 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크게 재외국민(在外國民)과 한국계 외국인(韓國系 外國人)으로 나뉘며, 미국, 중국, 일본에 거주하는 재미 교포, 재중 동포, 재일 교포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밖에 세계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식민지 시기까지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 3성지역,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196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김도연은 일제강점기 2·8독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4년 경기도 양천군 출생으로 1919년 게이오 대학 이재학부를 수료했다. 유학 시절 2·8독립운동을 주도하다 9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미국 유학 후 193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6년 이후 다수의 의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1991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김도연 (金度演)
김도연은 일제강점기 2·8독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4년 경기도 양천군 출생으로 1919년 게이오 대학 이재학부를 수료했다. 유학 시절 2·8독립운동을 주도하다 9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미국 유학 후 193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6년 이후 다수의 의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1991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세기와 더불어 (世紀와 더불어)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920년대부터 유럽에서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해외독립운동.
유럽지역의 독립운동 (Europe地域의 獨立運動)
1920년대부터 유럽에서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해외독립운동.
김구의 삶과 사상을 알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설립한 기념관.
백범김구기념관 (白凡金九紀念館)
김구의 삶과 사상을 알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설립한 기념관.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특파대장으로 활동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명서 (李明瑞)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특파대장으로 활동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영식은 일제강점기 대구지역 교회가 중심이 된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특수 교육자이다. 1894년(고종 31)에 출생하여 1981년 사망하였다. 1919년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구와 서울에서 3·1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뤘다. 1927년 일본에서 고베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대구애락원 나환자교회에서 7년간 나환자들과 생활하였다. 1946년에는 대구맹아학원을 설립하였다. 1967년에 정신지체아를 위한 대구보명학교와 지체장애아를 위한 대구보건학교를 설립하였다. 1981년 괌에서 무명 동포 위령사업을 추진하던 중 87세로 생을 마쳤다.
이영식 (李永植)
이영식은 일제강점기 대구지역 교회가 중심이 된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특수 교육자이다. 1894년(고종 31)에 출생하여 1981년 사망하였다. 1919년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구와 서울에서 3·1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뤘다. 1927년 일본에서 고베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대구애락원 나환자교회에서 7년간 나환자들과 생활하였다. 1946년에는 대구맹아학원을 설립하였다. 1967년에 정신지체아를 위한 대구보명학교와 지체장애아를 위한 대구보건학교를 설립하였다. 1981년 괌에서 무명 동포 위령사업을 추진하던 중 87세로 생을 마쳤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항일 독립운동 기념관이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의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사·연구·보존·전시하고, 그 정신을 교육·계승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 전시와 연수 교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념관으로 연 2회 이상의 기획전시와 삼일절·현충일·광복절 선양 행사, 그리고 교육 연수를 통해 독립운동사의 가치와 교훈을 알리는 일을 추진하였다. 1894년 갑오의병에서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지역인들이 전개한 항일투쟁을 기리고, 교육하는 곳이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慶尙北道獨立運動記念館)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항일 독립운동 기념관이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의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사·연구·보존·전시하고, 그 정신을 교육·계승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 전시와 연수 교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념관으로 연 2회 이상의 기획전시와 삼일절·현충일·광복절 선양 행사, 그리고 교육 연수를 통해 독립운동사의 가치와 교훈을 알리는 일을 추진하였다. 1894년 갑오의병에서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지역인들이 전개한 항일투쟁을 기리고, 교육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파리를 거점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외교활동을 펼쳤던 대한민국 파리주재 임시정부(1919~1920).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파리대표부 (大韓民國臨時政府 駐Paris代表部)
일제강점기 파리를 거점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외교활동을 펼쳤던 대한민국 파리주재 임시정부(1919~1920).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예산에서 형 윤봉길이 조직한 각곡독서회와 월진회에 가입하여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윤남의 (尹南儀)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예산에서 형 윤봉길이 조직한 각곡독서회와 월진회에 가입하여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신채호선생의 생가터.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丹齋 申采浩 先生 生家址)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신채호선생의 생가터.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구춘선 (具春先)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메리다 지방회 (Merida 地方會)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상해 한인교회에 부임하였고,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목사 · 독립운동가.
조상섭 (趙尙燮)
일제강점기 상해 한인교회에 부임하였고,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목사 · 독립운동가.
메리다한인학교는 멕시코 한인들이 메리다에 설립한 학교이다. 1909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되고 1910년 사관학교인 숭무학교를 세웠다. 그뒤 메리다지방회는 사낙타 경찰소에 한인 학교, 잇신캅 농장에 진성국어학교, 피시야 지역에 국어학교, 오스타파캅 지역에 의성국어학교, 레판 지역에 반도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1917년에는 해동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와 국사 등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한인 2세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메리다 한인학교 (Merida 韓人學校)
메리다한인학교는 멕시코 한인들이 메리다에 설립한 학교이다. 1909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되고 1910년 사관학교인 숭무학교를 세웠다. 그뒤 메리다지방회는 사낙타 경찰소에 한인 학교, 잇신캅 농장에 진성국어학교, 피시야 지역에 국어학교, 오스타파캅 지역에 의성국어학교, 레판 지역에 반도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1917년에는 해동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와 국사 등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한인 2세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1919년에 설립된 프랑스 최초의 한인 단체.
재법한국인회 (在法韓國人會)
1919년에 설립된 프랑스 최초의 한인 단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장병규의 시·서(序)·서(書)·기 등을 수록한 시문집.
오야집 (午野集)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장병규의 시·서(序)·서(書)·기 등을 수록한 시문집.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한재갑 (韓載甲)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